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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역사공원 문제와 정부 책임

기자명 이병두

지난 11월17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장관이 서울의 서소문역사문화공원을 찾았다. 이곳은 조선 시대에 범법자로 몰린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한 장소이다. 1811(순조 11)년 일어났던 홍경래란 연루자들과 1894(고종 31)년 동학농민혁명 가담자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조상의 신주를 불태우고 제사를 거부하는 등 조선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외국 세력에게 길을 안내하고 지도를 만들어 전하는 방식으로 침략을 도와주거나 황사영처럼 “군함을 보내 조선정부를 무너뜨려 달라”는 편지를 보내는 식으로 반국가·반민족 행위를 하다가 적발된 천주교 신자들도 이곳에서 처형당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 처형장이었던 현재의 서소문역사공원 자리에는 억울하게 죽어간 원혼(冤魂)들이 아직도 새 삶을 이어갈 곳을 찾지 못한 채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중음신(中陰身)으로 떠돌고 있을지 모른다. 조선 정부가 사라진 지 긴 세월이 지났고,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시민의 목소리를 권위주의 정권이 억누르던 시절도 끝났다. 이제는 정당한 법적 절차나 이유 없이 서소문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은 영가들을 위로하고 하루 빨리 자리를 잡아 안착하게 하고 ‘다시는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불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계가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그런데 ‘천주교도가 처형당했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이 공간을 독점하고, 중앙 정부와 서울시·중구청 등이 국가 소유 토지인 이곳에 ‘서소문역사문화공원’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세금 수백억 원을 쏟아붓고 천주교에 관리를 위탁하여 실제로는 ‘순교성지박물관’으로 운영할 수 있게 적극 도와주었다. 천주교 신자로 죽어간 이들의 원혼은 위로받을지 모르지만, 홍경래란과 동학농민운동 연루자들을 비롯하여 이곳에서 죽어간 다른 이들의 원혼은 원한이 더 깊어질 것이 확실하다.

아시아·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 등 세계 곳곳에서 현지인들의 종교 성소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성당을 세워 억압해 온 긴 역사를 갖고 있는 천주교가 이 땅에서는 “우리만 억울한 피해자”라 우기면서, 이곳에서 천주교도들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억울한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 자체를 지우려고 한다. 수많은 영가의 원한을 아랑곳하지 않고 천주교가 이토록 막무가내로 몰아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왜곡된 역사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역대 정권과 서울시·중구청의 적극 지원이 있었는데, 이 잘못된 정책집행 때문에 심각한 갈등이 일어나 국민 화합이 깨지고 있다.

특히 교왕청과의 수교 60주년을 이유로 특별기획전을 열고, 염수정 추기경과 정순택·이용훈 주교 등 한국 천주교회의 고위급 지도자들은 물론이고 바티칸 국무성장관이 직접 참석해 교왕의 축하메시지를 전하면서 이 자리에 종교 주무부처인 문체부장관을 오게 한 배경에는 ‘이곳이 천주교의 영역’임을 공식 확인시키려는 고도의 전술이 숨어 있다.

누나가 수녀, 동생이 주교인 독실한 천주교 집안 출신의 유인촌 장관이 프랑스의 파리외방전교회[‘전교회’] 본부를 찾아갔던 소회를 이 자리에서 밝혔는데, 국민 갈등의 큰불이 일어나고 있는 지점에 현직 문체부장관이 가서 그 불을 붙인 당사자들에게 감사와 축하 인사를 한 것은 매우 잘못되었다. 유 장관이 ‘전교회’의 긍정적인 부문만 언급했지만, ‘전교회’는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의 종교상 우위권을 꺾으려고” 로마 교왕청의 포교성성(布敎聖省)이 1658년에 설립한 선교회로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곳에서 서구 제국주의 침략의 선봉으로 활동했다.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오 히로부미를 총살한 후 조선 교구장 뮈텔이 안 의사의 교도 자격을 박탈하고 안명근의 총독 처단 의도를 헌병사령관에게 밀고해 수백 명이 옥고를 치르게 한 역사도 그의 개인 성향이 아니라 제국주의 세력의 첨병·적극 협력자인 전교회 소속 뮈텔의 당연한 행보였음을 잊으면 안 된다. 

이병두 beneditto@hanmail.net

[1708호 / 2023년 12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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