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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마음을 관찰하는 위빠사나명상-4

기자명 일중 스님

생각·감정이 제 길 가게 허용해야

미운 사람 생각하지 말고
싫어하는 내 마음에 집중
나와 생각 동일시 벗어나면
괴로움은 훨씬 더 줄어들 것

마음관찰명상, 심념처를 중심으로 위빠사나를 지도하는 명상센터가 있다. 미얀마의 쉐우민센터이다. 이곳은 우 꼬살라 사야도의 제자인 우 떼자니야 사야도가 계신 곳인데, 우리 한국 수행자들이 아주 많이 가는 곳이다. 필자도 8~9년 전에 쉐우민센터에서 2주간 머물면서 수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명상홀에서 자리를 틀고 앉으면 동일한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위빠사나 수행자는 생각이 떠오르면 생각을 대상으로 알아차리고 관찰한다. 분명한 마음챙김으로 관찰하면 대부분의 생각은 멈추거나 바로 사라진다. 그런데 그때에는 같은 생각이 연거푸 계속 올라와서 그걸 보는 것이 매우 힘들고 불편했다. 필자는 관찰한다고 했는데도 생각들이 사라지질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는 스승과의 인터뷰 시간에 “똑같은 생각이 계속 떠올라서 너무 괴롭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요?”라고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우 떼자니야 사야도는 “생각 속의 사람을 보지 말고, 싫은 마음, 불편해하는 네 마음을 보라”고 답을 해주셨다. 즉 나를 불편하게 했던 생각 속의 사람을 보지 말고, 그 사람에게 반응하는 내 마음을 관찰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생각 속의 그 사람을 보지 않고, 싫어하고 불편해하는 내 마음을 분명하게 알아차리고 관찰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생각은 바로 멈추었고, 그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었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보자. 어떤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그 당시 필자는 생각을 관찰한다고 했지만, 실은 생각 속의 대상을 보면서 싫은 마음, 저항하는 마음을 계속 내고 있던 것이다. 평정심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생각을 관찰했다기보다는 싫어하는 마음을 계속 일으키고 있었으니, 그 마음이 조건이 되어 생각이 계속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사야도의 가르침대로 어떤 사람을 보지 않고 내 마음으로 대상을 바꿔주니 문제는 아주 쉽게 해결되었다. 어떤 생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생각 속의 미운 사람을 보지 말고 저항하는 자신의 마음을 한번 관찰해보시길 권유드린다.

위빠사나명상은 대상을 보도록 지도한다. 대상을 관찰하는 수행이 위빠사나명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떼자니야 사야도는 한 발 더 나아가 대상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대상을 보는 마음, 대상에 반응하는 자기 마음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진짜 수행은 대상과 대상을 보는 마음, 이 두 가지를 다 알아차리고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상위인지, 메따인지’를 의미한다.

생각은 조건 발생이다. 영원하거나 고정되지 않았다. 일정 기간 작용하다가 사라진다. 지나가는 바람을 붙들고 울고불고 매달리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생각이나 감정은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집착하는 경향이 많다. 생각이나 감정도 일어났다가 제 길로 간다. 가도록 허용하고 인정해주자. 생각의 내용은 ‘내가 아니다’라고 한다. 내가 아닌 것에 매달려 에너지를 소진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생각의 내용 때문에 우리는 수없이 영향을 받지만, 생각과의 동일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괴로움은 훨씬 더 줄어들 것이다. 

‘대념처경 심념처’의 후렴구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수행자는 ‘마음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사견에) 의지하지 않고 지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이와 같이 수행자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고 했다.  

우리는 언제까지 마음챙김 수행을 해야 하는가?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마음챙김이 확립되고 지혜가 성성적적할 때까지 계속 마음챙김을 해야 한다고. 그렇게 되면 갈애나 사견에 휩쓸리지 않고 무집착과 방하착의 상태로 수행이 된다는 것이다. 그럴 때 위빠사나의 지혜가 활성화되면서 수행의 결실이 일어날 수 있는 입장이 된다.

대상은 왔다가 간다. 그렇게 왔다가 가도록 허용해주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상이라기보다는 깨어있는 마음이고 알아차리는 마음이다. 등불이 계속 타오르듯 마음챙김의 빛을 꺼트리지 않고 계속 타오르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명상의 키포인트이다.

일중 스님 동국대 강사 satiupekkha@hanmail.net

[1705호 / 2023년 1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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