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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월광신·26) 위빠사나수행 - 하

기자명 법보

만들고 먹고 치움 전부 명상
오관게 체화하며 알아차리고
공양 받은 이의 행복 발원해
보시 실천하며 거듭해 정진

사찰음식은 오신채를 제하고 생명을 빼앗지 않은 재료를 손질한다. 또 공양을 올릴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만들어진다. 기실 우리는 대부분 요리할 때 내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타인의 입에 들어갈 음식을 만든다. 

자비명상의 게송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있는 것이나 가까이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나,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다 행복하라.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지키듯이, 살아 있는 모든 것에 한량없는 자비심을 발하라’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정신이 ‘요리하는 행위’ 그 자체에 담긴 것이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공양은 ‘먹는 행위’를 통해 오관게를 체화한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일본 코마자와대학에서 유학했을 때, 일본 사찰의 정진요리와 명상을 맛보았다. 습유집에 수록된 교키 선사의 시를 받았는데, “나는 땔나무를 모으고 나물을 캐고 물을 길러 ‘법화경’을 터득했느니라”는 구절이 생생하다. 음식 재료를 손질하고 만들고, 먹고, 치우는 행위 모두 명상이다. “나는 지금 재료를 손질하고 있다…만들고…먹고…치우고 있다…” 그 자체를 알아차리며 명상한다. 그러면서 이 음식을 공양할 사람이 행복하길 발원한다.

일본에서는 남편을 단나(旦那)라 하는데, 원래 불교 용어로 육바라밀의 덕목 중 보시(布施), 즉 보살의 행위를 하는 사람을 뜻한다. 아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고 보호하는 의미에서 단나(旦那)가 남편의 의미로 용어가 변경되었는데, 아내는 자신의 보살에게 매일 맛있는 식사를 차려 준다. 이 이야기는 역으로 사찰에 보시하는 신도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게 한다.

한국의 공양주와 공양간 보살님들은 화려하지 않은 재료로 들깨국이나 두부탕, 신선한 야채가 담긴 비빔밥을 만든다. 칼질 한 번, 계량 한 번에 집중을 다하고, 공양을 받을 사람에게 약과 기쁨으로 다가가길 바라는 마음을 내는 수행을 통해 현재 나의 마음자리에 되돌아오는 위빠사나 명상을 경험하고 계시는 분들이 아닐까. 또 부모와 같은 자비심으로 나를 먹이고 위로해주는 보살이 아닐까.

공양간이든 사찰의 어느 곳이든 젊은 여성 불자가 적다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웰빙, 채식, K-FOOD 유행과 함께 템플스테이와 사찰음식은 인기가 참 많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고 살찌우는 즐거움과 그 순간의 행복한 자신을 알아차릴 수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한때 연구원에서 습자와 강독을 통해 경전을 공부하고 논문을 썼으나,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는 듯했다. 종일 돈을 다루지만, 평생 남의 돈을 만지는 은행원처럼 가르침을 체화하지 못하면 ‘팔만대장경’을 옮긴 종이만 문지르다 끝나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은 불립문자이며 지계와 실천이 다인데, ‘백문이 불여일작’이라 위빠사나만큼 흥미로운 배움이 없고 사찰음식만큼 명상에 들게 하는 게 없다. 

사찰음식을 만드는 마음은 보시, 세속적으로 표현한다면 선물하는 마음이다. 마치 연애 기념일이나 발렌타인, 화이트데이에 선물을 준비하는 남녀의 마음과 유사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겪어보았기에 동감하는 마음도 크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사심 가득한 음식과 명상도 하다 보면 실력이 늘어날 것이다. 비록 지금껏 대접한 음식을 먹은 사람에게 오히려 지청구를 먹었지만, 노력에 노력을 더하다 보면 언젠가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까.

피천득 시인은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받은 크리스마스카드를 들여다보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여자라면 경제가 허락하는 한 내가 아는 남학생에게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겠다고 생각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줄 것이다. 부모형제와 선생님, 이웃, 고마운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핸드메이드 쿠키에 편지를 동봉해서 정성스럽게 선물하는 것을 원체 좋아하기도 한다. 또 무엇보다 평생지기로 함께 갈 수행이니까 말이다.

[1706호 / 2023년 1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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