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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으로 역사를 재단하면 안된다

기자명 명오 스님
  • 법보시론
  • 입력 2023.09.26 15:40
  • 수정 2023.10.31 13:41
  • 호수 1698
  • 댓글 5

옛날, 어떤 호수에 큰 거북이 가족이 살고 있었다. 그때, 큰 거북이가 어떤 거북이에게 말했다. “사랑하는 거북아, 아무개 지역에는 가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거북이는 가지 말라는 그곳으로 갔다. 한 사냥꾼이 줄이 달린 작살로 그 거북이를 찔러버렸다. 그러자 그 거북이는 큰 거북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큰 거북이는 어떤 거북이가 오는 것을 보고는 말했다. “얘야 거북아, 아무개 지역에 다녀온 건 아니겠지?” “저는 그곳에 갔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작살에 찔리지 않았느냐?” “찔리지는 않았는데, 이 줄이 등 뒤에서 계속 따라옵니다.” “이런, 너는 작살에 찔렸구나. 너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이처럼 사냥꾼의 작살에 찔린 채 돌아와 곤경에 처하고 (모두를) 재난에 빠트렸다. 저리 가거라, 너는 이제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없다.”

이 이야기는 이익과 환대, 존경과 명성을 욕심내면, 평온한 삶을 잃게 된다는 부처님 말씀이다. 경전 속의 사냥꾼은 악마, 작살은 이득과 존경과 명성, 줄은 즐거움과 탐욕을 의미한다. 이득과 환대와 명성을 즐기고 집착하면, 안온한 일상을 장애 한다는 말이다. 바르게 일러 주는 말은 무시하고, 가지 말라는 길을 가는 사람은 곤경에 빠질 수밖에 없다. 덫이 있을 줄도 모르고, 그 덫에 걸리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모른 채 빠져들어 주변까지도 위험에 빠뜨린다. 눈앞의 이득과 환대, 존경과 명성이 오히려 자신을 꼼짝하지 못하게 만드는 올가미가 될 수 있다고 부처님은 경계하셨다.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찾아 명성을 얻고, 존경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많은 사람이 인생의 가치를 거기에 두니, 달콤한 유혹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사로운 이득보다 공익을 우선하고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무섭게 생각하며 고매하게 살아가는 경우도 많다. 존경이란 그럴만한 가치에 있지, 그 명성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의 리더가 이러한 원칙을 가지고 있다면, 그야말로 살맛 나고 일할 맛 나는 세상이라 할 수 있다.

불교는 인과가 역연하다고 말한다. 이득에 따른 자신의 노력을 돌아보고, 존경에 뒤따르는 책임을 생각하며, 명성의 이면에 가려진 의무를 기억해야 한다. 사회적 성공이나 갑의 위치는 물리적인 이익과 환대, 존경과 명성을 부른다. 그렇게 얻어지는 것은 진정한 내 것이 아니다. 조건과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변하고 사라질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즐긴다면, 어떻게 될까? 꼼짝없이 이끌리는 대로, 본인뿐만 아니라 자신이 포함된 공동체나 사회 전체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지금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체성은 흔들리고 있다. 독립군 영웅에게 사리에 맞지 않는 정치적 프레임을 씌워 국민이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홍범도 장군을 국방부는 공산주의자·빨치산으로 규정하며, 자유시 참변과 연관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1950년대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1920년대에 끼워 맞춰 나라의 독립에 헌신한 장군을 모욕하고 역사마저 왜곡하고 있다. 일본이 좋아할 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것 같다. 장군의 흉상 이전과 함선의 명칭을 두고 시비할 일이 아니라, 그의 생애와 업적을 올바로 알리고 배우는 것이 우선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끊임없이 재해석될 수 있지만, 역사적 인물들이 처했던 시대적 상황과 조건을 고려해 공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당시의 국제 정세를 외면한, 현재 시점에서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문제 제기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일이 될 수 있다. 

권력을 가지면 역사도 예술도, 입맛대로 재단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 유혹은 무섭고 날카로우며 두려운 것이다. 역사적 진실은 우리가 바로 알고 인정할 일이지, 개인의 의도대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역사적 뿌리를 바로 알고, 그 정체성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의무가 있다. 여기에는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가 있어도 안 된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번영과 통합, 행복을 위하는 길이다.

명오 스님 동국대 강사 sati348@daum.net

[1698호 / 2023년 9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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