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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한국 사찰에 그려진 인도·서역계열 주악도

기자명 윤소희

압사라 복원에도 악가무 실패한 캄보디아의 교훈

석굴암 8부 신중 중 인도 음악 관련 캐릭터 절반
​​​​​​​지금도 사찰 벽·천장에는 다양한 조각 그림 새겨
캄보디아 사례 통해 주악도 조성 때 신중 기해야 

1)완주 화암사 극락전 닫집 양편에 조각된 가릉빈가(국보 제316호, 1605년 조성). 2)태국 긴나라. 3)델리국립박물관의 압사라와 간다르바. 4)도쿄박물관의 동발치는 가릉빈가.
1)완주 화암사 극락전 닫집 양편에 조각된 가릉빈가(국보 제316호, 1605년 조성). 2)태국 긴나라. 3)델리국립박물관의 압사라와 간다르바. 4)도쿄박물관의 동발치는 가릉빈가.

동남아, 중국, 일본의 불교사찰에도 조각과 그림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과 같이 벽과 천정에 온통 그림을 그려놓지는 않는다. 한국 사찰의 수많은 벽화와 조각들 중에는 주악도가 많다. 그 가운데 인도계열 주악도는 온갖 이야기들이 얽혀있다. 

사찰 입구에서 비파를 타고 있는 간다르바가 석굴암에서는 소마가 담긴 물병을 들고 있다. 천상의 영약인 ‘소마’로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하는 그에게는 연신(戀神) 압사르바가 있다. 인도에는 “여자아이들이 16살이 되면 압사라와 같이 예뻐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압사르바는 미(美)의 상징이다. 간다르바는 천상을 날아다니며 음악을 연주하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호법신이 되었기에 영산재나 수륙재를 지낼 때 신중작법으로 대접을 받는다. 요정 압사라를 연신으로 둔데다 묘약을 지니고 향을 마시는 뮤즈에다 대접받는 장군까지 되었으니 조선조 유생들의 질투를 죄다 덮어썼다.

억불을 벗어난 요즈음도 국어사전에서 건달(乾達)을 검색하면 “가진 것도 없이 난봉을 부리고 돌아다니는 사람”으로 설명하고, 행동이 불량한 사람을 ‘건들’거린다고 한다. ‘삼국유사’의 차득공은 민심을 살피기 위하여 당시 거사 행장의 유행이었던 비파를 들고 유랑하였다. 이렇듯 비파하면 간다르바의 악기였으니, 억불 상황에 누가 비파를 손에 잡으려 했을까. 한국에서 비파음악이 사라진 이유가 “불교음악의 상징이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다 델리박물관에서 압사라와 함께 하늘을 날고 있는 간다르바를 보니 억불에서 해방된 간다르바를 보는 듯 기분이 묘했다. 고대인도 악서인 ‘나라디야시크샤(Nãradĩyaśikṣã)’에서는 인도음악의 양대 산맥으로 베딕과 간다르바 양식을 꼽는다. 간다르바 양식의 세 가지 요소는 스와라(svara)·빠다(pada)·따라(tāla)로써 언어·문학·음악이 일체화되어 있다. 소리와 음을 뜻하는 스와라는 음계와 선율, 발걸음을 뜻하는 빠다는 한 구의 시행이자 한 소절의 단위, 따라는 박자와 리듬절주를 일컫는다. 

석굴암을 지키는 8부 신중 중 음악 관련 캐릭터는 간다르바 외에도 긴나라와 가릉빈가, 마후라가가 있어 절반을 차지한다. 한국에서는 가릉빈가와 긴나라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여 동일시 하는 경우도 많다.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 긴나라는 노래와 춤에 뛰어나고 비나를 타는데, 힌두교, 자이나교, 산스크리트어, 빠알리어, 마라티어, 힌디어, 크메르어 문화권마다 각기 설명이 다르니 그만큼 활약의 폭이 넓은 캐릭터다. 티베트에서는 이를 반인반마(半人半馬)로 표현하고, 동남아에서는 반인반조(半人半鳥), 일본은 상체가 사람인데 뿔 달린 머리에 하체는 새의 모습을 하고, 한국 석굴암의 긴나라는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올렸을 뿐 뿔이 없어 이래저래 헷갈린다. 

한국의 주악도에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가릉빈가이다. 두 사람이 한 몸인 공명조, 불탑이나 기왓장에 새겨진 인면조, 백제금동대향로 뚜껑에 있는 새를 한국에서는 모두 가릉빈가로 여긴다. 중국 ‘진서’의 ‘악지’에는 “장박망(張博望)이 서역에 갔다가 마하도륵(摩訶兜勒) 한 곡을 얻어왔고, 이때 박자를 뜻하는 ‘따라(達拉)’가 동발(銅鈸)의 명칭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의 사찰 벽화나 그림 중에도 동발을 치는 가릉빈가가 종종 보인다. 일본 도쿄박물관에도 동발을 치는 가릉빈가가 있는데, 8세기에 경주에서 조성된 것을 가져간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면서 고구려 고분 속 인면조가 등장하자 학계에서는 “인면조가 가릉빈가인가?”라는 논쟁이 뜨거웠다. 

석굴암의 긴나라 옆에 그려진 마후라가는 피리를 불며 제신(諸神)을 공양해 왔다. 인도여행을 하던 중 거리악사 앞에 뱀이 있어 기겁하고, 도망치자 악사가 뱀 항아리를 후다닥 덮고는 “지나가라”고 손짓했지만 도무지 그 앞을 지날 수 없어 돌아갔던 적이 있다. 그 뒤로 마후라가가 피리를 불며 제신을 공양했다는 것은 인도의 거리악사가 스토리텔링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굴암에서 마후라가와 비스듬히 마주보고 있는 가루라는 금시조로 변역되는 데 솔개가 모델이다. ‘리그베다’에서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하늘을 가로질러 나는 가루라로 설정했고, 불교에서 더욱 신격화하였다. 배다른 형제인 마후라가가 가루라의 어머니를 포로로 잡았던 적이 있으므로 둘은 억하심정이 많은 사이인데, 실은 뱀과 맹금류의 먹이사슬이 원인이다. 한국에서는 가루라와 긴나라가 그다지 존재감이 없지만, 동남아에는 이들이 두드러진다. 대표적인 예가 태국의 궁정에 있는 긴나라, 미얀마 양곤에 있는 꺼러웨익 유람선, 인도네시아의 가루라 항공이다. 

상원사 동종에 그려진 공후도 서역 계통 악기이다. 중국의 ‘수서’ 권92, ‘열전’의 백제전에 고(鼓)·각(角)·쟁(箏)·간(竿)·적(笛)과 함께 공후에 대한 내용이 있고, 일본에는 이를 백제금(タダラユト)이라 하며, 현재 쇼쇼인(正倉院)에 23현의 와공후 2기가 보존되어 있다. 공후 옆에 새겨진 생황은 중국 악기이므로 하나의 동종에 서역악기와 중국악기가 나란히 연주되고 있어 신라의 문화교류가 얼마나 넓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은 이 동종이 조성되고 약 150년 후 헌강왕대 “민가에 생·가(笙歌)의 소리가 끊임이 없었다” 하니 신라 사람들의 음악 사랑이 오늘날 한국의 사찰 주악도의 원저자들이 아닌가 싶다. 

요즈음 사람들이 캄보디아에 다녀와서 “보살춤을 보았다”는 말들을 하는데, 압사라 춤을 두고 하는 말이다. 2004년 프놈펜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 압사라춤을 복원한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킬링필드 시기에 궁중 예인들이 모두 희생되는 바람에 근래 들어 앙코르와트 부조를 보고 복원할 수 있었지만 부조에 없는 악가무는 복원이 불가능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캄보디아의 이러한 사례는 “사찰 조각이나 그림을 그릴 때 신중을 기해야 함”을 일깨워 준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동국대 대우교수 ysh3586@hanmail.net

[1701호 / 2023년 10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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