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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마음을 관찰하는 위빠사나명상-3

기자명 일중 스님

대상 평온히 관찰하는 힘 키우기

구체적 물질 관찰 쉬우나
정신 대상은 가늠 어려워
불편한 마음은 회피 말고
잘 자각하고 알아차려야

필자가 30대였을 때이다. 스리랑카 명상센터에서 위빠사나명상을 처음 접한 후 몇 년간 계속 위빠사나명상만 해왔다. 그러다가 사마타명상을 본격적으로 지도한다는 소식을 듣고 미얀마 파욱센터에 갔었다. 그런데 기후와 환경 때문에 고생하는 것은 둘째치고, 호흡에 끈덕지게 일념집중하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다. 필자의 부족한 집중력도 문제였겠지만, 그동안 위빠사나명상으로 예리하게 계발시킨 마음챙김과 알아차림 때문이기도 했다. 몸과 마음에서 혹은 주변에서 조그만 현상이 일어나도 마음챙김은 너무나 기민하게 번개처럼 달려가 그 대상을 관찰하곤 했다. 결과적으로는 호흡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놓치는 상황이 반복된 것이다. 그래서 파욱센터에 머무는 동안 참 많이도 힘들었다. 

그렇다. 위빠사나명상을 오래 수행한 사람에게는 사마타명상이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사마타 명상자에겐 매 순간 대상들을 명료하게 보는 위빠사나명상이 어렵다고 한다. 그와 비슷하게 호흡이나 몸의 동작 등 몸관찰명상에 익숙한 수행자는 마음관찰명상이 어렵다고 한다. 구체적이고 분명하며 물질적인 대상을 관찰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는데,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대상은 잘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자, 이제부터 마음을 관찰해볼까요?”라고 하면 학생들은 ‘마음을 어디에서 관찰해야 하지?’라고 하며 방황한다. 또한 마음을 보려고 정신을 올곧게 챙기고 있으면, 숨박꼭질이나 하듯이 마음은 숨어버리고 잘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관찰명상을 가르칠 때는 그저 단순하게 생각이나 감정이 떠오르면 보라고 한다. 생각이나 감정, 마음의 반응을 보면 그것이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관찰하는 방식은 대략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호흡을 1차 대상으로 관찰하다가 마음에 생각이나 감정이 올라오면 ‘생각’이라고 알아차리는 방법이다. 또 한 가지 방법은, 호흡과 같은 1차 대상을 주지 않고 처음부터 바로 마음을 보게 하는 방식이다. 즉 마음챙기며 깨어있는 마음으로 있다가 생각이 떠오르면 생각을 관찰하고, 없으면 없다고 안다. 생각과 생각 사이에는 빈틈이 있기 마련이다. 그때는 생각 없음을 알면서 성성하게 마음챙기고 있으면 된다. 아마 이 점이 초심자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마음관찰명상을 할 때 몇 가지 유의할 점들이 있다. 관찰 대상이 없다고 일부러 생각을 일으키거나 대상을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위빠사나명상의 기본 원칙 중에 중요한 것은 현재 이 순간 있는 대상, 일어나는 대상을 보는 것이다. 과거에 경험했던 것을 끄집어내어 관찰할 필요가 없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들을 상상하며 관찰하지 않는다. 또 한 가지는 불편한 생각이나 감정이 올라올 때 그것을 평정심으로 관찰하기 매우 어려운 때가 있다. 그래서 그것을 없애버리거나 지워버리려고, 또는 다른 생각으로 덮어버리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마음관찰 위빠사나명상은 긍정적인 대상이든 불편한 대상이든 그저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관찰하는 명상법이다. 싫다고 저항하거나 회피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사실 불편한 마음, 고통스러운 마음을 보는 것은 많이 힘들다. 이때 생각이나 감정에 ‘이름 붙이기’를 해준다면, 대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사실 불편한 생각이나 감정은 없앨 대상이 아니라, 분명하게 자각하고 알아차릴 대상이다. 또 정화의 시간일 수도 있기에 그런 점을 자신에게 자꾸 일깨워줘야 한다. 

또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어떤 생각이나 감정, 기억이 떠올라 재경험될 때,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는 판단·평가를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비록 일상의 삶은 매 순간 판단평가하고 취사선택하는 삶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명상하는 시간만큼은 그런 판단평가를 중지해야 좋다. 그래야 탐진치와 같은 새로운 상카라(업형성력)를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대상을 평정심, 평온심으로 관찰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키우는 일, 이것이 수행자의 내공이고 수행결실을 산출하는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일중 스님 동국대 강사 satiupekkha@hanmail.net

[1704호 / 2023년 1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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