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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반야암 해운대포교원장 신경 스님

선정으로 마음의 근육 키워서 항상 주인으로 살아갑시다 

마음 웅덩이 맑게 해 멈추고 바라보는 선정 효과 제고
들숨·날숨 호흡 관찰하면 마음을 멈출 수 있는 힘 생겨
세계가 연기의 이치로 맺어짐 자각하고 동체대비 인식

통도사 반야암 해운대포교원장 신경 스님은 멈추고 바라보는 선정과 호흡 관찰을 통해 마음의 근육을 키워갈 것을 강조했다.
통도사 반야암 해운대포교원장 신경 스님은 멈추고 바라보는 선정과 호흡 관찰을 통해 마음의 근육을 키워갈 것을 강조했다.

요즘 뉴스에 보도되는 사건들을 보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묻지마 범죄, 보복 운전, 자살 등은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무비판적으로 표출한다는 점에서 그 방향성과 대상만 다를 뿐, 같은 원인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우리는 면역력과 힘을 키우고, 외부의 질병에 대응하여 튼튼하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운동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 또한 몸과 마찬가지로 운동이 필요합니다. 마음의 근육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운동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선정’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선정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행해야 하는 것일까요?

선정이란 명칭은 오히려 오늘날 명상이나 참선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종류에 따라서 약간씩 상이한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지만, 그 기초적인 방식은 사실 동일한 매커니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로 ‘멈추고 바라보기’입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분들은 언젠가 한 번쯤 작은 웅덩이에서 가재나 물고기를 잡아본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성급하게 물고기를 잡겠다는 의욕만 앞서서 웅덩이를 휘저어 흙탕물로 만들어 버렸을 때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던가요?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우선 흙탕물을 가라앉혀 웅덩이를 맑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멈추기(止)’입니다. 웅덩이가 맑아졌다면 이제 눈을 크게 뜨고 자세하게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간혹 물고기가 숨어버렸다면 바닥의 돌을 조심스레 들어서 살펴보기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바라보기(觀)’입니다. 

멈추고 바라보기, 즉 선정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앞서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웅덩이의 흙탕물을 먼저 가라앉혀야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선정을 효과적으로 행하기 위해 평소 욕심과 분노 걱정들로 흙탕물이 되어버린 마음 웅덩이를 맑게 만들어야만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티베트의 쫑카파 스님께서는 ‘보리도차제론(菩提道次第論)’에서 선정을 잘 닦기 위한 여섯 가지 준비단계로서 지자량(止資糧)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적합한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 둘째, 욕심이 없어야 한다. 셋째,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넷째, 욕심 등으로 인해 꺼리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다섯째, 의미 없는 일을 버려야 한다. 여섯째, 청정한 계율을 지켜야 한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먼저 ‘적합한 환경’이라는 것과 관련하여 쫑카파 스님께서는 어렵지 않게 걸식을 행할 수 있고 훌륭한 스승과 좋은 도반이 있으며, 시끄럽지 않은 곳이라 설명합니다. 본래 스님들을 위해서 설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재가불자들의 경우라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마실 물을 쉽게 구할 수 있으며, 화장실이 가깝고, 좋은 도반과 스님들이 있는 번잡하지 않은 곳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선정을 행하는 동안 방해 요소가 없는 곳을 찾는 것이 첫 번째 ‘지자량’인 것입니다. 

‘욕심이나 욕심 등으로 꺼리는 마음이 없고,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은 동일한 맥락에서 설명된 말입니다. 즉, 지나친 물질적 욕심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질적 욕심뿐만 아니라, 기도나 수행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또한 일종의 욕심으로서 선정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마음마저도 모두 내려놓고 편안한 상태를 만드는 것입니다.

‘의미 없는 일을 버린다는 것’은 불필요한 잡담이나 생각들을 행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말은 많이 할수록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이 처음 발심 출가하여 행자생활을 할 때에는 반드시 두 가지 원칙을 지키게 하는데, 첫 번째가 묵언(默言)이요, 두 번째가 하심(下心)입니다. 묵언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게 하는 방편이며, 하심은 출가 이전의 아상과 아만을 무너뜨리는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청정한 계율’은 모든 수행의 기초이며 근본입니다. 미세한 번뇌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외부의 거칠고 산란한 몸과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계율을 지키는 것입니다. 재가불자들의 경우라면 기본적으로 삼귀의계와 재가오계를 받았을 것입니다. 즉 몸과 마음을 다하여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살생, 투도, 사음, 망어, 음주라는 다섯 가지 불선업(不善業)을 행하지 않고자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선정의 원리를 잘 알고 머리로 이해하였다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선정에 들어가는 일은 처음 선정을 닦는 일반인들로서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이미 이러한 중생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계셨기에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불교 특유의 수행법을 일러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안나빤나 사띠(安那般那念;ānāpānasati) 혹은 수식관(數息觀)이라 불리는 호흡법입니다. 안나(ānā)란 들숨, 아빤나(āpāna)란 날숨, 사띠(sati)란 알아차림을 뜻합니다. 즉 자기 자신의 들숨과 날숨 즉 호흡을 찰나 찰나 관찰하고 알아차림으로써 선정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대하여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호흡에 의식을 집중한다. 나가는 숨이 길면 숨이 길다고 알고, 나가는 숨이 짧으면 숨이 짧다고 알며, 나가는 숨이 따뜻하면 숨이 따뜻하다고 알고, 들어오는 숨이 차가우면 숨이 차갑다고 안다. 몸을 모두 관찰하여 들숨 날숨이 모두 이와 같음을 안다. 숨이 조급하면 숨이 조급하다고 알고, 숨이 완만하면 숨이 완만하다고 안다.”

호흡은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잠시도 멈출 수 없는 생존행위입니다. 음식이나 물 없이 며칠을 버틸 수는 있어도, 공기를 들이마시지 못한다면 불과 몇 분 이상도 생존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쉴 틈 없이 일어나고 있지만 평소 인식하지 못하는 호흡을 수행에 접목시킨 것이 바로 안나빤나 사띠입니다. 호흡은 우리의 몸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니, 여기에 우리의 마음을 집중시키게 되면, 마음이 언제나 호흡에 집중되어 산란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간혹 잡념에 빠져들어 호흡을 놓치게 되더라도, 얼른 망상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리고 호흡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호흡은 언제나 일어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러한 안나빤나사티를 좀 더 기교있게 발전시킨 것이 수식관입니다. 수식관은 말 그대로 ‘호흡을 세어 관찰한다’는 것입니다. 호흡의 느낌이나 작용을 관찰하는 것에 더하여 호흡에 수를 넣어 세어가며 함께 관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다섯 번 수를 세면서 들이키고, 열 번을 세면서 내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때 숫자의 개수와 간격은 본인의 호흡에 맞게 조절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호흡을 관찰하는 행위가 앞서 말한 ‘멈추고 바라보는’ 선정의 방식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이며 어떤 효과가 있는 것일까요? 자신의 호흡에 수를 넣어 관찰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을 자유자재로 한 곳에 집중 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게 됩니다. 호흡과 숫자에 마음을 매어 놓음으로써 잡생각이 일어남을 멈추고 마음이 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수행방식인 것입니다. 즉 ‘마음을 멈출 수 있는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에 집중하여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나면, 그 집중력의 범위와 개수를 점점 넓혀 나갈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집중하여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의 범위가 늘어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여 선정의 힘과 범위가 넓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정력의 계발이 바로 마음의 근육을 늘리는 것이 됩니다. 마음의 근육이 약할 때는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기도 어렵지만 마음의 근육이 강화되면 자기 자신의 마음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마음과 외부세계까지도 포괄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일종의 메타인지력이 계발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힘은 자신의 마음을 효과적으로 관찰하고 제어할 수 있게 합니다. 또한 외부의 자극이나 상황에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줄 뿐만 아니라, 나와 남이 그리고 이 모든 세계가 연기(緣起)의 이치로 맺어져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선정’에서 ‘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와 남이 시공(時空)이라는 씨줄과 날줄 속에 연기적으로 맺어져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됨으로써 나와 남이 둘이 아니라는 자타불이(自他不二)와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인식이 일어나고, 이것은 보살행 즉 바라밀행의 실천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와 남이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인연 줄로 맺어져 있고, 나아가 일체중생이 수억 겁 생을 윤회해 오면서 어느 때인가 나의 어머니였고 아들이었으며 친구였고 스승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선정력의 계발은 마음의 근육을 길러 어느 곳에서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수처작주(隨處作主)의 힘을 줄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이 연기의 이치로 연결된 진리법계 그 자체임을 알게 하는 입처개진(立處皆眞)의 진정한 ‘운동’인 것입니다. 

불자 여러분! 오늘부터 마음의 근육을 한 번 키워 보시겠습니까?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지난 10월19일 통도사 반야암 해운대포교원에서 봉행된 ‘초심자를 위한 불교 강좌’에서 원장 신경 스님(영축총림 통도사 포교국장)이 ‘마음의 근육을 키우자’를 주제로 설한 강의를 요약한 것입니다.

[1704호 / 2023년 1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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