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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 사표’ 청화 스님, 삶과 사상 조명

  • 불서
  • 입력 2023.11.28 13:44
  • 수정 2023.11.28 14:09
  • 호수 1706
  • 댓글 0

청화 전기-위대한 스승
김용출 지음/504쪽/한울/2만9800원

청화 스님 열반 20주년·탄신 100주년 맞아 전기로 재탄생
800개 법문·저술·인터뷰 토대로 스님 삶 객관적으로 서술

2003년 11월12일 저녁, 곡성 성륜사 조선당에 주석하던 청화 스님이 시자 중원을 조용히 불렀다. 스님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나에게 의복을 좀 갖춰주소.” 몇 달 전부터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어도 평생 지켜왔던 장좌불와(長坐不臥)와 일종식을 놓치지 않았던 스님이었다. 낮에도 평소처럼 상좌들과 차담을 나누는 등 스님은 특이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스님은 가쁜 숨 속에서 곧 세연이 다했음을 알고 있었다. 상좌들이 조선당에 몰려들었다. 

상좌 도일 스님은 스승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큰스님, 가시렵니까?” “나, 갈라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의연함을 놓치지 않았던 스님은 곧 깊은숨을 몰아쉬면서 상좌들을 향해 마지막 말을 남겼다. “대중과 화합 잘하고 살아가시게, 승가란 화합이네.”

이 말을 끝으로 청화 스님은 상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띤 채 조용히 열반의 세계에 들었다. 우리 시대 큰 스승이자 수행자의 사표로 칭송받았던 청화 스님의 마지막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그것은 생사의 굴레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중생들에게 ‘생과 사는 둘이 아님’을 보여준 가르침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20년. 평생 청빈과 무소유를 실천하며 치열한 구도행으로 일관했던 청화 스님이 자애로운 맑은 미소와 함께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열반 20주년, 탄신 100주년을 맞아 스님의 삶과 사상을 조명한 전기가 출간됐다. 기자이자 논픽션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음성과 영상, 녹취록 등 다양한 형태로 남겨 놓은 스님의 800여개 법문과 ‘정통선의 향훈’ ‘원통불법의 요체’ ‘안심법문’ 등의 저술과 자료, 도반 및 상좌스님들의 인터뷰까지 수년간 스님의 삶을 좇았다. 이를 통해 탄생부터 출가, 치열한 구도와 만행, 사상의 형성과 대중법문, 태안사 및 성륜사에서의 하화중생, 6년간의 미국 포교, 생애 마지막 시기와 열반 모습 등 스님의 일대기를 과장이나 축소 없이 객관적으로 그려냈다.
 

청화 스님은 출가 이후 40년간 장좌불와와 일종식을 실천한  치열한 구도행으로 수행자의 사표로 추앙받았다. [한울]
청화 스님은 출가 이후 40년간 장좌불와와 일종식을 실천한  치열한 구도행으로 수행자의 사표로 추앙받았다. [한울]

스님은 1923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났다. 일본 유학을 거쳐 1947년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했다. 1급 교사 자격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장성 운문암을 찾았다가 그곳에서 은사 금타 스님을 만나 출가했다. 금타 스님은 조계종 종정을 지낸 만암 스님의 상좌로, 30대에 오도에 이르렀으며 ‘보리방편문’을 비롯해 ‘해탈 16지’ ‘수릉엄삼매도’ ‘우주의 본질과 형량’ 등의 저술을 남기는 등 뛰어난 수행력과 학식을 갖춘 선지식이었다. 

이런 은사와의 만남은 훗날 청화 스님이 평생 수행자로 살아가는 지침이 됐다. 특히 금타 스님이 각고의 수행을 통해 터득하고 정립한 각종 견해와 수행법은 청화 스님이 훗날 정통불법의 부흥을 통한 ‘원통불교의 중흥’, 정통선에 입각한 각종 수행법의 회통과 ‘보리방편문’을 통한 염불선의 대중화, 불교적 우주론과 현대적인 물질관 정립 등을 펼치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1947년 2월6일 출가수행자의 길에 들어선 스님은 그때부터 스승의 가르침을 좇아 40여년간 대흥사 진불암, 상원암, 남미륵암, 월출산 상견성암, 백장암, 벽송사, 칠장사 등에서 묵언과 일종식, 장좌불와를 원칙으로 치열한 수행에 전념했다. 60세가 넘어서야 토굴 생활을 마친 스님은 1985~1995년 곡성 태안사에 주석하며 대중들과 함께 ‘3년 결사 용맹정진’을 감행했다. 또 이 과정에서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태안사를 중창해 대중 포교의 발판을 삼았다. 

그런가 하면 스님은 해외포교를 위해 1992년 미국 캘리포니아 카멜에 삼보사와 금강선원을 건립하고 대중들과 동안거 결제를 진행했다, 1995년 1월, 동안거 기간 중 7일간 사부대중을 위한 ‘순선안심탁마법회’를 열어 참다운 선수행의 도리를 설파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청화 스님은 염불선의 대중화를 시도해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스님은 “우주만유는 진여불성뿐이고 마음이 곧 부처라는 반야의 지혜를 여의지 않고 수행한다면 모든 수행법이 선이 될 수 있다”며 간화선뿐 아니라 염불선, 묵조선 등 다양한 수행법과의 회통과 공존을 강조했다. 이로 인해 간화선만을 유일한 수행법으로 여기던 조계종에서 한때 외도로 치부돼 비판과 핍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스님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염불선의 대중화를 위해 매진했다. 그 결과 스님이 입적한 이후 조계종은 사미와 행자들에게 염불의례교육을 시행하고, 승가고시에 반영했을 뿐 아니라 염불원 수행도 안거로 인정하는 등의 변화로 이어졌다. 

책은 한평생 수행과 중생구제를 위해 한길을 걸었던 청화 스님의 삶의 궤적이 그대로 담겨 있다. 추천사를 쓴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환한 미소와 하심으로 사부대중을 따뜻하게 제접해 주셨던 대종사를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대종사의 삶과 사상을 정확하게 담은 이 책을 통해 대종사의 품모를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706호 / 2023년 1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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