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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고대불교-삼국통일과불교(64) (8) 의상과 화엄종의 사회적 성격(20)

많은 발원문과 게송류는 진찬 아니지만 의상 영향력 극대화 증거

법장의 저서로 알려진 화엄경문답, 의상의 강의 필록 가능성 커
짧은 발원문이나 게송류 글들은 대부분 의상에게 가탁 된 저작
의상에게 가탁된 글들의 성립 시기와 배경 연구는 새로운 과제  

정병삼 교수 소장 ‘백화도량발원문약해’ 7장. 2012년 망실된 5장과 7장이 포함된 ‘백화도량발원문약해’가 세상에 공개됐다.        [법보신문DB]
정병삼 교수 소장 ‘백화도량발원문약해’ 7장. 2012년 망실된 5장과 7장이 포함된 ‘백화도량발원문약해’가 세상에 공개됐다.        [법보신문DB]

지난 호에서는 의천의 ‘신편제종교장총록’에 의상의 저술로 수록된 ‘일승법계도1권’ ‘십문간법관(十門看法觀)1권’ ‘입법계품초기(入法界品鈔記)1권’ ‘소아미타경의기(小阿彌陀經義記)1권’ 등 4종 가운데서 특히 ‘입법계품초기’와 ‘소아미타경의기’에 대하여 약간의 의문을 제기하고 재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입법계품초기’는 스승 지엄의 ‘입법계품초’에 대한 주석으로 이해되고 있으나, 지엄의 저술 자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며, 또한 균여의 저술 목록 가운데서도 같은 이름과 권수의 ‘입법계품초기’ 1권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소아미타경의기’의 문제에서는 의상의 아미타신앙의 내용에 대한 의문점을 지적하고, 아울러 아미타불을 서쪽에 봉안한 무량수전을 중심으로 하는 부석사의 가람 구조와 관련하여 의상 사후 화엄종의 아미타정토신앙의 변화과정을 치밀하게 추구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현존하는 자료로서는 확정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하여 이렇게 장황하게 언급한 것은 의상의 저술 문제에 대한 기초적인 검토 작업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의상의 불교사상 이해는 모래 위에 세운 누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의상의 화엄사상에 대한 이해가 본격적으로 추구되는 가운데 앞에 열거한 4종의 의상의 저술 이외에 의상의 강의를 제자들이 필록한 ‘화엄경문답(華嚴經問答)’ ‘추동기(錐洞記)’ ‘도신장(道身章)’ 등을 주목할 필요성이 새롭게 제기되었다. 특히 그동안 중국 화엄종의 대성자인 법장의 저서로 알려져 왔던 ‘화엄경문답’이 요시즈 요시히데(吉津宜英)에 의해 지엄 교학의 영향 아래 신라에서 찬술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고(‘舊來成佛에 대하여’ 인도학불교학연구32-1,1983), 이어 이시이 코세이(石井公成)는 그 책의 문체와 인용 문헌, 그리고 사상 내용 등을 종합하여 검토할 때 의상의 직제자들의 필록이거나, 그것을 편집하였을 가능성이 있음을 주장하였다. 예를 들면 ‘화엄경문답’에는 ‘극과회심(極果廻心)’ 등 의상 계통의 사상과 공통되는 점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화엄경문답의 저자’ 인도학불교학연구33-2,1985). 김상현은 이러한 견해를 계승하여 ‘법계도기총수록’과 균여의 저서들에 인용되어 전하는 ‘추동기’의 일문(逸文) 9부분이 모두 ‘화엄경문답’의 내용과 거의 같음을 확인하고, ‘화엄경문답’은 의상의 강의를 제자인 지통이 기록 정리한 ‘추동기’의 이본(異本)이라고 주장하였다(‘추동기와 그 이본 화엄경문답’ 한국학보84,1996). 이시이 코세이가 의상 제자들의 필록임은 동의하면서도 ‘지통기’의 일문이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화엄경문답’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보아 ‘지통기’가 ‘화엄경문답’의 이본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과 다른 견해였다. 그런데 두 책의 관계가 이본인가, 아니면 별개의 필록인가 여부는 앞으로 좀 더 면밀한 조사가 요구되는 문제라고 보지만, 두 책 모두 의상의 제자들이 스승의 강의 내용을 필록한 것이거나 그것을 편집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다. 그런데 의상의 강의가 주로 문답의 형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질문하거나 기록하는 사람에 따라 이해한 내용과 표현에서 다소의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의상이 지엄의 화엄학을 전수하여 귀국한 이후 문도들에게 어떻게 계승시켜 주었는지 좀 더 생생한 실상에 접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자료가 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한편 의상의 저술로 전승되는 것 가운데는 발원문이나 게송류의 글들이 유난히 많은데, 의상의 저서가 모두 4권에 불과하고, 하나같이 1권 분량을 넘지 못하는 단편의 저술들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이색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그러한 짧은 발원문이나 게송류의 글들이 후세에 필사되거나 간행되면서 계속 전승되었다는 사실은 의상의 불교신앙이 한국불교사에 미친 영향이 그만큼 컸음을 나타내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현재 ‘백화도량발원문(白花道場發願文)’ ‘일승발원문(一乘發願文)’ ‘투사례(投師禮)’ ‘서방가(西方歌)’ 등 4편의 글이 일찍이 김상현에 의해 발굴 소개되었는데(‘의상의 신앙과 발원문’ 용암차문석교수화갑기념사학논총,1989), 자료의 소개자는 의상의 찬술로 인정하였지만, 의상의 진찬 여부와 함께 그 전승과정에 대해서 철저한 재검토가 요구되는 문제이다. 

먼저 ‘백화도량발원문’은 의상이 낙산의 관음굴에서 관음 진신을 친견하고자 예배하면서 그 발원문으로 지었다는 글이다. 이 글은 고려후기인 1334년 체원이 발원문을 해석하여 ‘백화도량발원문약해’를 편찬함으로써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이 책은 1344년 해인사에서 간행된 이후 9차례 이상 인출을 거듭하였음을 보아 상당히 널리 유포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한국불교전서’ 권6에는 전체 20장 가운데 제5와 제7의 2장이 결락되었는데, 최근 정병삼이 결락된 2장이 포함된 새로운 판본을 찾아내어 20장 305자의 전문을 복원하게 되었다(‘백화도량발원문약해의 저술과 유통’ 한국사연구151,2010). 그런데 체원은 이 발원문이 의상의 진찬으로 확신하고 주석하여 간행하였지만, 현재 학계에서는 의상의 저술이 아니고, 그의 관음신앙을 계승한 후대인의 저술이라는 견해가 점차 공감을 넓혀가고 있다(김영태, ‘백화도량발원문의 몇 가지 문제’ 한국불교학13,1988:기무라 기요타카, ‘백화도량발원문고’ 중국의 불교와 문화,1988:‘백화도량발원문재고’ 조선문화연구1,1994). 

‘백화도량(白花道場)’이라는 제목의 표현이 의상보다 후대에 활동한 징관이 주본 80권 ‘화엄경’을 해석한 이후 널리 사용되었고, 또한 ‘원통삼매(圓通三昧)’와 같은 발원문의 문구도 의상 사후에 한역된 ‘수능엄경’에 나오는 표현이라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의상의 사후인 8세기 말 이후의 저술로 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이 발원문은 의상의 사상과 신앙을 계승하던 법손들이 찬술한 것으로서 의상의 관음신앙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종전의 이해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의상의 낙산의 관음보살 진신 친견의 설화에 의거하여 의상의 관음신앙과 낙산사 창건을 그대로 역사적 사실로 이해하려는 안일한 자세는 문제가 없지 않다. 나로서는 의상의 ‘일승법계도’와의 사상적 연관성을 고려하고, 의상의 낙산의 관음보살 진신 친견 설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하여 의상의 관음신앙 내용과 성격, 그리고 이후 화엄종에서 관음신앙이 변화하는 과정에 대한 면밀한 재검토가 요구되는 문제라고 본다.

다음 ‘일승발원문’은 1350년에 감지금니의 ‘대방광불화엄경’ 필사본의 끝부분에 “의상화상일승발원문”이라는 제목으로 부기되어 전해졌는데, 화엄신앙의 보현행원을 사상적 배경으로 보살도의 실천을 노래한 것이다. 7언 20구 140자의 짧은 글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화엄행자로서의 의상의 화엄사상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다. 의상 화엄사상의 충실한 계승을 자처하는 후대의 화엄종에서 찬술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화엄교주인 비로자나불의 불국토인 연화장세계에 왕생하여 비로자나불을 친견하고 일체중생이 모두 성불하기를 바라는 화엄정토 신앙은 화엄종의 본찰인 부석사의 가람 구조에서 드러난 아미타정토 신앙과 다른 화엄정토 세계로의 지향이다. 그런데 ‘일승발원문’의 이러한 화엄정토 신앙은 그것보다 다소 늦은 시기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면서 ‘소아미타경’의 내용에 따라 극락세계의 각종 장엄을 열거한 ‘서방가’와 대조되는 신앙이다. ‘서방가’는 1572년 천불산 개천사에서 간행한 ‘염불작법’의 끝부분에 “의상화상서방가”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10장 646자의 경기체가(景幾體歌) 형식으로 되어 있다. 경기체가라는 노래 형식으로 보아 13~16세기 ‘소아미타경’의 내용을 가사화하여 극락세계의 공덕 장엄을 쉽게 외워 노래할 수 있게 한 것인데, 대중에의 포교를 위해 의상의 이름을 찬술자로 가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의상과 도반의 관계였던 원효가 ‘미타증성가(彌陀證性歌)’, 같은 시기 광덕은 ‘원왕생가(願往生歌)’ 등 정토신앙을 토대로 한 노래를 지어 대중적 유포에 활용하기도 하였고, 더욱 의상에게 ‘소아미타경’의 주석서가 있던 점을 들어 의상이 ‘아미타경’을 요약한 ‘서방가’를 지었을 가능성도 있었고, 이것이 훗날 경기체가 형식으로 개편되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의상의 근엄 성실한 화엄수행자로서의 자세를 보아 의상이 ‘서방가’를 직접 지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이상의 3편 발원문이 각각 보타낙가산에서의 관음보살 진신의 친견이나, 화엄정토인 연화장세계의 비로자나불 친견을 발원하고, 또한 아미타불 극락세계의 공덕 장엄을 노래한 것에 비해서, ‘투사례’는 불·법·승 3보에 대한 예배를 노래한 예불문의 형태를 갖고 있는 점이 다르다. 이 ‘투사례’는 1529년 전라도 광양 만수암에서 개간한 ‘염불작법’ 가운데 수록되어 전해졌는데, 7언 4구 28수 656자의 글로 이루어졌다. 이 글의 수집자는 밀계(密契)인데, 고려말부터 조선 중종 때까지의 어느 시점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염불작법’에서는 “의상화상투사례”라고 하여 ‘투사례’의 작자가 의상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으나, 40권 ‘화엄경’이나 ‘원각경’ 등이 인용되어 있는 것만을 보아도 의상의 저술일 수 없음은 물론이다. ‘투사례’는 몸을 스승에게 던져 예배한다는 의미로서 여기에서 예배의 대상은 불·법·승 3보 바로 그것이다. 불보로서는 노사나불을 위시해서 매우 다양한 부처를 예배의 대상으로 칭명하고, 법보로서는 ‘화엄경’을 위시하여 여러 다양한 경론을 들고 있다. 그리고 승보로서는 문수·보현보살을 위주로 하여 여러 보살들과 다양한 선지식·조사·성문·연각 등으로부터 제석·토지·팔부신중 등에 이르기까지 열거함으로써 거의 모든 신앙 대상을 집성하여 예경의 대상으로 삼았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러나 불보 가운데는 화엄교주 노사나불, 법보 가운데는 ‘대방광불화엄경’, 승보 가운데는 문수·보현보살을 제일 앞서 투사례의 대상으로 삼은 것을 보아 ‘일승발원문’과 취지를 같이 하는 화엄예불문이라고 칭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조선전기 불교종파가 통폐합되고 각 종파의 정체성이 상실되어 가던 불교계의 변화에 상응하여 불교신앙도 화엄신앙 중심으로 통합되어 갔는데, ‘투사례’에서의 잡다한 예경 대상도 그러한 변화의 산물로 이해된다.

이상에서 의상의 찬술로 전해지는 ‘백화도량발원문’ ‘일승발원문’ ‘서방가’ ‘투사례’ 등의 발원문을 검토한 결과, 4편 모두 의상의 진찬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발원문들이 의상의 진찬이 아니라고 해서 자료적인 가치나 역사적 의미가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의상의 불교 업적을 축소하여 평가하는 결과를 낳는 것도 아니다. 의상 사후 그에게 가탁한 글들이 많이 만들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불교의 역사에서 의상이 차지한 위치가 매우 높았음을 상징하는 것이고, 의상의 불교사상과 신앙이 후대에 미친 영향이 대단히 컸음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상에게 가탁한 글들의 성립 시기와 불교사적 배경을 밝히는 문제는 불교사 연구자에게 주어진 또 다른 의미의 새로운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최병헌 서울대 명예교수 shilrim9@snu.ac.kr   

[1705호 / 2023년 1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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