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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당대 선사들의 교육관-하 - 남양혜충·마조, 경산법흠·마조를 왕래한 제자들

기자명 정운 스님

관용 교육관이 선 전성기 견인

마조, 제자들 수행점검 위해
혜충·경산 등 선지식에 보내
기록 안 된 납자들도 다수
뛰어난 수행자 배출된 배경

이번엔 마조와 남양혜충(南陽慧忠, ?∼775), 마조와 경산법흠(径山法欽, 714∼792) 사이를 왕래하며, 공부한 제자들을 살펴보자. 먼저 마조와 경산을 오가며 공부한 제자들이다. 경산은 우두법융[594~657, 4조 도신 제자]을 조사로 하는 우두종 5세이다. 선사는 성품이 온화하고 말이 간단하며 논설하는 일이 드물어 선리를 묻는 이가 많았지만, 대답하는 일이 드물었다고 한다. 

마조가 서당[마조의 수제자]을 보내어 경산에게 물었다. “십이시중(十二時中)에 어느 경지에 머물러 있습니까?”/ “여기에 편지가 있으니, 마조 대사에게 전해 드리게.”

서당이 돌아가려고 하자, 경산이 말했다. “마조에게 전하게. 혜능 대사에게나 물어보라고.…” 

또한 동사여회(?∼?)는 원래 경산법흠의 제자였으나 마조가 개원사에 머물 때 법을 받은 제자이다. 동사는 마조 입적 후, 즉심시불을 금과옥조로 삼는 어리석은 이들을 크게 비판한 마조의 대표 제자로 알려져 있다. 

다음으로, 마조와 남양혜충 사이를 왕래한 서당지장(738∼817)을 살펴보자. 남양혜충(南陽慧忠, ?~775)은 6조 혜능 문하에서 수행하고 법을 얻은 후, 여러 지역을 유행하였다. 하남성(河南省) 석천(淅川) 향엄사에서 40여년을 머물며 산문을 내려오지 않았다. 현종·숙종·대종 황제가 그의 덕을 흠모해 국사로 책봉하고 그를 받들었다. 그의 독특한 무정설법(無情說法)과 일원상(一圓相)은 제자 탐원응진에게 전해졌다. 다시 탐원에게서 위앙종의 앙산혜적(仰山慧寂, 807~883)에게 일원상의 도리가 전해졌다. 이 앙산에게서 법을 받은 선사가 신라 오관산문의 순지이다. 이 앙산은 위산영우(771∼853)에게서 법을 받았고, 훗날 마조계 문하에서 선종의 한 일파인 위앙종이 탄생하였다. 어느 해 마조는 수제자인 서당지장(西堂智藏, 738~817)을 혜충에게 보냈다. 이 선문답에서 마조와 혜충의 스승 됨을 살펴보기로 하자. 

마조는 서당을 시켜 혜충 국사에게 편지를 보냈다.…서당이 혜충 국사에게 도착하였다. 국사가 물었다. “자네의 스승은 무엇을 가르쳐 주던가?” 그러자 서당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걸어가 멈추었다. 국사가 말했다. “겨우 그것뿐인가? 그것 말고 다른 것은 없는가?” 

서당은 다시 동쪽으로 가 멈추었다. “그것은 마조의 것이고, 자네의 것은 어떤 것인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걸어가 멈추었다’는 것은 보리(菩提)에는 정해진 자리가 없음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가 그대로 보리도량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혜충이 서당에게 스승[마조]의 견처가 아닌 제자[서당]의 견처를 묻는 것인데, 제자를 인도하는 혜충의 스승 됨을 엿볼 수 있다.

앞의 인용문과 유사한 내용이 복우자재(伏牛自在, ?∼?)에게서도 드러난다. 복우가 마조의 편지를 가지고 혜충 국사를 찾아가자, 혜충이 자재에게 “마조 대사는 요즘 무엇이라고 하던가?”라고 묻는 선문답이 있다.

이와 같이 살펴본 대로 당대 선사들의 교육 방법을 여러 면으로 살펴보았다. 마조는 석두의 직절(直截)한 접화법이 자신보다 더 뛰어날 것이라고 판단해 여러 제자들을 석두에게 보냈고, 그 반대로 석두 또한 마조의 교육이 자신보다 더 뛰어나다고 판단해 제자들을 마조에게 보냈다. 또한 마조는 제자를 혜충에게 보내기도 했고, 경산에게 제자[동사여회·서당]를 보내기도 하였다. 당나라 때, 선사들은 제자들의 수행 점검을 위해 다른 선지식에 제자를 보내는 관용의 교육자들이었다. 

어록에 전하는 승려들 이외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납자들을 고려해볼 때,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수많은 선 수행자들이 많았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렇게 선지식과 수행자들의 활발발한 선이 있었기에 당대의 선은 최고의 르네상스 시대를 구가했던 것이다. 

이렇게 본대로 중국불교사 가운데 당대에 가장 훌륭한 선 수행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이 점은 중국의 근현대 선사들이 한결같이 언급한다. 허운 스님(1840~1959)도 당나라 때의 선을 언급하며, 그 시대만큼 불교가 발전되어야 한다고 강조할 정도이다.

정운 스님 동국대 강사 saribull@hanmail.net

[1699호 / 2023년 10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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