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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차례와 제사의 차이

기자명 성원 스님

황금연휴가 끝났다. 예전에는 ‘황금들판’이라는 표현을 많이 했다. 가을 들녘에 바라보이는 잘 익은 벼의 황금물결이 풍요를 담보해 주었다. 추석은 모든 곡식과 과일들이 무르익으며 들판을 가득 채우는 계절의 정말 딱 가운데인 중추절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우리 사회의 산업구조가 급변해 농경사회에서 경공업·중공업 중심을 지나 이제는 혁신 IT와 문화가 우리 산업의 중심이 되었다. 이제 추석은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가을의 중심이라는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구조의 변화는 사람들의 생각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명절이면 어른들이 계시는 고향에 모여 차례를 지낸다는 생각조차도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올해 유난히 긴 연휴로 인해 추석 차례를 꼭 지내려 하지 않는 비율이 60%를 넘었다는 조사 결과를 봤다. 세월의 변화 앞에서 전통이 너무나 무참히 무너져 버리는 것 같아서 마음 아프다.

물론 세월의 변화를 그 누가 막아설 수 있을까만은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는 것에 별다른 거리낌이 없어 하는 사람 중에 는 명절 차례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주변 사람들에게 명절에 왜 차례를 지내는지 물어보면 그 명쾌히 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은 우리 어른들 세대가 명절의 참다운 의미를 후대에게 제대로 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찰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통 의례를 정당하게 생각하고 지키려는 의지가 크다. 그런데 이러한 불자들 가운데에도 상당수는 사찰에서 지내는 천도재와 49재, 명절의 차례(茶禮), 기일에 지내는 제사의 의미와 형식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사찰에서 지내는 추모 의례는 천도재를 기본으로 한다. 목욕재계하고 영가의 극락왕생을 천거하는 의식이다. 물론 집에서 하는 기일제사를 절에서 대신할 때는 천도의식이라 생각하기 어렵다. 명절은 조상에게 음식을 마련해 대접하는 날이 아니다. 차례는 제사가 아니라 조상에게 후손들의 건재함과 새해 또는 중추절의 절기가 되었음을 아뢰는 의식이다. 오랜만에 후손들이 모두 한자리에 둘러 모여 조상의 공덕을 찬탄하면서 함께 덕담도 나누고 맛난 음식도 나누어 먹고 즐기는 축제일이다. 설날에는 새로 시작하는 한해에 대해 서로 준비하고 추석에는 송편을 나누어 먹으며 조상의 음덕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에 의미가 있다. 

핵가족화가 심화되어 일가친지가 한두 명에 불과하다는 사람이 많다. 혼자 집에서 차례를 지내려니 처량한 생각마저 든다는 신도분들에게 명절날 법당에서 합동 차례를 지내자고 권하여 함께 차례를 지내니 마음이 너무 편하고 좋다고 한다. 차례가 조상에게 번창한 후손들의 소식을 전하는 의미니 홀로 집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사찰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차를 올리며 예를 갖추는 것이 차례의 의미에 더 가까울 것이다.

또 명절 차례에 음식을 제사상같이 가득 쌓아 올리는 풍습도 바뀌어야 한다. 유교적 가정예식을 정리한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차례상에는 술 한잔, 차 한잔, 과일 한 쟁반을 차리고 술도 한 번만 올리고 축문도 읽지 않는 것으로 돼 있다. 참으로 바람직하다. 명절 때 제사상같이 음식을 준비하다 고부 사이와 동서지간에 다툰다는 소식이 매번 전해진다. 조상들에게 자랑스러운 후손들의 삶을 뽐내며 서로 축하하고 덕담 나누는 날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명절에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을 과하게 준비하지 말고 차라리 그 비용으로 찾아오는 며느리와 사위, 아이들에게 용돈을 듬뿍 주는 행사로 치르면 좋겠다. 그러면 목적은 좀 다를지 몰라도 모두 함께 모이는 추석과 설이 되지 않을까? 

물질이 넘치도록 풍요한 시대, 일가친지의 삶에도 황금빛 여유가 가득하면 좋겠다.

성원스님 조계종미래본부 사무총장 sw0808@yahoo.com

[1699호 / 2023년 10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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