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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영원히 미래에 머물고 있는 것들

세월이 나를 지워버린들 무엇이 두려우랴

내가 안다고 믿는 ‘나’는 나의 기억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과거를 지울 수 없지만 과거 영상은 때때로 바뀔 수 있어
한 운명의 주인은 ‘나’가 아닌 무시 이래 이어진 업의 동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한 장면. 팔순을 넘긴 노장이 과거의 자신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 질문을 던지는 것일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한 장면. 팔순을 넘긴 노장이 과거의 자신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 질문을 던지는 것일 수 있다.

나는 최근 들어 부쩍 나이가 들어감을 느낀다. 몇 차례 반복해서 어떤 당혹스런 경험을 하였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의 가까운 지인이 나의 과거에 관한 것인데 내가 처음 들어보는 사실 하나를 무심코 말한다. 다행히 내게는 판단력이 조금 남아 있기에 그 말이 진실임을 눈치챈다. 그러나 곧장 의문에 휩싸인다. 그때 그곳에 있었을 리 없는 그 지인이 어떻게 나도 모르는 나의 과거를 알고 있는 것일까. 그의 대답은 예전에 내게서 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증언으로 다시 옛 기억을 떠올린 것이 아니라 낯설음 속에서 그것을 받아들인다. 말하자면 마치 증빙서류의 한 칸에 적힌 어떤 숫자가 나의 출생 연도라고 믿듯, 타인의 말을 통해 한때 나 자신이기도 했던 어떤 사람의 일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비슷한 경험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나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 섬뜩한 상상을 하게 되었다. 만약 나의 과거가 대부분 내가 아닌 타인의 기억이나 어떤 증빙 서류상에서만 존재하거나, 혹은 지구상에선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에 새겨져 있다면, 내가 아는 ‘나’란 대체 무엇이고 과연 그런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물론 나는 불교도로서 ‘나도 없고 남도 없다’고 하는 경구를 자주 읊조리고 있고, 앞으로도 헤아릴 수 없이 그 말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만약 부처님처럼 우주의 섭리를 엿보았던 자라면, 또 다른 과거의 자기 운명을 하나 더 알게 되었다 해서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이제 그는 아무도 아니면서 모든 것이기도 한 자이기 때문에 과거 생(生)의 수많은 개별적인 ‘나’의 고통과 기쁨에 대해 무심할 것이다. 그런데 저 기이한 경험은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과거의 어디선가 잃어버렸을 수많은 나를 찾아보라고 재촉하는 것이다. 나는 젊은 시절의 희미한 기억을 애써 떠올려 보았지만 과거의 모든 것이 지워졌거나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차에 두 가지 우연한 사건이 그 문제에 대한 나의 몽환적 상상을 부추겼다.

나는 며칠 전 동네 영화관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애니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보았다. 소문대로 그것은 매우 아름답지만 지루하고 난해하였다. 나는 평생 한 가지 일에 열정과 신념을 갖고 살았던 사람을 막연히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 노장이 10년이라는 시간을 그저 쓸모없이 허비했을 리는 없다. 이런 생각으로 관람 후의 혼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영화관을 나설 무렵, 문득 그 작가와 나와의 기묘한 공감대가 이루어졌다. 어쩌면 그는 과거의 자신이기도 했던 어떤 사람에게 ‘자네는 어떻게 살아갈 건가’라는 질문을 던졌던 것은 아닐까. 나는 그 노장이 마치 한때 그 자신이었던 한 소년을 다른 형태로 되찾았다고 고백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이런 것이다. ‘80을 넘긴 나는 현실보다 생생한 나만의 꿈속에서 과거의 나 자신이었던 한 소년과 다시 만났고, 어린아이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충격에 놓인 그 소년에게 물밀듯 밀려오는 연민을 느꼈으며, 그가 스스로 자기 운명을 개척해 나가도록 격려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불가사의한 시공간 속에서 아주 은밀하게 그 일을 완수하였다.’

저 작가는 나로 하여금 다시 나의 과거를 떠올려 보라고 재촉하는 듯하였고, 그 결과 나는 과거와 현재가 갑자기 조우하는 어지러운 순간을 다시 한번 경험하였다. 나는 컴퓨터 속의 미로에 갇혀있던 어떤 짧은 문서에서 한때 나 자신이었던 20대 젊은이를 발견하였다. 그러니까 그는 1990년에 6개월 정도 명료한 형태로 존재했었고, 2006년의 문서에서 잠깐 나타났다 곧 사라졌으며, 2023년에 되찾게 된 사람이다. 그 문서에서는 과거의 내막을 잘 아는 타인이 등장해서 과거의 나 자신이었던 그에 대해 일깨워준다. 그 가련한 청춘은 자기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었던 이유로 이제 막 중대한 결정을 내리려 하고 있다. 그는 곧 자기의 삶에서 가장 소중했던 어떤 것을 영원히 잃어 버리고 커다란 상실감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깊은 회한에 잠긴 40대의 나는 스스로 위로할 겸 그 젊은이에게 다음과 같은 비밀스런 교리를 들려준다.

‘인연 따라 생하고 멸하는 이 세계에서는 어떤 것이 생연(生緣: 생하는 데 필요한 연)이 갖추어져서 생하게 되면, 그와 다른 어떤 것은 생연이 결여되어 끝내 생하지 않는다. 그때 그곳에서 연이 결여됨으로써 생하지 않은 것은 영원히 지연되어 미래에 머물게 된다. 이러한 불생법(不生法)은 그때 그곳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것들보다 더 견고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하는 것이 아니기에 결코 멸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마치 허공이나 열반처럼.’ 불교도들은 이처럼 지혜의 힘을 빌리지 않고 저절로 획득되는 불생불멸의 법을 ‘비택멸(非擇滅)’이라 명명하였고, 모든 유정은 한평생 그것을 무수히 성취한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말이 그 젊은이에게 새삼스레 무슨 위로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때 인생의 갈림길에서 하나의 길을 버려야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기가 가지 않은 그 길에서 결코 훼손될 수 없는 어떤 영원성을 감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2023년의 나는 17년 전의 문서를 통해서 33년 전의 그 젊은이를 되찾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그와 유사하면서도 너무 많이 달라져 있다. 필시 미륵의 후예들이 나를 그렇게 변화시켜 놓았을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부처님이라도 과거 자체를 흔들 수 없다. 누군가 만약 과거로 돌아가 하찮은 뭔가를 하나라도 지워버린다면 곧장 현재의 그는 무효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의 식(識)에 현현하는 과거의 영상을 바꿀 수는 있다. 그래서 내가 조심스럽게 그 젊은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자기 미래에 대한 그의 무심한 태도 속에 이미 지금의 내 모습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또 그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계속해서 살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누가 누구의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살아 있는 동안 잃어버렸다가 되찾았다가 하길 반복하면서 몇 차례나 더 그와 만나게 될지 알지 못한다. 만약 미래에 그가 또 다른 모습으로 나를 찾아온다면, 그에게 기꺼이 나의 자리를 내줄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한 개별적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무시 이래 그 젊은이에게로 와서 현재의 나에게 이어지고 다시 미래의 또 다른 나에게 이르게 될 저 끊임없는 업(業)의 동요일 것이다. 그러니 세월이 나를 지워버린다 한들 그리 두려워할 것은 없으리라.

백진순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dharmapala@hanmail.net

[1704호 / 2023년 1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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