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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수행이론의 총망라(74) - 깨친 이의 능력; 각론 ⑨

보현행 실천만 하면 여래 된다

수행공동체의 출가 중심 발상
사변 중심적 논의에서 벗어나
나·남 위해 실천적 삶 살아야
보살 통해 진리 전달법 연출

‘화엄경’ 작가는 말한다. 누구나, 언제나, 어디에서나, 보현행을 실천하기만 하면 여래가 된다고. 이것이 석가모니부처님의 본뜻이라고. 이것이 불교의 본질이라고. 그러니 당시 여러 파로 나뉘어 수행하던 수행공동체의 출가 중심적 발상이나 사변 중심적 논의 등에서 벗어나, 자신과 남의 안락을 위해 실천하는 삶을 살라고. 그렇다고 작가는 마구잡이로 불설(佛說)을 꾸미는 게 아니고 아함(阿含)의 말씀 전승에 충실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일반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고대 인도의 오랜 전통이 된 서사문학 장르에 착안했다. ‘보살’이라는 새 인물을 창안하여 대화라는 진리 탐구와 전달의 방법을 연출했다.

여래성기묘덕 보살에게 질문하게 하고 보현보살에게 대답하게 하는 구성진 방식을 취한다. ‘비춰 밝혀주기[光明]’와 ‘보태주어 품어 안기[加持]’의 방식으로 저 두 보살을 움직인다. 그리하여 여래께서는 어떤 ‘짓[業]’을 하시는 분인지 아함에 자주 등장하는 신·구·의 3업(業)으로 연출한다. 지난 84회에서는 ①몸의 업을 소개했다. 이번에는 ②말의 업을 역시 운허 스님의 ‘한글대장경’에서 인용한다. 

“불자여, 보살 마하살은 ⑴여래의 음성이 두루 이르는 줄을 알아야 하나니, 한량없는 음성에 두루하는 연고입니다. ⑵여래의 음성이 그들의 좋아하는 마음을 따라 환희케 함을 알아야 하나니, 법문 연설하기를 분명히 하는 연고입니다. ⑶여래의 음성이 그들의 믿고 이해함을 따라 환희케 함을 알아야 하나니, 마음이 청량해지는 연고입니다. ⑷여래의 음성이 교화하는 때를 놓치지 않음을 알아야 하나니, 들을 만한 이는 듣지 못함이 없는 연고입니다. ⑸여래의 음성이 나고 없어짐이 없음을 알아야 하나니, 메아리와 같은 연고입니다. ⑹여래의 음성이 주재[主]가 없음을 알아야 하나니, 온갖 업을 닦아서 일어나는 연고입니다. ⑺여래의 음성이 매우 깊은 줄을 알아야 하나니, 헤아리기 어려운 연고입니다. ⑻여래의 음성이 삿되고 굽음이 없음을 알아야 하나니, 법계로부터 나는 연고입니다. ⑼여래의 음성이 끊어짐이 없음을 알아야 하나니, 법계에 두루 들어가는 연고입니다. ⑽여래의 음성이 변함이 없음을 알아야 하나니, 끝까지 이르는 연고입니다.”

‘화엄경’ 구성작가가 보기에, 어디에도 계시고 어느 때도 계시는 진리 그 자체이신 부처님, 즉 법(法)을 몸[身]으로 삼으신 법신 부처님은 3업(業), 그중에서 말씀의 업이 위와 같다는 것이다. 당시 아비달마 논사처럼 다양한 매개 변수를 사용하는 아규먼트(argument)의 방식을 줄이고, 대승의 작가들은 대화의 내러티브(narrative) 방식을 늘린다. 그리하여 이야기가 길어져 오늘날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읽기 ‘지겹고·지루하고·늘어지고·반복하는’, 그런 느낌을 주기도 한다. 철학에서 출발하여 불교를 연구하는 필자는 ‘내러티브’ 보다 ‘아규먼트’를 선호한다. 그러나 어쩌랴. ‘화엄경’의 구조가 그런걸. 다양한 매개 변수를 임의 가설하여 분석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서 만난 인연이 경학(經學)이다. 

봉선사 월운 스님께서는 분석적으로 경을 읽도록 인도하셨다. 궁극에는 ‘화엄경 청량소’를 읽기 위해 ‘4교(敎)’의 이력 과정이 구성되었다는 말씀도 하셨다. 4교란 ‘금강경 간정기’ ‘기신론 필삭기’ ‘원각경 대소’ ‘능엄경 계환해’인데, 화엄을 읽지 않으면 4교를 읽어도 읽은 게 아니고, 4교의 행상을 숙지하지 못하면 법성종(法性宗) 교학의 체계적 이해가 난해하다. 더불어 한문 문장 해석하는 ‘석사(釋詞) 강사’에 그치지 말고, 더 나아가 불교 전체 가르침의 양상[敎相]을 분류하고 그 우열을 메길 수 있는 ‘교판(敎判) 강사’가 되라고 당부하셨다.

법성의 교학을 잘 드러내는 경전이 ‘화엄경’이라는 말도 가능하고, ‘화엄경’을 통해 법성의 교학을 세웠다는 말도 가능하다. ‘능엄경’의 계환 스님 주석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부님께서 ‘능엄경환해산보기’ 탈초와 교감과 현토에 20대 시절부터 90대 노년까지 공들이신 근본 이유도 성종(性宗) 교학의 정합성 수립 때문이시다. 사부님도 어머님도 안 계신 올가을 시린 바람이 속으로 스민다.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703호 / 2023년 11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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