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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말나식

작용 단절해야 자아에 대한 근원 집착서 해방

말나식,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심층서 활동하는 제7식
자기중심으로 해석·왜곡해 집착하게 하는 생멸심 생성
‘너·나’ 차별심 버리고 일체가 평등하다는 지혜 닦아야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들의 활성은 말나식에 포착되어 의식으로 드러난다(오른쪽). 오감문 인식과정으로 마음에 들어온 인식대상도 말나식을 거쳐 종자로 저장된다(왼쪽). 
아뢰야식에 저장된  종자들의 활성은 말나식에 포착되어 의식으로 드러난다(오른쪽). 오감문 인식과정으로 마음에 들어온 인식대상도 말나식을 거쳐 종자로 저장된다(왼쪽). 

자동차 운전을 하다 보면 보행자가 눈에 거슬리고, 반대로 내가 보행자가 되면 자동차가 거슬린다. 때로는 함께 달리고 있는 다른 자동차가 거슬리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한다. 내가 상대방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바로 그때 아마도 상대방도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이다. 왜 우리는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볼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마음 깊은 곳에는 나를 기준으로 사실을 왜곡시키는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의 자기중심적인 활동은 아주 미세하게, 드러나지 않게, 그러나 집요하게 항상 일어나기 때문에 자기 자신도 모르게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편견으로 그릇된 판단을 하거나 삿된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이런 마음이 일어날까?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이다. 대상은 외적인 색·성·향·미·촉일 수도 있고, 내적인 법일 수도 있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알면 진여심(眞如心, 淸淨心, 佛性, 如來藏)이고, 탐진치 삼독의 편견으로 알면 번뇌 가득 찬 생멸심(生滅心)이다. 깨달은 성자는 불성의 청정심, 진여심을 내고, 중생들은 번뇌로 물든 생멸심을 낸다. 유식학자들은 번뇌로 물든 삿된 생멸심을 만드는 주체가 있다고 설정하였다. 말나식(末那識, manas-vijñāna)이다. 

유식학자들은 여덟 가지의 마음이 있다고 보았는데, 다섯 가지 감각의 알음알이(前五識)와 여섯 번째 마음인 의식은 겉으로 드러나는 표층의 마음이고,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심층의 마음으로 제7식 말나식과 제8식 아뢰야식(阿賴耶識, ālaya vijñāna)이 있다. 마음의 가장 깊은 층에 심(心 아뢰야식), 중간에 의(意 말나식), 표층에 식(識 의식)이 있고, 식은 전오식으로 펼쳐진다. 유식학자 원효(元曉, 617~686) 대사는 제8식 아뢰야식이 말나식을 거쳐 의식, 전오식으로 표출된다고 하였다. 무의식에 있는 아뢰야식의 종자가 의식으로 나타나는 과정이다.

아뢰야식의 종자는 마음이 일어나는 원천이다. 마음 깊은 곳에 잠재해 있는 종자의 활성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지금의 마음이다. 종자들은 무시로 끊임없이 폭류 같이 흐르며 의식적인 마음으로 드러나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그렇게 하여 종자의 활성이 스스로 드러나는 것이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다. 또한, 외부의 인식대상인 색·성·향·미·촉이 마음공간에 들어와 생기는 상분(相分)과 대조되는 과정에 선택되어 드러날 수도 있다. 상분과 대조되는 과정은 상분과 가장 잘 일치하는 종자를 찾는 과정이다. 창밖에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누구일까?’ 하고 그 발자국 소리와 가장 관련이 있는 사람을 찾지 않는가. 이러한 대조과정을 유식학자들은 종자가 상분을 본다고 하고, 그 ‘보는 자’ 종자를 견분(見分)이라 하였다. 

만약 그 발자국 소리의 주인공을 견분이 알게 되면 ‘아, 누구이구나’하는 마음이 떠오른다. 그렇게만 떠오르면 진여심이다. 그런데 왜 번뇌가 끼어든 생멸심으로 떠오를까? 종자가 상분을 볼 때 그 종자에 집착하여 번뇌로 물들이는 마음이 말나식이다. 탐진치 번뇌도 마음이며 그들 자체도 종자로 저장되어 있다. 번뇌 종자를 끌어들이지 않으면 청정심을 낼 수 있다. 깨달은 마음이다. 하지만 깨닫지 못한 범부들은 순수 종자에 번뇌를 끌어들여(종자에 집착하여) 번뇌로 물든 마음을 만든다. 그것도 나를 중심으로 편견으로 가득 찬 번뇌의 마음을 만든다. 

유식학자들은 번뇌 종자를 끌어들이는 마음이 있다고 보았다. 말나식이다. 말나식은 아뢰야식의 종자에서 번뇌에 물든 마음이 생성되는 과정에 있어야 할 것으로 설정된 마음이었다.

우리는 한가할 때, 즉 깨어있으나 특별한 과제가 없을 때 흔히 ‘나’ 자신을 생각한다.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은 항상 아치(我痴),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애(我愛)을 수반한다. 말나식이 만드는 네 가지 근본 번뇌이다. 아치는 자기의 본질을 모르는 지적인 어리석음이다. 즉, 무아의 이치를 모르는 무지이다. 아견은 아치의 번뇌가 일어난 후에 나타나는 망견으로 자아(ātman)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그릇된 견해이다. 이는 나에 대한 집착심을 일으켜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일어나게 한다. 아만은 집착한 자아를 믿고서 교만을 부리는 것이다. 아애는 마음속 깊이 집착한 자아에 대하여 애착하는 마음이다. 이 모두는 말라식이 만드는 오염된 마음이다.

아치·아견·아만·아애의 근본 번뇌를 수반하는 마음을 염오심(染污心) 혹은 염오식(染污識)이라 한다. 의근에 포섭되어야 의식이 된다. 종자의 활성이 의근에 포섭되면 의식이 된다. 그런데 범부들의 의식은 네 가지 근본 번뇌(염오식)로 오염되어 있다. 의식이 생성되는 과정에서 염오식은 언제 끼어들까? 염오식을 만드는 말나식은 제6 의식보다 더 깊은 심층에서 활동하면서 자아를 집착하는 제7식의 마음이다. 의근은 일반적인 의식을 생성한다. 발자국 소리를 의식으로 불러들이고, 그 주인공을 아는 것이 의근의 역할이다. 그런데 거기에 탐진치로 오염된 마음이 끼어들게 된다. 

유식학자들은 번뇌 종자를 포섭하여 의식에 첨가하는 그런 마음인 말라식을 설정하고 의근과는 다른 또 하나의 의근인 염오의(染污意 kliṣṭaṃ manaḥ)를 설정했다. 따라서 법경(종자)을 포섭하는 의에는 두 가지가 있으며, 염오의는 탐진치 마음오염을 포섭하여 의식에 첨가하는 네 가지 번뇌와 항상 상응한다고 보았다.

어떤 마음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 마음을 만드는 뇌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말나식을 만드는 뇌의 구조는 무엇일까? 말나식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이기에 자아의 뇌가 만드는 마음이다. 자아는 나의 역사가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나의 서사시에서 나온다. 이야기하는 자아(narrative ego)이다. ‘나의 서사시’는 기본모드신경망(default mode network)에 있다. 세월은 스쳐 지나가지만 나의 경험과 생각은 고스란히 기본모드신경망에 축적되고, 그것은 나의 자아를 만든다. 자아는 본질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 자아가 주체가 되어 사실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나아가 왜곡한다. 기본모드신경망이 만드는 말나식의 마음이다. 

삶의 경험과 행동, 마음이 훈습되어 아뢰야식의 종자가 되고, 종자는 말나식 → 의식 → 전오식을 통하여 현재의 마음에 펼쳐진다. 펼쳐진 현상세계의 마음은 다시 역순의 과정을 거쳐 아뢰야식에 종자로 저장된다. 이러한 마음의 체화와 현행의 중심에 말나식이 관여하여 자아에 집요하게 집착하는 마음인 생멸심을 내게 된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항상 활동하는 말나식의 작용이 단절되지 않는 한 자아에 대한 근원적인 집착심으로부터 해방은 불가능하며, 이는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만든다. ‘너다 나다’ 하는 차별심을 여의어 일체의 모든 존재가 평등하다고 아는 지혜, 평등성지(平等性智)를 닦아야 한다.

문일수 동국대 의대 해부학 교수 moonis@dongguk.ac.kr

[1701호 / 2023년 10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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