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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무장투쟁과 강제이동의 문제 - 하

수행 위해 동물 은신처 뺏는 것은 살인과 같아

불교는 거처 없는 사람들에게 공동체 공간 양보의 전통 있어
강제이동은 각종 폭력에 노출시키고 아동들 교육기회도 박탈
어떤 형태의 무장투쟁이든 홈리스의 고통이 발생함 명심해야

수행자들이 짐승, 곤충, 초목의 피해까지 고려했던 것처럼 무장투쟁상황에서도 강제이동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법보신문DB]
수행자들이 짐승, 곤충, 초목의 피해까지 고려했던 것처럼 무장투쟁상황에서도 강제이동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법보신문DB]

승가의 규범은 출가자들이 다른 수행자들의 거처에 무단침입하거나 살던 곳에서 내쫓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수행자에게 어떤 주거지를 자신들의 영역으로 삼을 것인가를 안내하는 공간 규정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던 곳을 비워야 할 때 그 공동체가 소유했던 기존의 공간을 오히려 양보하라고, 명령하는 규정들도 보인다. 이는 불교의 오랜 역사에서 사찰이 무장투쟁이나 재난의 시기에 난민 수용소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던 사회문화적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탄압과 그들의 강제 이동 장면은 불자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율장에 언급된 ‘지속적인 배려’의 윤리는, 거처와 안전이 수행자의 복지에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강제이동의 원인을 방지하는 것이야말로 직접적인 해악을 방지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율장은 집과 서식지가 생존에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출가수행자들은 동물들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들의 서식지, 즉 동물들의 삶에 필수적인 환경조건에 대해서도 비폭력을 요구받는다. 율장은 동물들의 굴(窟)을 허물거나 은신처에서 강제 이동시키는 것을 직접적인 살상과 동등한 처벌로 다룬다. 상좌부의 ‘비구니 바라제목차’와 ‘비구 바라제목차’는 다음과 같은 관련 조항을 공유하고 있다.

106[20]. 어떤 비구니가 땅을 파거나 땅을 파게 한다면, 그것은 참회해야 할 일이다. 116[20]. 어떤 비구니가 알고서도 살아있는 존재들을 포함한 물을 잔디나 진흙 위에 쏟거나 쏟도록 한다면, 그것은 참회해야 할 일이다. 142[61]. 어떤 비구니가 의도적으로 어떤 동물에게서 생명을 빼앗는다면, 그것은 참회해야 할 일이다. 143[62]. 어떤 비구니가 알고서도 살아있는 존재들을 함유한 물을 사용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참회해야 할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강제이동에 대한 불교의 윤리적 관심이 IHL(국제인도주의법)의 근본 취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IHL에서는 무장투쟁의 당사자들이 지역민들의 강제퇴거를 “명령하거나” 그들을 “강제로 옮기려는 시도” 뿐만 아니라 강제이동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일체의 행동을 금지하고 있다. 강제이동의 이런 원인들 가운데, 예컨대 물 공급이나 식량 제공의 중단, 민간인 가옥의 파괴, 중요한 기반시설을 부수거나 지역민 대상의 테러 등과 같은, 원인의 제공도 당연히 불법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민간인의 강제이동을 초래하는 또 다른 행동들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금지 조항이 없지만, 그것에 대해 군대의 의사결정권자들이 향후 책임을 져야 할 강제이동의 원인은 많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이미 강제이동의 직·간접적인 해악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A)우리는 강제이동이 사람들을 성폭력과 같은 매우 높은 수위의 폭력으로 내몬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성 난민 5명 가운데 적어도 1명은 성폭력을 당한다고 한다. 

(B)우리는 아동 결혼과 강제 결혼의 비율이 어떤 맥락 속의 강제이동에서는 상당히 증가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는 많은 공동체에서 결혼이 아동들의 교육과 건강에 심각한 방해가 됨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사회적 안전장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C)민간인의 재산 상실과 그 해의 수확물 상실은 그것의 영향이 일생동안 혹은 심지어 몇 세대 동안이나 지속될 가능성이 큰 강제이동의 부작용을 함축하고 있다.

(D)이산가족은 강제이동된 사람들이 직면한 실질적인 위협이다. 

IHL의 ‘관습 규칙 131 조’는 분쟁의 영향을 받는 민간인들은 “만족스러운 조건의 거처, 위생, 건강, 안전 및 영양, 그리고 같은 가족의 구성원이 분리되지 않을” 권리를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무장투쟁의 당사자들은 이런 요구조건들을 들어줄 만한 정신적인 여유가 없다. ICRC(국제적십자위원회)는 매년 수천 명의 이산 가족관계를 원상, 회복시켜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산가족은 강제이동의 후유증이자 민간인 피해 사례의 주요 평가 요소로 적극, 고려되어야 마땅하다. 

(E)마지막으로 우리는 민간인들이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집을 떠나야 할 때,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만큼 쉽게 도망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장애인, 병든 사람, 노인, 어린이들과 그들의 보호자들(보통 여성들)은 한결같이 탈출이 시급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추가적인 위험과 곤경에 직면한다. 이런 사람들은 길 위에 있을 때 더욱 취약할 수 있으며, 탈출할 수 없는 경우 그들은 공동체의 지원 구조가 사라지고 없는 동안 갈등 지역 안의 살던 집에서 계속 머물 수밖에 없다. 무장투쟁 지도자들은 강제이동의 해악과 그 원인 및 결과들을 매우 신중하게 저울질할 필요가 있다. IHL의 “끊임없는 배려”와 “향후 예방책”의 원리들은 이런 의사결정권자들에게 강제이동이 초래할 심각하고 직접적인 해악 또는 반사적인 해악을 방지하기 위해, 강제이동의 원인이 되는 군사공격을 최소화하라고 권고한다. 

여기서 보듯이 불교 수행자들이 일상적인 삶의 일부인 곤충, 짐승, 초목 및 정령들에 대한 피해들과 그들의 종교적인 의무사항들 사이에 균형을 맞추려고 하듯이, 무장투쟁의 당사자들도 전쟁에 내재 되어 있는 해악들과 IHL의 절제 및 예방 규정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무장투쟁이 유발한 강제이동을 조금이라도 줄이거나 방지하기 위한 불교와 IHL의 공통된 문제의식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어떤 형태의 무장투쟁이든 사람들에게 홈리스(homeless)의 고통을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환기하는 것은 전쟁의 시대에 꼭 필요한 윤리적 덕목이 아닐까 싶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서도 이스라엘과 힘겹게 싸우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에서도 더 이상 강제이동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붓다는 어떤 형태의 폭력에도 반대한, 진정한 평화주의자였음을 다시 한번 더 기억했으면 좋겠다.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707호 / 2023년 1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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