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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 명상수행 최광희(짠디·70) - 하 

기자명 법보

앎에 대한 갈증에 지속 정진
좌선 중 소음에 고통 받다가
내 마음 원인임 알고 진정돼
마음 풍족한 죽음 목표 정진

인생에서 이렇게 진심으로 공부한 적은 없다. 경전 공부에 전념하다 ‘내가 부처님의 법을 정말로 알고 있는지’ 의문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개념적으로, 피상적으로 법을 아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직접 경험을 통해 얻는 앎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법을 지식으로만 아는 것에 그친다면 닭을 기르는 사람이 달걀을 줍는 대신 닭똥만 줍는 것”이라고 하신 아잔차 스님의 말씀이 아나빠나사띠 수행과 사마타-위빠사나 수행으로 이끌었다. 초보 수행자들이 수행 초기에 겪는 혼란과 어려움들을 경험했지만 실망하지 않고 정진하면서 일어난 의문들에 대해 답을 찾기 위해 여러 스님들을 찾아뵀다. 선배 수행자들의 수행 관련 책들도 읽으며 꾸준히 수행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16년 프랑스 에뻬르농에서 아잔차 스님의 제자 아잔 위라담모 스님에게 열흘간 위빠사나 지도를 받았다. 지금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관찰하는 사띠 수행을 배웠다. 수행하면서 순간 환희와 행복감을 느꼈지만 이러한 좋은 느낌도 항상하지 않고 변하고 있음을 뚜렷이 알게 됐다. 

2019년 담마와나선원장 떼자사미 스님과 미얀마 양곤 쉐우민 수행센터에서의 집중수행은 나에게 새로운 정진의 용기를 주었다. 수행센터의 분위기는 평화롭고 아늑했다. 그러나 그런 평화도 잠시, 밤이 되자 평생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각종 소리가 무자비하게 고막을 강타했다. 인근 선원에서 24시간 내내 마이크를 대고 경전을 낭송하는 소리, 동네 수백 마리의 개들이 경쟁하듯 짖어대는 소리, 인근 가게들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 등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조용한 수행처에서 정진하기를 기대했기에 화가 났다. 당장 떠나고 싶었지만 다른 수행자를 방해할까 두려워 소리 없이 참느라 밤새도록 가슴을 졸였다.

새벽 좌선 때에도 여전히 소음으로 인한 번뇌와 싸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빤냐와로 큰스님의 법문이 떠올랐다. “볼 때는 봄, 들을 때는 들음만 알아차려라” 안이비설신의 6문을 통해 색성향미촉법이라는 대상이 들어올 때 그 대상을 단지 알 뿐 느낌을 증폭시켜 좋거나 싫은 것으로 번뇌를 일으키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이 법문을 머리에 떠올리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고막을 폭격하고 가슴을 후비던 소리들이 귀마개를 한 듯 멀리서 들렸다. 절망과 성냄으로 온몸이 불덩이같이 달아올랐던 열기가 식으면서 차츰 마음도 진정됐다. 나를 괴롭힌 것은 소리가 아니라 내 마음이 그 소리를 ‘수행을 망치는 것이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리석음이 바로 이런 것임을 알게 됐다. 대상은 대상일 뿐 원래 좋고 나쁜 대상은 없다.의식하던 하지 않던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대상을 주관적 관념으로 인식하고 그 축적된 관념에 따라 대상을 좋다거나 혹은 싫다고 인지하고 평가한다. 이렇듯 우리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전도된 상으로 보며 세상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됐다.            
  
인간은 매순간 몸과 말과 마음(의도)으로 업(행위)을 짓는다. 부처님께서 “의도는 업이다”고 했듯 의도 없이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념처 수행을 열심히 닦아서 불선한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그 마음을 즉각 알아차린다면 적어도 악처로 떨어지게 할 불선한 행동이나 언행이 겉으로 드러나기 전에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수행하면서 얻은 행복은 ‘두 번째 화살은 맞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온다. 살아있는 동안 6문을 통해 들어오는 첫 번째 화살의 고통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첫 번째 화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두 번째 화살의 고통을 막을 수도, 증폭시킬 수도 있다. 모든 번뇌의 일어남과 소멸은 우리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더 큰 덕목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마음이 들뜨거나 크게 동요하지 않고 고요한 평정심을 얻는 것이다. 평정심은 지혜에서 온다. 법문과 경전을 읽고, 바른 숙고와 정진을 통해 지혜를 증득할 수 있다.

불교의 대표적 가르침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심 시제불교’를 일상생활에서 실천고자 노력하고 있다. ‘계를 수지하고 보시하며 법의 지혜를 얻고자 꾸준히 노력한다면 죽을 때 알아차림을 놓치지 않고 편안하고 풍족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수행하고 있다.

[1700호 / 2023년 10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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