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5. 유림석굴 제3굴의 법계

기자명 오동환

밀교 성취법 기반해 구성한 정토의 모습

남북 벽화 각각에 ‘정토변경’ 완벽 대응하는 모습으로 조성
양 벽 하단에 미생원·16관 공통 등장…주존불 수인도 주목
양쪽 경변 조합으로 ‘관무량수경변’ 표현했다는 해석 지배적

유림석굴 제3굴 전경. 중앙의 대일여래와 천장의 오방불 만다라는 3굴의 중심이 밀교사상임을 반영한다. 여기에 동서벽을 잇는 종축에서 화엄사상이, 그리고 남북벽을 잇는 횡축에서 정토사상이 회통한다. 석실 내의 소조상들은 모두 청대에 중수하거나 새로 조성된 것이다.
유림석굴 제3굴 전경. 중앙의 대일여래와 천장의 오방불 만다라는 3굴의 중심이 밀교사상임을 반영한다. 여기에 동서벽을 잇는 종축에서 화엄사상이, 그리고 남북벽을 잇는 횡축에서 정토사상이 회통한다. 석실 내의 소조상들은 모두 청대에 중수하거나 새로 조성된 것이다.

서하(西夏)는 당시 서쪽으로 토번과 회골(回鶻, Uyghur)에 접하고 북으로는 요나라, 동남으로는 송(宋)에 접해, 인접국에 사방으로 포위된 형국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오히려 주변국의 다양한 불교문화 영향 속에서 서하 특유의 원융적 불교사상을 형성하게 하였다. 유림석굴 제3굴에서도 이와 같은 서하불교의 특징이 반영되어 밀교·화엄·정토 사상이 하나로 회통하고 있다. 이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안내를 따라 유림3굴의 법계로 들어가 보자. 

서벽 중앙에 난 입구에 들어서면 먼저 석실 중앙의 팔각형 불단에 단좌하신 대일여래(비로자나불)가 눈에 들어온다. 대일여래의 머리 위에는 대형의 금강계 오방불 만다라가 천장을 가득 채우며 석실 전체를 덮고 있어, 이 석굴이 금강계 밀교 사상을 근간으로 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대일여래 너머 동벽 화면의 가운데에는 석가여래의 성도상을 중심으로 탄생에서 열반까지 행적을 담은 ‘팔탑변(八塔變)’이 그려졌다. 입구의 대일여래상과 팔탑변은 석실의 중추선을 이루며, 이를 기준으로 좌우(남북)의 벽화들은 각각의 위치에서 서로 완벽한 대응 구도를 형성한다. 먼저 동벽 팔탑변의 좌우에는 각각 11면천수관음보살과 51면천수관음보살이 장엄되었고, 입구의 좌우에는 지난 회에서 언급한 문수보살변과 보현보살변이 마주한다. 석가여래는 성도의 순간 선정 속에서 비로자나 법신을 드러내고,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의 자설(自說)을 통해 설법하므로, 석굴의 중축을 따라 화엄사상이 관통함을 알 수 있다. 

남북벽면의 중앙에는 각각 정토경변이 그려져 서로 대응한다. 그 좌우에는 각각 만다라가 그려졌는데, 중국학자 자웨이웨이(賈維維)의 연구에 따르면, 정발존승오존만다라(남벽좌)-마리지천오존만다라(북벽우)와 구불정악취청정만다라(남벽우)·금강계37존만다라(북벽좌)가 서로 마주보며 대응한다. 

천장의 오방불 만다라는 중앙의 월륜 내에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사방불을 배치하고, 월륜 밖 방형 층의 모서리마다 네 분의 바라밀보살을 두고, 네 변의 중앙에 난 문마다 각각 4섭(명왕)을 배치했다. 대일여래는 금강계 대일여래의 특징인 지권인을 취하고 있으며, 동방 아촉여래는 촉지인, 남방 보생여래는 여원인, 서방 아미타여래는 선정인, 북방 불공성취여래는 오른손으로 여원인과 왼손으로 선정인을 취하고 있다. ‘금강정경(金剛頂經)’에 의하면 사방불은 곧 시방삼세의 모든 여래이다. 수행자는 자신을 부처의 모습으로 관하여 모든 여래이자 법신인 비로자나불의 심장에 머물며 ‘자성성취(自性成就)’를 이룬다. 

남벽과 북벽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서로 마주 보는 정토변상이다. 그중 북벽의 정토변상을 보면 동시기 인접한 송(宋)의 영향을 받은 건축양식이 기존의 당대 정토변에서 보여지는 건축양식과 확연히 비교된다. 또한 당대에는 주존불이 화면 중앙에 자리하고 보살을 비롯한 성중(聖衆)이 주존불을 중심으로 운집한 구도였으나, 유림3굴 북벽 정토경변의 경우 주존불이 화면의 가장 상단에 배치되었을 뿐 아니라, 성중들도 전 화면에 분산되어 있다는 차이를 보인다. 이 경변은 화면 가운데 연화화생 동자가 등장하고, 경변의 하단에서 미생원과 16관의 장면들이 확인된 점을 들어 관무량수경변으로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남벽 정토경변의 정체이다. 전체적인 화면 구성은 북벽의 경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주존불이 주석한 전당의 위치는 마찬가지로 상단에 자리하고, 건축양식과 구조, 성중의 분포에 있어도 큰 차이가 없다. 이런 이유로 기존의 학설은 남벽 경변을 동방 약사여래정토를 표현한 것이라거나, 혹은 북벽과 마찬가지로 관무량수경변을 표현한 것이라거나, 아니면 특별한 정토경변으로 확정하지 못하고 ‘정토경변’이라 통칭하는 등 설이 분분했다. 최근 중국학자 류용정(劉永增)은 두 주존불의 수인에 주목해 선정인을 취한 북벽의 여래를 무량수불(아미타불)로 보고, 항마촉지인을 취한 남벽의 여래를 동방 아촉불로 보았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남북벽에 배열된 나한소조상들과 불단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들이 아니라, 청대(淸代)에 새로 조성하거나 혹은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이다. 불단과 나한상들을 걷어내니, 남벽 정토변의 하단에서도 16관과 미생원 도상이 확인되었다. 이를 근거로 양쪽의 경변이 조합하여 하나의 완전한 관무량수경변을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막고굴 제172굴에서 보듯이(8회 참조), 한 석굴 내에 동일한 주제의 경변을 짝지어 장엄하는 사례도 더러 있다. 그러나 유림3굴의 전체적인 성격을 고려할 때, 두 경변의 주존불이 취하는 수인의 차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천장의 오방불 만다라에서 서방의 무량수여래는 선정인, 동방의 아촉여래는 항마촉지인으로 명확히 차별화하고 있다. 3굴 벽화 중 또 다른 금강계 만다라인 북벽 좌단의 37존만다라에서도 마찬가지로 무량수불은 선정인을, 아촉불은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또한 서방정토경변의 특징인 연화화생의 도상이 북벽에만 그려졌다는 차이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남벽은 아촉여래정토를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더욱 타당하다. 단지 아촉여래정토를 표현하기 위하여 서방정토변의 도상을 차용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관무량수경’의 주요 서사인 미생원(未生怨, 아사세왕이 부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이야기)과 16관의 핵심이 업장에 대한 참회와 관상수행이라는 점은 유림3굴에서 정토에 대한 관점 역시 석굴 전체를 관통하는 밀교의 성취법(成就法)에 기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오동환 중국 섬서사범대 박사과정 duggy11@naver.com

[1707호 / 2023년 1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