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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수행 삼은 통광 스님의 ‘언어사리’

  • 불서
  • 입력 2023.09.29 17:34
  • 수정 2023.09.29 17:53
  • 호수 1698
  • 댓글 0

마음아, 어디 있느냐
제월통광 스님 지음 / 불광출판사 / 312쪽 / 2만5000원

말기암에도 수술 거부하고
수행하며 마지막 순간 기록

삶은 죽음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평생의 삶은 죽음으로 평가받는다. 수행자들의 삶이 더욱 그렇다. 환(幻)과 같은 인생을 말하며 무아(無我)와 공(空),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고준한 세계를 이야기하다 정작 죽음이 닥치면 놀라고 두려워하며 걱정과 번민 속에서 심연으로 끌려가는 수행자들이 세상에 허다했다. 반면에 마지막까지 예사롭지 않은 죽음의 모습으로 평생의 가르침보다 더욱 큰 울림을 주고 떠난 선사들도 많았다. 선사들의 여여하고 평온했던 죽음의 모습은 삶의 마감 또한 인생의 한 단면이며 집착할 것 없는 현상에 불과함을 고구정녕 일깨웠다. 죽음은 죽음대로 수행자의 삶은 삶대로 흘렀다.

10년 전 적멸에 든 통광 스님의 입적이 꼭 이랬다. 스님은 말기암이라는 살 떨리는 시련 앞에서 담담했다. 그리고 오히려 치열했다. 임종의 순간에도 세상을 향한 맑고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스님이 살아 숨 쉬는 이유일 것이다.

통광 스님은 선사이면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대강백이었다. 한암과 탄허 대종사의 강맥을 이은 세 명의 스님, 즉 각성, 무비 스님과 더불어 탄허 3걸(傑)로 추앙받았다. 스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친절하고 곡진했던 스승으로 기억한다. 배움을 청하는 이가 있으면 누구든지 가리지 않았고, 환희심을 내며 열성적으로 가르쳤다.

이런 통광 스님의 마지막 가르침이 한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2011년 서울 아산병원에서 대장암 진단을 받고 2013년 입적에 이르기까지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수행자의 당당한 위의를 잃지 않고 담담한 모습으로 써 내려간 스님의 마지막 글들을 모은 유고집이다. 삶의 끝자락에서 아픈 몸을 이끌고 꾹꾹 눌러쓴 글들은 고통마저 불은(佛恩)이라 여기며 평생 닦았던 수행의 밑천들을 하나 둘 점검하고 중생들에 대한 마지막 경책과 당부를 잊지 않는다.

의사의 수술 권유를 거부하고 오로지 기도와 수행으로 마지막을 회향했던 스님은 죽음의 순간을 이렇게 말했다. 

“내 몸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불보살의 뜻이 있을 것인 즉, 나는 그 뜻을 이뤄야 하는 것이다. 나는 내 투병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판단했다. 병에 이기고 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내가 병이라는 상황을 맞아 수행자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과정을 불자들에게 알려야 함을 깨달았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재앙이겠지만 나는 생각이 달랐다. 이것 또한 불은(佛恩)이자 가피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글 속에는 “통증이 심해지면 생각조차 잘 나지 않기 때문에 이 작업이 내겐 무척 어려운 과제라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는 인간적 내용도 담겨있다. 무심한 듯 담담한 한 줄의 글에서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 홀로 치열했던 스님의 마지막 정진이 눈물로 다가온다.

유고집은 9편으로 구성된 1부 불이문과 6편으로 구성된 2부 금강문 등 총 15편으로 꾸며져 있다. 책의 첫머리를 장식한 스님의 부도와 부도탑, 주장자와 지팡이, 그리고 평생을 걸쳐 불사한 칠불암의 전경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또 부록인 행장과 스님의 사진들은 맑은 미소 그대로 우리 곁에 살아있는 듯하다. 생명에 대한 절체절명의 도전 속에서 수행자 본연의 자세를 잃지 않았던 선사이자 대강백 통광 스님의 유고집을 통해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참 삶의 의미를 오히려 돌이켜보게 된다.

김형규 대표 kimh@beopbo.com

[1698호 / 2023년 9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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