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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행복 - 심재휘

기자명 동명 스님

좋은 일도 놓아버림이 진짜 휴식

항상 보람차게 살려는 우리네
매일이 보람차면 삶 힘들어져
수행에 힘 들이면 집착 생기듯
의미없이 보내는 날도 필요해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보람찬 하루라고 말했다
창밖은 봄볕이 묽도록 맑고
그 속으로 피어오르는 삼월처럼 흔들리며
가물거리며 멀어지는 젊음에 대고
아니다 아니다 후회했다

매일이 보람차다면
힘겨워 살 수 있나

행복도 무거워질 때 있으니
맹물 마시듯
의미 없는 날도 있어야지
잘 살려고 애쓰지 않은 날도 있어야지
(심재휘 시집,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강릉으로 가요’, 창비, 2022)

 
틱낫한 스님의 ‘플럼빌리지’에서 수행하는 사람들의 삶을 다룬 영화 ‘나를 만나는 길’에서 본, 서구 사람들이 출가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참으로 진지해 보였다. 플럼빌리지로 출가한 사람들은 연령대도 직업군도 다양하다. 암을 선고받은 가톨릭 신부가 출가하였는데, 그와 함께 생활하던 동료 신부가 출가하러 플럼빌리지를 찾아와서 서로 우연히 만나게 된다. 성공한 사람이 되어서 세상을 주름잡으리라던 한 젊은이는 꿈을 바꾸어 오직 ‘깨달음’만을 위해 출가한 후에 영화제작진과 함께 부모님을 찾았다. 세계 곳곳에 있는 플럼빌리지가 전세계 사람들의 새로운 출가의 장이 되고 있다.

플럼빌리지에는 일주일에 한번 ‘게으름의 날’이 있다고 한다. ‘게으름의 날’에는 모든 의무가 해제된다. 공양도 하고 싶으면 하고, 세수도 하고 싶으면 하고, 그렇게 모든 의무에서 해방되어 마음껏 게을러져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뒹굴다 보면 재충전이 되어 다시 충실한 일상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아마도 그룹별로 나누어서 ‘게으름의 날’이 적용될 것 같다. 모든 구성원에게 적용된다면 공양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말한다. “아들, 보람찬 하루!”

보람찬 하루를 보내라는 응원의 메시지인데, 말해놓고 시인은 약간 후회한다. ‘매일이 보람차다면 그것도 힘겨운 일이다. 행복도 무거워질 수 있다. 그 행복마저도 벗어던지는 날도 있어야 한다. 보람차지 않아도 되는 날도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건성으로 무심하게 적은 듯하지만, 이 시는 예사롭지 않은 진실을 담고 있다. 우리 수행자는 ‘반야심경’의 가르침대로 오직 반야바라밀다를 행해야 하지만, 수행하면서 문득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매일 보람차야 한다는 것도 집착이다. ‘반야심경’에서 왜 사성제나 십이연기 같은 진리도 공하다고 했겠는가?

“맹물 마시듯/ 의미 없는 날도 있어야지/ 잘 살려고 애쓰지 않은 날도 있어야지”는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의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에 대한 다른 표현이다. 어깨에 힘주고 잘해보려고 용을 쓰는 마음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편안한, 특별히 보람찬 생활을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물이 흐르듯 유연한 마음이 곧 평상심이다.

이 시의 전언은 틱낫한 스님이 ‘게으름의 날’을 만드신 취지와 비슷하다. 수행 중인 이에게는 수도원의 규칙에 맞추어 사는 게 힘들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아직 인생을 배워가는 젊은이가 늘 보람찬 하루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도 힘들다.

무슨 일을 하건 한번쯤 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선정수행으로 휴식을 대신한다. 선정수행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쉬어주는 것이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 위해 호흡에만 집중하는데, 호흡에 집중할 때 힘을 주면 안압이 올라간다. 어깨에도 눈에도 코에도 힘을 빼고 편안한 자세로 가만히 숨쉬는 나를 느낀다.

아들의 행복을 기원하던 시인은, 아들이 늘 보람찬 하루를 보내기 위해 어깨에 힘을 주고 살아서는 행복해지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다. 시인들도 의미심장한 시만을 고집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가끔은 게으른 날도 필요하듯이, 가끔은 무덤덤한 시도 필요하다. 치열한 경쟁도 필요하지만, 행복마저 잊어버리는 출가도 필요하다.

동명 스님 시인 dongmyong@hanmail.net

[1698호 / 2023년 9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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