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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이 지금 바로 눈앞이다 

기자명 혜민 스님

22. 망상으로부터의 해탈

해탈은 모든 모양을 떠난 상태
떠났다는 생각조차 멸한 경우
잃어버릴 수도 떠날 수도 없는
변치 않는 현재 정신차려 봐야

참으로 오묘한 것이 중생과 부처가 똑같은 한 세상에 살고 있는데, 한 명은 이곳을 사바세계로 보고 고통을 받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이곳을 열반지로 느끼면서 그 어떤 걸림도 없이 아주 자유롭다는 것이다. 이 차이가 무엇일까를 가만히 보면 생각보다 아주 간단한데, 바로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망상 속에 갇혀 그 망상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느끼면서 사는가, 아니면 망상 속에 살아도 망상인 줄 알고 얽매임 없이 자유로운가 하는 차이이다. 

‘묘법연화경’의 ‘약초유품’을 보면 중생이 모든 망상으로부터 해탈한 상태는 오직 하나의 모양으로 귀결된다고 하면서, 그 모양을 풀어서 이상(離相)과 멸상(滅相)이라고 표현했다. 이 말을 해석해 보면, 해탈은 세상 일체 모든 모양들로부터 떠난 상태를 말하고, 더불어 떠났다는 그 생각조차도 멸한 경우라는 것이다. 지금부터 이 경전 말씀을 조금 더 다가오기 쉽게 현실 세계로 가져와 독자들과 함께 나누어 볼까 한다.

우선 우리 중생이 고통을 받는 상황을 가만히 보면 많은 경우가 바로 자기에게 일어난 어떤 일련의 일들을 하나의 연결된 이야기로 쭉 묶어서 마음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계속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 이야기가 나에게 일어났던 좋지 않은 일이었거나, 자신을 이런 저런 프레임 안으로 가두는 과거의 어떤 이야기라고 해도 그 이야기를 철썩같이 받아들여 본인의 정체성으로 동일시하면서 집착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지금 본인이 누구인지 소개하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어느 도시, 어느 집안에서 몇째로 태어났고, 부모님과의 관계가 어떠했고, 어느 학교를 다녔으며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이야기한다. 결혼을 해서 자식이 있다면 그 이야기를 또 이어서 할 것이고, 회사를 다녔다면 그 이야기를 또 섞어서 하기도 할 것이다. 즉, 나라고 하는 존재를 과거에서 선별적으로 가져온 이야기 꾸러미에서 찾으면서 인과의 결과로 지금 이곳에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수행자들의 경우도 물어보면 비슷하게 대답한다. 출가자라면 본인의 은사스님이 누구시고, 출가 사찰은 어디이며, 그 사찰이 속한 본사는 또 어디이고, 강원이나 선방, 대학에서 어떻게 공부했는지 그 이력을 주로 말한다. 출가자가 아니라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지금까지 어떤 스승들을 찾아다녔고, 어떤 책들을 읽었고, 어떤 수행 프로그램에 참석해서, 어떠한 신비한 깨달음의 경험을 했는지 이야기한다. 어떤 분은 명상 중에 본 특별한 영상이나, 느낌, 혹은 불보살님과의 만남, 혹은 다른 세상을 다녀온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식의 이야기들로 자신을 삼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우리 중생이 사는 세계는 엄연히 원인과 결과가 있는 연기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말씀하신 그런 이야기들이 지금 바로 눈앞 현재에도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마음의 초점을 과거의 이야기들이 아니고, 지금 바로 눈앞에다 맞추어서 경험하는 그대로를 묘사하라고 한다면 어떠한가? 현재 눈앞에 그런 이야기가 있는가? 지금 현재에 그런 이야기를 포함한 어떤 생각이 있을 수 있는가? 생각을 했다고 하면 그건 과거의 산물이지 현재의 것이 아니다. 왜냐면 그 누구도 현재를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현재에다 초점을 맞추면 내가 아는 모든 이야기들이 다 떨어져 나가고 시원하게 통으로 텅 비어있다. ‘법화경’ 말씀 그대로 이상 멸상이다. 현재에는 그 어떤 망상 하나라도 서 있을 자리가 없으며, 현재가 사라질 수가 있거나, 아니면 다시 새롭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에 연기를 벗어나 있다. 연기하지 않으니 윤회라든가, 생각으로 만들어 낸 시간이라는 개념도 여기를 범접할 수 없다. 그 어떤 대상이나 이야기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자기라는 생각도 사실 없다. 그저, 한계를 알 수 없는, 모양 없는 텅 빈 자유가 온 우주에 통으로 살아서 현존할 뿐이다. 종종 수행자 중에 자신이 전에 경험했던 신비한 체험 이야기를 붙잡고 있는 분을 많이 본다. 아쉽지만 그 체험 이야기도 그저 지나간 이야기일 뿐이다. 빨리 그 모든 과거 이야기를 다 놓고, 잃어버릴 수도 없고, 떠날 수도 없고, 변하지도 않는 현재를 정신 차리고 보자. 구경(究竟)이 지금 바로 눈앞이다.

혜민 스님 godamtemple@gmail.com

[1705호 / 2023년 1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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