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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진여심과 생멸심, 일심이문

대상 그대로 알면 진여심·탐진치 물들면 생멸심

본래 부처 같은 마음 번뇌에 물들어 불성 감춰져
거울에 때 끼이면 그대로 비추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 오염 걷어내 불성 드러나게 하는 건 수행뿐

전오식, 즉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과 여섯 번째 마음인 의식은 겉으로 드러나는 표층의 마음이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심층의 마음은 아뢰야식이다.
전오식, 즉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과 여섯 번째 마음인 의식은 겉으로 드러나는 표층의 마음이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심층의 마음은 아뢰야식이다.

범부들의 마음은 번뇌로 물들어 있다.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의 마음이다. 반면에 깨달음을 얻은 마음은 고요하고 평온하다. 번뇌에 물들기 전 우리 본래의 마음이다. 기원후 2세기 인도의 마명[馬鳴, 아슈바고샤(Asvaghosa)] 보살은 그의 저서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 우리에게는 진여심(眞如心)과 생멸심(生滅心)이 있다고 했다. 진여심이란 맑고 청정하다고 해서 청정심, 부처님의 성품과 같다고 하여 불성, 여래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다고 해서 여래장이라 한다. 반면에 생멸심이란 파도와 같은 산란하고 혼탁한 마음, 번뇌 망상으로 가득 찬 마음이다.

진여심과 생멸심은 본래 하나의 마음[一心]이다. 일심이지만 두 가지로 표출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잠재적 마음이다. 어떤 마음을 내느냐 하는 것은 수행[마음공부]의 깊이에 달렸으며 이것은 각자의 몫이다. 마명 보살은 일심에 두 개의 방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진여문(眞如門)을 열고 진여심으로 들어가 번뇌와 무명에 오염되지 않고 괴로움을 여읜 해탈·청정한 마음을 낼 수도 있고, 생멸문(生滅門)을 열고 생멸심으로 들어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마음, 즉 번뇌 망상이 마치 죽 끓듯 생멸하는 마음[生滅心]을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의 마음[一心]에 두 개의 문[二門]이 있어 두 가지 다른 차원의 마음이 일어날 수 있다. 일심이문(一心二門)이다.

유식학자들은 여덟 가지의 마음이 있다고 보았다. 전오식, 즉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과 여섯 번째 마음[六識]인 의식은 겉으로 드러나는 표층의 마음이고,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심층의 마음으로 제7식 말나식(末那識, manas-vijñāna)과 제8식 아뢰야식(阿賴耶識, ālaya vijñāna)이 있다. 제7식과 8식은 무의식의 마음이다. 이처럼 유식학자들은 세 층의 마음이 있다고 보았다. 가장 깊은 층에 심[心 아뢰야식], 중간에 의[意 말나식], 표층에 식[識 의식]이 있다. 유식학자 원효(元曉, 617~686) 대사는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와 ‘별기(別記)’를 통하여 제8식 아뢰야식을 진여심으로 보고, 그것이 말나식을 거쳐 의식, 전오식으로 표출된다고 하였다. 무의식에 있는 아뢰야식의 종자가 의식으로 나타나는 과정이다.

아뢰야식은 종자가 저장된 종자식이다. 삶의 경험과 행동, 마음이 훈습되어 생성된 종자 하나하나는 기억의 최소단위이다. 현대 뇌과학 용어로 기억의 실체인 엔그램(engram)에 배대된다. 종자[engram]는 삶의 과정에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는 전오식이 의식 → 말나식을 통하여 아뢰야식에 저장된 마음의 씨앗이다. 5감뿐 아니라 마음속에 일어난 생각도 마찬가지 과정으로 아뢰야식에 종자로 저장된다. 반대로 저장된 종자가 의식으로 떠오를 때는 아뢰야식[종자] → 말나식 → 의식의 과정을 거치고, 의식은 전오식을 통하여 현상세계에 펼쳐진다. 펼쳐진 현상세계의 마음은 다시 역순의 과정을 거쳐 아뢰야식에 종자로 저장된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은 새로운 정보[5감]를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마음을 내면서 종자를 축적한다. 현대 뇌과학적 용어로 마음을 뇌신경회로[種子]로 체화(體化)시킨다고 한다. 체화된 마음(embodied mind)이다.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이다. 대상은 외적인 색성향미촉일 수도 있고, 내적인 법일 수도 있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알면 진여심[청정심, 불성, 여래장]이고, 탐진치 삼독의 편견으로 알면 번뇌 가득 찬 생멸심이다. 진여심은 번뇌에 물들기 전 우리 본래의 마음이다. 깨달은 성자는 불성의 청정심, 진여심을 내고, 중생들은 번뇌로 물든 생멸심을 낸다.

어떻게 하나의 마음에 두 개의 문이 있어 진여심 혹은 생멸심을 낼까? 원효대사에 따르면 진여심은 아뢰야식이다. 지난 연재에서 아뢰야식은 종자식이며, 종자식이 마음거울에 맺힌 상분을 보는 견분이라고 설명하였다. 세상만사[萬法]는 마음거울에 상(像 image)으로 맺히고 그것은 ‘보이는 자 상분(相分)’이 된다. 이 상분을 ‘보는 자 견분[見分 종자식]’이 보면 마음[인식(想), 앎]이 생긴다. 그런데 견분이 상분을 보는 과정에 말나식이 개입한다. 

유식학자들은 말나식이 아뢰야식[종자식, 見分]을 집착하여 상분을 안다고 한다. 말이 어렵다. 종자식 자체가 독립적으로 상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종자식[見分]이 상분을 볼 때 말나식이 개입하여 주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지난 연재에서 견분이 상분을 본다는 것은 기억이미지[見分]와 상분을 대조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하였다. 기억이미지가 번뇌로 오염되어 있지 않는 한 견분이 상분을 직접 보면 우리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 진여심이다. 하지만 기억 이미지가 오염되어 있고, 편견을 가진 말나식이 왜곡하기에 범부의 마음은 생멸심이다.

진여심은 오염되지 않은 불성이요 청정심이다. 범부들의 진여심은 탐진치 번뇌로 오염되어 있다. 따라서 오염되지 않은 원래의 진여심을 아마라식(阿摩羅識, 제9식)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이는 범부들도 오염되지 않은 불성, 즉 여래의 씨앗인 여래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오염이 되어 불성이 감추어져 있을 뿐. 마음오염[煩惱]을 걷어내어 불성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 수행이다. 마치 거울에 때가 끼어있으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깨끗하게 비추지 못하듯 종자들이 불성으로 드러나지 못하고 번뇌로 오염된 생멸심으로 드러나게 된다. 아뢰야식[종자식]을 깨끗이 맑혀 진여본성이 발현할 수 있게 하는 지혜가 대원경지(大圓鏡智)이다.

진여심은 원래 청정했는데 왜 오염이 되었을까? 아기들의 마음은 청정심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엄마 젖을 먹고자 하는 본능 외에는 마음이라 할만한 것이 없다. 세상과 내가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 이렇다 할 종자가 별로 없고, 있어도 오염되지 않은 맑은 종자들이다. 아기는 성장하면서 ‘내 것’ ‘세상과 분리된 나’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된다. ‘체화된 자아(embodied ego)’이다. 세상과 분리된 체화된 자아는 성장 과정의 경험치들을 훈습하여 종자로 저장한다. 종자들은 쌓여서 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이야기하는 자아(narrative ego)’이다.

경험치들을 훈습하여 종자[아뢰야식]로 저장할 때 ‘있는 그대로’ 저장하지 않는다. 좋고 싫음으로 편견의 때[번뇌]를 묻혀 대상을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뢰야식은 번뇌로 오염된 채 체화된다. 범부들의 오염된 여래장이다. 종자라고 하여 씨앗 하나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아무리 간단한 기억의 종자라 하더라도 그것은 뇌 속에 11차원으로 펼쳐진 복잡하기 그지없는 뇌신경망이다. 수많은 종자들이 서로 얽혀 연관된 연결망을 형성하고 무시로 폭류같이 흐르며 의식으로 표출될 기회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는 범부의 여래장이 생멸문으로 나서는 과정을 상상해 본다.

문일수 동국대 의대 해부학 교수 moonis@dongguk.ac.kr

[1699호 / 2023년 10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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