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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절하니 멋진 장래 희망 생기고 자신감도 커졌어요”

  • 무진등
  • 입력 2023.10.13 22:03
  • 수정 2023.10.16 17:26
  • 호수 1700
  • 댓글 0

108배 천일 회향 앞둔
군포 정각사 ‘108배 선재동자들’

조희원·조수안·문주완 어린이
코로나시기 스님 제안에 시작

“절 의미 배우며 생명·타인 존중…
친구들도 행복해지길 발원해”

왼쪽부터 조수안·조희원 남매, 문주완 어린이. 부처님을 보고 자연스럽게 이마를 조아리는 이들을 10월2일 광명사 청소년법당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조수안·조희원 남매, 문주완 어린이. 부처님을 보고 자연스럽게 이마를 조아리는 이들을 10월2일 광명사 청소년법당에서 만났다.

올망졸망 국화꽃 만개한 군포 정각사 분원 광명사 도량. “땡그랑 땡그랑” 간들바람을 탄 풍경소리와 함께 세 아이가 법당 문을 열고 들어섰다. 부처님께 합장 인사한 아이들은 자연스레 좌복을 하나씩 집더니 그대로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무릎과 이마를 쉬지 않고 마루에 내려놨다. 이마엔 금세 땀이 송골송골. 지켜보는 지도법사 여옥 스님의 얼굴엔 흐뭇함이 가득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절하는 모습이 얼마나 기특해요. 법회에 올 때만 절하지 않고 각자 집에서 매일같이 실천하고 있답니다. 네이버 밴드를 활용하고 있는데,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는지 일기와 함께 절하는 동영상을 꼬박꼬박 올려요. 많은 어린이에게 귀감이 되고 있어요.”

조희원(14) 조수안(13) 남매와 문주완(12) 어린이는 정각사 어린이법회에서도 소문난 ‘108배 선재동자’들이다. 108배 챌린지에 도전하던 친구들은 많았지만, 대부분 100일을 넘기지 못했다. 그런데 이들 세 어린이는 몸이 아프든 공부로 바쁘든 한 번도 그냥 넘어간 적이 없다. 가끔 절을 하지 못했을 때는 그 다음날 추가로 하는 등 보기 드문 열정을 보이고 있다. 그렇게 희원이와 수안이는 어느덧 1000일 회향을 앞뒀고, 주완이는 300일을 넘겼다. 처음엔 스님, 부모님과의 약속이었지만 이미 일상이 된지 오래다. 

절을 하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희원이는 사이클 선수처럼 고성능 자전거를 자유롭게 다루고 싶어한다. 수안이는 가족의 행복과 더 뛰어난 태권도 실력을, 주완이는 훌륭한 과학자가 되고자 정진하는 힘을 기르려 한다. 이들은 1배할 때마다 합장 반배하며 각자의 서원을 소리 내어 다짐하고 있다. 10월2일 광명사 청소년법당에서 만난 아이들은 또래가 그러하듯 장난기 가득했다. 그러나 각자의 꿈을 밝힐 때는 눈을 반짝이며 누구보다 깊은 내면을 드러냈다. 

희원이는 요새 친구들과 자전거 라이딩에 재미를 붙였다. 그중에서도 ‘픽시자전거’에 관심이 많다. 방과 후나 주말만 되면 아버지가 사준 자전거를 타고 ‘여행’에 나선다. 친구들과 마파람을 맞으며 골목골목을 누빌 때 한없이 자유를 느낀다. 평균 3~4시간의 짧은 나들이지만 희원이에게는 잡다한 생각을 비우는 일종의 여행이다.

“절을 할 때 아무생각 없이 그저 해요. ‘자전거를 잘 타게 해주세요’ ‘체력이 좋아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고 소원할 때도 있는데, 60번 70번 절하다 보면 그저 절하는 것에만 집중하게 돼요. 자전거 여행도 그래요.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웃고 즐길 때도 있어요. 그런데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자전거 페달을 끊임없이 밟아야 해요. 절할 때처럼 라이딩 자체에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조수안 어린이는 태권도 대회서 메달을 휩쓸고 있다. 

수안이는 태권도 재능이 돋보인다. 장래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꿈이다. 최근 성남오픈국제태권도대회에 출전해 개인전 페어 금메달 2개, 인천 서구청장기 태권도 대회 1등, 전국유소년태권왕대회 금메달, 태사모회장기 전국 태권도 대회 개인전 왕중왕 1위·단체전 2위 등 굵직한 상을 휩쓸었다. 

오빠 대신 밴드에 108배를 인증하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장난을 거는 오빠에게 눈초리를 보내던 수안이는 “절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태권도 국가대표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 덕분인 것 같다”며 “지금은 하고 싶은 게 많아져 고민이 들지만 부처님께 ‘뚜렷한 목표를 갖게 해주세요’라고 서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완이는 기계공학에 커다란 관심을 보인다. 킥보드나 자전거를 타다가도 잘 굴러가지 않으면 어느 부품에 문제가 생겼는지 바로 알아챌 정도다. 과학 과목에도 특출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무조건 만점을 받고, 중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원소주기율표를 달달 외우는 등 열정이 가득하다. 

“과학만큼 재미있는 게 없다”는 주완이는 “화학 실험하는 것도 흥미롭고 기계 부품을 다루는 것도 무척이나 재밌다”며 “나중에 두 가지 일을 모두 즐기려면 일단 성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준에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기준을 선택할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각자 집에서 절하고 인증한다. 문주완·조수안 어린이. 
각자 집에서 절하고 인증한다. 문주완·조수안 어린이. 

아이들이 108배를 시작하게 된 건 주지 정엄 스님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임이 어렵던 시기, 부처님 가르침을 눈높이에 맞춰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던 정엄 스님은 어린이들에게 ‘매일매일 108배 챌린지’를 제안했다. 격려 차원으로 매달 소정의 장학금도 지원하며 인기를 끌었다. 그러면서 스님은 “내가 왜 절을 하는지, 뚜렷한 목표를 세우라”고 당부했고, 이는 아이들이 꿈을 향해 노력하는 계기가 됐다. 아이들은 “전에는 뭘 하고 싶은지 잘 알지 못했는데, 지금은 어떤 목표가 생기면 일단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스님의 의견에 공감한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적극 권장하면서 많은 아이가 참여했다. 한 달 두 달 절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절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부처님에게 왜 절을 하는지’ 등 의문이 생겨났고, 불교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정진해온 희원이와 수안이, 주완이는 어엿한 불자가 됐다. 

특히 주완이는 절을 할 때와 친구들을 대할 때마다 ‘법구경’의 “온화한 마음으로 성냄을 이겨라. 착한 일로 악을 이겨라. 베푸는 일로 인색함을 이겨라. 진실로 거짓을 이겨라”는 구절을 되새긴다. 뭇 중생을 자비로 포용하신 부처님처럼 항상 친구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함부로 놀리거나 무시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부처님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행복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신 분이잖아요. 저는 108배를 마치면 부처님과 한층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어요. 친구들의 행복을 발원하면서 1배 2배 절을 올리다 보면 저절로 차분해지거든요. 시작하기 전과 마치고 나서 잠시 앉아서 명상도 해요. 그러면 내가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해야 하고, 친구들과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어요.”

주완이는 또 “불교가 한국의 오랜 역사이자 문화의 일부로써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교는 우리나라 어느 시대를 봐도 항상 언급될 정도로 문화와 정서에 큰 영향을 줬다”며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억울하거나 놀림 받아 화나는 경우가 많은데, 같은 한국인의 정서를 쉽게 이해하는 데엔 불교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불교를 공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희원이와 수안이는 부처님의 탄생게인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을 마음에 새겼다. 부처님이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자기 자신이 존귀한 존재임을 강조했듯, 불성을 지닌 모든 존재, 곧 ‘나와 남이 모두 소중한 존재’임을 알기 때문이다. 희원이는 “귀하지 않은 생명은 없는 것처럼 나 자신도 귀한 존재임을 알려고 한다”며 “그렇기에 남을 함부로 무시하거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한다. 1000일 회향을 맞아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수안이도 “하루도 빠짐없이 절을 올려서 결국 1000일 회향을 앞뒀다”며 “지금껏 쌓아온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세 아이의 부모님들은 어린 나이에 확고한 신념을 갖고 매사 노력하는 자녀들이 기특하기만 하다. 희원이 수안이 아빠 조영윤 불자는 “공부를 잘하라고 하진 않지만 무엇이든 열심히,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한다”며 “희원이가 타는 픽시자전거는 체인이 끊어지지 않는 이상 원하지 않을 때에도 굴러가 위험하고, 수안이가 하는 태권도도 위험성이 있다. 혹여 다치치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게 부모 마음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일이기에 응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주완이 엄마 김선화 불자도 “주완이가 또래 아이들보다 성숙하고 생각도 깊어 대견하다”라며 “스스로 불교를 공부하게끔 안내해준 주지 정엄 스님께 감사드리며 주완이가 꿈과 이상을 실현할 수 있게끔 애정으로 돕겠다”고 말했다. 

또래와의 시간이 소중한 아이들에게 부모님과 매일 108배를 올린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쉽지 않은 인연은 아이들이 살아갈 삶의 궤적을 선명하게 그려냈다. 이야기를 풀어내며 웃음을 터트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더없이 맑고 청아하다. 

군포=고민규 기자 mingg@beopbo.com

[1700호 / 2023년 10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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