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난다 스님, ‘한·스 불교 교류’ 가교역할 컸다 

  • 사설
  • 입력 2023.11.20 13:50
  • 수정 2023.11.30 13:56
  • 호수 1705
  • 댓글 0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인권 대변
“생명 있는 모든 존재 행복해야”
수해 피해 복구 ‘조계종 마을’
조성 계획·추진에 남다른 조력

한국·스리랑카문화사회복지재단 감사 난다라타나(Nandaratana) 스님이 11월 10일 새벽(현지시간) 스리랑카에서 입적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애도문을 통해 “난다라타나 스님의 입적에 깊은 슬픔과 애도의 말씀을 올린다”며 “양국 불교 교류는 물론 우호증진에 크게 기여한 스님이 다시 사바세계에 오시어 중생구제와 불교발전에 힘써주시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이 외국인 스님의 입적에 애도문을 내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난다라타나 스님은 세납 열 살 때 패엽경으로 유명한 스리랑카 중부 마텔리주 알루비하라 사원에서 출가했다.(1976) 스리랑카 최대 종파인 시암종 소속이다. ‘난다’(Nanda)는 행복을 ‘라타나’(Ratana)는 삼보·보석을 의미한다. 패엽경 보존과 번역에 관심을 둔 난곡사 태허 스님의 제안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1994) 3년간의 언어연수를 거쳐 1997년 동국대 불교대학원에 입학한 스님은 2006년 동국대 불교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불학 연구에 힘쓰는 틈틈이 국내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했다.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과 조계사는 최근 태국 이주민 우사씨에게 이주민 돕기 캠페인으로 모금한 500만원을 전달했다. 육류 가공 공장에서 일하던 우사씨는 6월 30일 장갑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며 팔이 절단됐다. 사고 후유증도 심각한 상태인데 재활치료비와 의수 제작 등도 막막하다. 이러한 현실은 비단 태국 이주민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스리랑카, 베트남에서 온 노동자들도 똑같이 겪는 아픔이다. 

1990년 중반 이주노동자의 현장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잘려도 보상은커녕 곧바로 쫓겨나는 자국 노동자들의 뒷모습을 보며 스님은 눈물을 흘렸다. 스님 자신 또한 한국말이 서툴러 관계자들에게 항변조차 할 수 없었다. 얼마나 한스러웠겠는가.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대변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언어연수를 마치고 나서였다.

당시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에게 자비의 손길을 건넨 단체는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합과 난다라타나 스님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친분 있는 불자들에게 “불교국가에서 온 노동자들을 도와달라”고 호소하며 생필품을 받아 위문했으나 한계가 있었다. 의료 등의 실질적인 도움을 준 단체는 대부분 개신교 단체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교회 버스에 오르는 노동자들이 늘었다. 2004년 법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스님은 의미심장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그들의 아픈 가슴을 달랠 수 있는 사원이 절실한 실정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처님을 친견해 온 그들은 부처님 앞에 향을 사르며 자신과 동족을 위로하며 이 고난을 극복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들을 도울 힘이 우리에겐 부족합니다. 1만여 명 중 10%는 이미 개종했을 겁니다. 귀국하면 교회를 세우는 데 앞장설 겁니다.” 그로부터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스리랑카 최대의 도시 콜롬보에는 십자가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2003년 5월 스리랑카에 큰 수해가 발생했다.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라트나푸라 마을을 복구하며 ‘조계종 마을’을 조성했다.(2004) 주택 100여 채를 비롯해 법당과 설법전, 마을회관, 보건소, 우체국 등이 들어섰다. 이 불사는 양국 우호 교류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스리랑카 성지순례의 붐이 일기 시작했다. ‘조계종 마을’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하는데 난다라타나 스님의 조력은 컸다. 

스리랑카로 귀국한 뒤 알루비하라 사원 등 3곳의 주지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조계종 한국·스리랑카문화사회복지재단 감사를 맡아 스리랑카에 세운 조계종복지타운 운영을 도왔다. 최근까지도 스님은 한국과 스리랑카를 오가며 양국의 불교 교류와 전법에 매진했다. 한국에서 2008년 ‘불교학자료총서 34권’, 2010년 ‘팔리어 직역 법구경’을 펴냈다.

한국·스리랑카 불교계에 정통한 스님이었음에도 언론의 조명은 크게 받지 못했다.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하늘을 나는 새가 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출가 후 걸은 48년의 여정에서 우리는 스님의 전언을 읽을 수 있다. “생명 있는 모든 존재는 행복하라!” 

[1705호 / 2023년 1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