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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자의 교단 참여 절실하다 

기자명 원영상

2000년 전 대승불교 출현에 재가자가 어떻게 관여했는가에 대한 연구는 일본학자 히라카와 아키라 교수에 의해 시작됐다. 석존의 유골을 모신 탑의 건축이나 관리가 재가자들에게 위임됐으며, 그것이 계기가 돼 재가자들이 대승교단 형성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동서양 학자들에 의해 이에 대한 반론과 재반론이 이어지고, 그것이 축적돼 대승불교 흥기의 기원에 대한 논의도 더욱 깊어졌다. 더불어 대승의 보살도가 출·재가가 함께하는 이상적인 공동체 이념임은 분명해졌다. 재가자들이 대승교단의 양 날개 중 하나임은 이제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필자는 이러한 역사 형성에서 사회적 콘텍스트(상황)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본다. 석존이 생존하던 지역을 포함한 인도 북부는 불상의 탄생과 함께 대승불교가 발전한 지역이다. 이곳은 이슬람의 침입을 비롯한 다양한 전쟁이 발생해 민중의 고통이 극심한 지역이기도 했다. 교단종교로서의 불교는 사회적 고(苦)에 대해서도 책임지는 자세가 요청되었다. 대승경전에 자주 등장하는, 불법의 권위로 왕들을 훈계하는 장면은 왕권시대에 정치 지도자들을 어떻게 교화할 것인가에 대한 불교의 고민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 부처인 석존을 뛰어넘어 사방에 부처가 존재한다는 시방불 사상을 거쳐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보편불 사상으로의 발전은 민중 구제에 대한 종교철학적 고민이 개입된 것이다. 물론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성문승 교단을 비판하는 ‘유마경’처럼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이 대승불교 이념의 확립에 큰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진속과 자타가 둘이 아닌 동체대비의 지구 공동체 의식을 형성한 교의의 발전도 한몫했다. 이 또한 민중 차원의 염원이다. 이로써 교화의 주체 또한 특별한 훈련을 받은 출가자만이 아니라, 대승의 이념인 육바라밀을 수용하고 사홍서원을 세운 그 누구라도 가능하게 되었다.

동아시아만 하더라도 수많은 재가자들에 의해 불법은 계승돼 왔다. 불법의 본의를 철견한 재가들이 스스로 불법의 주인이 되어 불조의 혜명을 이어왔던 것이다. 중국 근대불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양원훼이는 실연의 아픔을 삭이기 위해 항주의 서호를 걷다가 헌책방에서 ‘대승기신론’을 읽고 불법에 귀의해 근·현대불교의 초석을 놓았다. 일본의 이노우에 엔료는 오늘날 동양대학의 전신인 철학관을 세워 불교 계몽운동은 물론 현대문명에 대응하기 위한 불법의 철학화에 평생 매진했다. 실제로는 재가자의 면모에 가까운 한용운은 불법의 개혁과 대중화, 독립운동에 평생을 다 쏟아 부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과거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마’가 불법의 민중화에 기여한 것은 필설로 다 할 수 없다. 연기적 관계인 출가와 재가는 이처럼 불법의 영속성을 위한 두 축이 되어 장구한 불법의 역사를 엮어왔다.

최근 불교계는 출가자 감소로 위기감이 돌고 있다. 물론 한국 종교계 전체가 겪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탈종교화 현상은 사실 탈교단화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지성인들은 약육강식의 세계 질서 재구축을 위해 종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지구적 차원의 재난 해결을 위해 종교의 국제적인 연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10년 이내 한국불교계는 심각한 운영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렇다면 재가자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 이미 몇몇 종단과 교단들은 교육·복지·포교 등에 재가자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고 있다. 개혁불교인 원불교는 중앙종의회에 해당하는 수위단회에 3분의 1 수준으로 재가자들을 선출하기로 했다. 고무적인 일이다. 위기일수록 초기의 정신을 회복하면 된다. 무연대비(無緣大悲)에 기반한 ‘익명의 불교인’을 향해 출가·재가가 손을 잡고, 모든 중생의 의지처인 상가(saṃgha)를 재건하는 데에 힘을 쏟는다면 길은 열릴 것이다. 불법을 생활의 철학과 신행(信行)의 중심으로 삼은 사람에게 출가와 재가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이제 그들이 나설 차례다.

원영상 교수 wonyosa@naver.com

[1704호 / 2023년 1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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