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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조선후기 사찰계(寺刹契)의 불사(佛事)와 수행

기자명 민순의

깊은 신앙심·용맹정진 수행으로 염불신앙 선도

잡역 시달렸음에도 수행자 본분 지키며 불사·신앙 유지 노력
임진왜란 이후 사회에서도 각종 계 형성되며 ‘만일염불’ 조직
경제적 지원 불사 토대로 염불계 급증하며 신앙 고취에 영향

강원도 고성의 금강산 건봉사 전경. 신라 경덕왕 17년(758) 발징(發徵) 스님이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를 베풀었다 하여 우리나라 만일염불결사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강원도 고성의 금강산 건봉사 전경. 신라 경덕왕 17년(758) 발징(發徵) 스님이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를 베풀었다 하여 우리나라 만일염불결사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지난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 후기 일선 사찰의 스님들은 공권력과 지배층으로부터 부과된 각종 잡역으로 하루하루 고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혹독한 노동과 날로 어려워지는 경제적 상황은 승도의 이탈과 사찰의 퇴락으로 이어져, 18세기 후반에는 지역의 거점 사찰에서조차 소수의 스님들만 남아 절을 지키고 나라에서는 그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형편이 되었다. (‘정조실록’ 31권, 14년 8월23일, “절이 퇴락하고 승려의 수가 적기는 어느 곳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별의별 부역과 이러저러한 갖가지 관청 공납이 번다하고 과중하기 때문이었는데…장안사(長安寺)는 본도에서 가장 오래된 큰 절인데 태반이 퇴락되고 승려들도 4~5명에 불과하니…승려를 머물러 살게 할 대책과 사찰을 소생시킬 방도에 대해서는 우선 감영과 고을에서 충분히 논의한 뒤에 계문하겠습니다.”)

그러나 노동과 빈곤으로 열악해진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남은 스님들은 수행자의 본분을 지키며 불사(佛事)와 신앙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다. 그중 현실적인 방법은 뜻과 힘을 모아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것, 구체적으로 계(契) 또는 결사(結社)를 조직하여 활동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찰계(寺刹契)의 최초 출현 시기가 언제인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조선시대 불교와 관련된 계에 대해서는 일찍이 세종 때의 기록에서도 확인이 되며,(‘세종실록’ 124권, 31년 5월21일, “지난번 불당(佛堂)의 경찬(慶讚) 때에 대군(大君)으로부터 여대(輿臺)·악공(樂工)에 이르기까지 무릇 회(會)에 나온 모든 사람들이 계(契)를 맺었다 합니다.”) 승단 구성원만으로 이루어진 사찰계의 최초 사례를 1564년(명종 19)경 사명당 송운유정(松雲惟政) 스님이 동년배 도반들의 수행 독려와 친목 도모를 위해 조직한 갑회(甲會)에서 찾는 선행연구도 있다.(한상길, ‘조선후기 사원의 불사와 사찰계’, ‘한국선학’ 28, 2011, 216-217쪽)

분명한 것은 임진왜란 후 조선 사회에서는 기존에 존재하던 사교계, 족계(族契), 동계(洞契) 외에도 학계(學契), 상계(喪契) 등 한층 다양해진 목적의 계회가 각계각층에서 조직됐고,(김필동, ‘계의 성행과 발전’ ‘신편한국사’ 34, 국사편찬위원회. 1995 참조) 불교 내에서도 250건이 넘는 사찰계 관련 자료가 사적기, 중수기, 현판문, 비문 등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한상길, 위의 글, 216~218쪽) 자료에 따르면 조선 후기의 사찰계 중 높은 빈도를 차지하는 것은 갑계(甲契)와 불량계(佛糧契), 그리고 만일회(萬日會)를 포함한 염불계(念佛契)이다.

동갑계(同甲契)로도 불리는 갑계는 동갑 또는 비슷한 연령의 스님들이 조직했던 계로서, 위에 언급한 사명스님의 갑회도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가사기(瑜伽寺記)’ ‘해봉집(海峯集)’의 영조 39년(1763)년 기록과 ‘쌍계사유공록(雙溪寺有功錄)’ ‘인악집(仁岳集)’의 정조 8년(1784) 기록에 따르면 계원들이 전각의 보수 또는 중수를 목적으로 기금(계재, 契財)을 출자했다고 되어 있어,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갑계의 설립 목적이 수행과 친목을 넘어 사찰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불사 활동의 영역으로까지 넓혀졌음을 알게 된다. 

또한 이는 당시의 스님들이 어려운 여건에서나마 개인적으로 재산을 취득 및 소유할 수 있었던 정황을 말해 주기도 한다.(이재창, ‘조선시대 승려 갑계의 연구’, ‘불교학보’ 13, 1976, 52~53쪽)

사찰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계원들의 활동은 경우에 따라 사찰의 운영 전반으로 확장되기도 했다. 일례로 은해사의 갑오갑계(甲午甲契)는 순조 8년(1808)부터 순조 24년(1824) 사이에 활동하면서 법당과 요사채에 등촉, 향, 땔감, 등유 등을 공급하고 탱화를 보수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은해사 ‘갑오갑유공비(甲午甲有功碑)’)

이러한 활동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된 방법이 바로 전답(田畓)을 매입하여 경영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사찰의 운영을 위해 시주한 토지를 불량(佛糧)이라 하며, 이러한 불량의 마련을 위해 결성된 계가 바로 불량계이다. 즉 불량계 또한 이 시기 다수의 갑계와 마찬가지로 사찰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결성된 조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전답의 매입과 경영은 사찰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었기에 숭림사, 통도사, 대승사 등 여러 지역의 사찰계에서도 널리 행해졌다.(‘숭림사공불계서(崇林寺供佛禊序)’ ‘통도사지(通度寺誌)’ ‘보광전헌답시주기(普光殿獻畓施主記)’ ‘대승사지(大乘寺誌)’ ‘사불산대승암명부전불량계안서(四佛山大乘庵冥府殿佛糧禊案序)’)

그 밖에 금전과 물자를 직접 시주하기도 하고,(‘충허대사유집(冲虛大師遺集)’ 권1, ‘어계서(魚禊序)’, ‘한국불교전서’ 제10책, ‘옥천사연대암칠성계성책(玉泉寺蓮臺庵七星契成策)’, ‘범해선사문집(梵海禪師文集)’ 권2, ‘보제회중학계안서(普濟會中學禊案序)’ ‘한국불교전서’ 제10책) 드물게나마 건물 조성이나 삼림 육성 등에 계원들이 노동력을 직접 제공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영흥부성불산안불사사적(永興府成佛山安佛寺事蹟)’ 은해사 ‘갑오갑유공비’ 1771년(영조 47) 조직된 수다사(水多寺)의 송계(松契)는 삼림육성을 위해 조성된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리고 사찰계의 활동이 이렇듯 다양한 방면과 방식으로 확장됨에 따라 점차 계원의 목록에 스님뿐 아니라 재가신도들도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한편 경제적 지원을 위한 불사 외에 신앙과 수행을 위한 사찰계도 활발히 결성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독송・염불을 위해 결성된 염불계이다. 이는 승속과 성별을 망라하고 사부대중 전체로 구성된 경우가 많았으며, 깊은 신앙심과 용맹정진의 수행 자세로 조선후기의 염불신앙을 선도하였다. 만일회(萬日會)는 염불계 중에서도 특별히 1만의 날짜(약 27년 5개월)를 기약하고 결성된 계를 가리킨다. 조선후기의 염불계는 총 35건이 보고되고 있는데,(한상길, ‘조선후기 불교와 사찰계’, 경인문화사, 2006) 18세기 4건에 불과했던 염불계가 19세기에 들어 22건으로 급증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대중의 신앙 고취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19세기에 존재한 22건의 염불계 중 만일회가 15건으로 나타나, 그 100년 동안 조선 반도의 어디에선가는 하루도 빠짐없이 염불수행이 이어지고 있었음을 상상하게 한다. (본문에 소개된 조선 후기 사찰계의 종류와 내용, 그리고 그 전개 자료에 대해서는 한상길의 ‘조선후기 사원의 불사와 사찰계’(‘한국선학’ 28, 2011)에 빚지고 있음을 밝힌다)

민순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nirvana1010@hanmail.net

[1707호 / 2023년 1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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