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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현(불각심·27) 사경수행 - 상

기자명 법보

외로운 감정에 허우적댈 때
용돈 준다는 어머니 권유로
아르바이트 한다 치고 시작
고요한 집중의 매력에 흠뻑

어머니와 나는 하루에 한 번은 꼭 통화해야 일과를 마친 기분이 들 정도로 가까운 모녀 사이다. 언제나 나의 고민을 끝까지 들어주시는 고마운 분이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있는 그대로 말씀해주시고 조언해 주시는 유일한 분이다. 

항상 딸의 ‘인간관계’와 ‘인생’ 문제 전문 상담사 역할을 자처하시면서도, 현실적인 조언을 서슴지 않으시는 성격의 소유자이시기도 하다. 때문에 아무리 가까운 모녀 사이여도 가끔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어머니의 진심 어린 조언들이 심기를 건드리는 불편한 말로 전달되는 순간도 더러 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와 대화할 때가 제일 마음 편하고 유쾌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우울하고 복잡한 마음으로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4년 전 여름, 그 당시에 나는 젊은 대학원생이 겪는 미래에 대한 암담함과 공부의 무의미함에서 비롯된 갑작스러운 외로움, 그리고 이 모든 힘겨움을 같이 공유할 사람이 없는 현실의 공허함이 합쳐지면서 속으로 깊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난생 처음 겪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었다. 솔직히 처음 느껴봐서 스스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더욱 힘들었다. 그럴수록 주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방법이 좋은 해결책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마당발 스타일도 아니고, 사람을 만나면 도리어 진이 빠지는 성격인지라 남들처럼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특권을 누릴 생각은 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마주하는 외로움 앞에서 매일 새벽만 되면 잠도 못 자고, 이상한 감정에 휩싸여 눈물만 흘리고 있던 나에게 어머니가 말한 제안은 뜻밖이었다. 사실 제안이라기보다는 숙제에 가까웠다. 

“너 나 대신 반야심경 좀 써 줘라. 30번 쓸 때마다 10만원 줄게”

 한창 돈 모으기에 열중인 20대 사회초년생에게 10만원은 적지 않은 금액이었기에 순간 솔깃했다. 하지만 외로움을 해결하는 방법이 하필 ‘반야심경’ 적기라니. 단순히 글을 쓰는 행동이 어떻게 막막한 심정과 요동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마치 어머니가 다 하지 못한 숙제를 내가 대신하는 것 같은 생각에 순간 너무 어이가 없었다. 

“아니, 가만히 앉아서 한자만 쓰면 될 일을 가지고 그걸 왜 나한테 대신 하래, 엄마가 시작했으면 엄마가 끝을 봐야지. 그리고 글 베낀다고 사람이 달라지나, 무슨 효과가 있다고.”

평소 같았으면 해보지도 않고 성질부터 낸다고 인상을 찌푸렸을 어머니지만 그날따라 딸의 예민한 투덜거림에도 끄떡하지 않으셨다.

“아니, 그래도 해보라니까? 네가 글자 한 자, 한 자 쓸 때마다 나쁜 생각을 하지 않게끔 신장(神將)님들이 네 주변을 보호해 줄 거야, 그리고 지금 혼란스러운 마음도 싹 가라앉혀 준다고, 너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힘 무시 못 한다.”

나는 사경에 신령스러운 힘이 있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말 사경이 나를 바꿔줄 것이라는 믿음 따위는 없었다. “말도 안된다”고 자연스럽게 제안을 밀어내려 했다. 

통화가 끝나고 사경을 하면 돈을 준다는 어머니의 기막힌 제안을 다시 곱씹어 보니, 구렁이가 담을 넘어가듯 내 마음 속에서 돈에 대한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곧장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아르바이트’ 한다 치고 알바비 받으면서 그냥 꾸준히 써보면 되는 일 아닌가. 그렇게 받아들이니 어머니의 제안을 이렇게 완강히 거절할 사안은 아니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나의 첫 사경수행은 일명, 어머니가 사장이고 딸이 아르바이트생인, ‘사경 아르바이트’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처음 시작했던 나의 사경 수행이 결코 불법을 향한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세상에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수행을 하는 법이 어디 있으랴. 내가 좋아서 쓰면 쓰고, 안 쓰고 싶으면 안 해도 될 일을. 하지만 용돈을 받으면서 시작한 사경 생활이 예상외로 2년 넘게 이어지면서, 나는 어느새 고요한 공간에서 집중하는 사경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1707호 / 2023년 12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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