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통령실이 위치한 서울 용산지역이 조선시대 불교의 호국과 구제·위문행이 행해졌던 상징적인 장소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상영 전 중앙승가대 교수는 11월25일 서울 조계종 총무원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주최한 ‘용산지역 내 불교문화 역사에 대한 고증 연구 세미나’에 참석해 이 같이 주장했다. 특히 김 교수는 용산지역에서 이뤄진 불교의 호국,구제·위무행을 계승하기 위해선 의승 기념관을 건립해야 함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용산이 ‘고려대장경 이운 경유지’였음을 제시하며 용산에서 불교의 호국 활동이 이뤄졌음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고려대장경인 재조대장경은 불법의 힘으로 몽고군 침략을 물리치고자 조성됐다”며 “조선 태조 7년(1398) 강화도에 봉안된 재조대장경이 용산강(龍山江)을 거쳐 지천사로 이운됐는데 이는 부처님의 위신력과 가피에 의지해 외침을 극복하겠다는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임진왜란 시기 용산지역에서 발생한 전투를 분석하고, 의승군 활동을 추적했다. 김 교수는 “용산에서 의승군의 활동 관련 기록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폭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유정의 노원평 전투, 처영의 행주대첩 등은 용산과 일정 부분 관계 맺고 있는 전투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때문에 김 교수는 용산에 위치한 사찰을 중심으로 의승군 활동이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뿐만 아니라 김 교수는 용산을 구제(救濟)와 위무(慰撫)의 공간이라는 것도 밝혔다. 특히 여말선초에 존재한 용산사(龍山寺)에서 자은종(慈恩宗) 소속의 종림(宗林), 해선, 신계 스님 등이 관곽(棺槨)을 제작해 중생의 장례를 돌보는 활동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김 교수는 “스님들의 대민 구제행으로 인해 조선 사회는 귀후서(歸厚署)라는 관서(官署)를 공식 설치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며 “용산사는 중생 구제의 거점과 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용산이 조선시대 수륙재를 봉행한 장소라는 점도 강조했다. 김 교수는 “3·1운동 독립선언을 주도한 33인 가운데 한 명인 독립운동가 용성 스님이 ‘모든 생명을 방생하는 일’을 취지로 ‘(구)용산강변’에서 6회 정도의 수륙재를 거행했다”며 “용산에서 위무행이 이뤄진 대표적 사례”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용산에서 이뤄진 불교의 구제·위무행과 임진왜란 시기 의승들의 호국 활동은 우리 역사의 의인(義人)이자 위인으로서의 위상을 지닌다”며 “이들을 추모하고 선양하는 것은 불교계뿐 아니라, 범국민적 차원에서 전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총론-용산지역의 역사적 변화와 종교(노대환/ 동국대) △고대 및 고려시대 용산불교의 역사와 문화(고영섭/ 동국대) △조선시대 한양 도성 및 용산의 불교(황인규/ 동국대) △근현대, 용산불교 모색의 시론(김광식/ 전 동국대) △해방 후 적산불하 정책과 불교계 영향(문혜진/ 부경대) 등의 발표도 이어졌다. 논평으로는 김수연 이화여대 교수, 이기운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이신철 아사아평화와역사연구소장, 한상길 동국대 불교학술원 교수, 제점숙 동서대 교수가 각각 나섰다.
이지윤 기자 yur1@beopbo.com
[1707호 / 2023년 1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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