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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년간 이어온 스토리텔링 고전

  • 불서
  • 입력 2023.11.20 13:27
  • 호수 1705
  • 댓글 0

잡보장경
동국역경원 역경위원회 옮김/성재헌 원문교감·윤문/동국역경원 /500쪽/3만5000원

스토리텔링은 재미와 정보 전달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도록 하며, 관점 전환과 행동 변화를 이끌어낸다. 또 복잡한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하고, 등장인물의 경험과 가치를 공유하도록 한다.

옛 불교인들은 스토리텔링이 사람들의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잘 알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잡보장경’은 2200여년 전 성립된 경전으로 ‘현우경’ ‘찬집백연경’과 함께 불교설화 비유문학의 3대 걸작으로 불린다. 부처님 전생 이야기인 ‘본생담’과 부처님 제자들의 전생 이야기인 ‘비유담’, 그 밖의 여러 사건의 인연과 배경을 설화적으로 이야기한 ‘인연담’ 등을 모아놓은 경전이다. 6세기 말 한역으로 번역돼 동아시아에서도 널리 읽힌 고전 중 고전이라 할 수 있다.

121가지의 짧은 설화들로 이뤄진 ‘잡보장경’은 총 10권으로 효양(孝養), 비방(誹謗), 시행(施行), 교화, 투쟁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에 따라 차례로 편집됐다. 제1~2권에서는 효도한 이와 불효한 이가 받은 과보를 밝혀 효행을 권장한 이야기들을 수록했다. 제3권에서는 비방과 분노에 따른 엄중한 과보를 밝혀 악행을 경계한 이야기들을 실었다. 제4~7권까지는 보시를 실천해 그 공덕으로 하늘나라에 태어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8~9권에서는 부처님과 제자들이 선행으로 악인을 교화한 이야기들이 수록됐다. 마지막 10권에서는 다툼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통해 다툼이 불러오는 재앙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고 고주몽이 알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성립된 이야기들이라고 해서 조잡하다거나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온갖 보배가 가득한 경이라는 ‘잡보장경(雜寶藏經)’의 제목처럼 재미와 통찰, 인생의 지혜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자기 몸을 구워 선인에게 공양한 토끼, 몸 하나에 머리가 둘인 공명조, 광야의 귀신과 도적 떼 등 어디선가 들어봤음 직한 이야기들도 있다. 고려시대 국법으로 사람이 늙으면 내다 버리는 고려장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한 대신이 늙은 어머니를 버릴 수 없어 벽장에 숨기고 모셨는데 중국에서 고려에 인재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세 가지 문제를 냈는데 대신이 노모의 지혜로 이를 해결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이야기 출처는 ‘잡보장경’이다. 원래 내용은 이렇다. 노인을 버리는 풍습이 있던 나라에 하늘의 신이 여러 문제를 내며 답이 틀리면 나라를 멸망시키겠다고 했다. 이때 한 대신이 몰래 숨겼던 아버지 도움으로 모든 문제를 맞춘다는 내용이다. 거대한 하얀 코끼리의 무게는? 네모 반듯한 나무토막 중 어디가 뿌리 쪽인지? 똑같은 두 마리의 말 중 어느 것이 어미이고 새끼인지를 맞추라는 것이다. 다만 고려장에는 이 3가지 문제가 등장하지만 ‘잡보장경’에는 여섯 가지 문제가 더 나온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이 밖에 여섯 개의 어금니를 가진 하얀 코끼리, 시기심으로 아들을 죽인 범마달왕의 부인 등의 이야기들도 모두 흥미롭다. 하나하나 읽어나가다 보면 쫓기며 사는 속에는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한다.

원문교감·윤문은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및 한국불교전서 번역위원으로 활동하는 성재헌 위원이 맡았다.

이재형 대표 mitra@beopbo.com

[1705호 / 2023년 1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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