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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붓다의 마음과 뇌과학 - 끝

마음, 육근이 육경 만나 만드는 여섯 알음알이

근대 서양철학에선 정신과 물질은 서로 분리된 것으로 봤지만
붓다, ‘마음은 몸에서 비롯’…현대과학 ‘속성이원론’ 이미 제시
에릭 칸델 교수, 1998년 “마음은 뇌가 행하는 기능” 논문 발표

뇌는 신경세포가 이루는 신경회로로 이뤄져 있으며, 그것은 삶의 과정에서 경험과 학습이 물질화(체화)된 것이라고 현대 뇌과학은 설명한다.
뇌는 신경세포가 이루는 신경회로로 이뤄져 있으며, 그것은 삶의 과정에서 경험과 학습이 물질화(체화)된 것이라고 현대 뇌과학은 설명한다.

불교는 마음을 ‘대상을 아는 고유성질을 갖는 법(法)’으로 정의한다.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으로 하나이지만 어떻게 아느냐에 따라 붓다는 여섯 가지 알음알이[육식;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가 있다고 했다. 여섯 가지 인식기관[육근; 안근·이근·비근·설근·신근·의근]이 각각의 인식 대상 여섯 가지[육경; 색·성·향·미·촉·법]를 포섭하여 만드는 알음알이이다. 불멸 후 부파불교는 17찰나에 걸쳐 특정한 기능을 하는 마음이 일정한 순서대로 일어나면서 인식한다는 사실[17찰나설]과 각각의 마음을 일으키는 마음부수들이 있으며, 마음은 이들의 인과력(因果力)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일 뿐 이를 ‘주관하는 자’는 없다고 하였다. 

후대의 유식학자들은 번뇌를 불러일으키는 일곱 번째 마음인 말나식(末那識)을 상정하였으며, 이 마음은 마음 공간 깊은 곳에 저장된 마음의 종자[種子識]를 이끌어내어 현행하게 함으로써 현재의 의식이 이루어지게 하고, 그 의식에 번뇌를 덧붙이며 끊임없이 사량(思量)하는 역할의 마음으로 보았다. 그리고 마음속 깊이 저장된 종자들을 여덟 번째 마음, 아뢰야식(阿賴耶識)이라 하였다.

아뢰야식을 이루는 마음의 종자들은 체화(體化)된 마음이다. 유식학자들은 훈습(熏習)된 마음이라 하였다. 훈습은 뇌과학으로 보면 체화이다. 마음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훈습되어 저장된다. 어떤 마음이 일어나면 반드시 뇌신경망에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은 흔적을 남긴다. 흔적은 뇌신경망의 변화로 남는다. 그것은 뇌신경망이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뇌신경망의 이러한 성질을 뇌가소성 혹은 신경가소성이라 한다. 신경망은 신경세포들의 연결이기에 신경가소성은 신경세포들을 연결하는 접점인 연접가소성(synaptic plasticity)에 기인한다. 

연결은 강해질 수도, 약해질 수도 있다. 연접연결 강도가 장기적으로 강해지고 약해지는 현상을 각각 장기강화(long-term potentiation, LTP) 및 장기저하(LTD)라 한다. LTP와 LTD는 신경의 회로를 그리는 도구이다. 우리의 모든 경험이 뇌에 그려진 회로가 쌓여 체화된 마음이 된다. 체화된 마음은 나의 역사를 기록한 서사시이며, ‘이야기하는 자아(narrative ego)’이다. 

이야기하는 자아는 또한, 세상을 보는 ‘창문(window)’이다. 그 창문이 어떠한가에 따라 각자 세상을 달리 보게 된다. 따라서 각자의 마음, 즉 개성은 서로 다르다. 창문이 번뇌로 오염되어 있으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싸띠수행(Sati Art)은 세상을 보는 창문에 낀 마음오염을 제거하고 알아차림 힘(sati power, 마음근육)을 키운다. 그러면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는 청정심(淸淨心)이 일어난다. 불성이요 진여심(眞如心)이다. 마음청정과 더불어 지혜를 닦아 5감각은 성소작지(成所作智)로, 제6의식은 묘관찰지(妙觀察智)로, 제7말나식은 평등성지(平等性智)로, 제8아뢰야식은 대원경지(大圓鏡智)의 지혜로 바꿔야 한다[전식득지(轉識得智)].

마음과 몸의 관계는 고대로부터 논란거리였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의 르네 데카르트(1596~1650)는 정신과 물질이 서로 분리된 실체[실체이원론]라고 보았다. 하지만 이미 2600여년 전 붓다는 육근(六根)이 육경(六境)을 만나서 만드는 여섯 가지 알음알이[六識]가 마음이라 하였다. 현대 과학적 언어로는 마음은 몸에서 나온다는 속성이원론이다. 뇌과학으로 보면 뇌[몸]는 물질이라는 속성과 정신[마음]이라는 속성을 동시에 갖는다는 것이다. 심신 문제에 대한 속성이원론적 이해는 미국 컬럼비아대학 정신과 의사인 에릭 칸델 교수(1929~)가 방점을 찍었다.

200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그는 1996년 뉴욕주립정신연구소 설립 100주년 기념 강연에서 마음과 뇌의 관계에 대한 ‘5대 원칙(five principles)’을 발표했다(그는 이 강연 내용을 논문으로 정리하여 1998년 ‘심리학을 위한 새로운 지적체계(A new intellectual framework for psychiatry)’라는 논문으로 발표했다). 원칙 1) 모든 정신 현상, 심지어 가장 복잡한 심리 현상도 뇌의 작용에서 유래한다. 원칙 2) 유전자와 그 단백질 산물은 뇌신경세포들 사이의 상호연결 유형과 그 세세한 기능들을 결정하는 중요한 인자들이다. 원칙 3) 변형된 유전자 그 자체로는 특정 정신질환에 주어진 중요 변이들을 모두 설명하지 못한다. 원칙 4) 학습과 경험은 새로운 유전자의 표현을 유도하고 이는 신경연결의 패턴에 변화를 초래한다. 원칙 5) 정신치료 혹은 상담은 장기적 행동변화 효과를 나타낸다. 치료·상담 동안의 학습은 유전자 표현을 변화시켜 연접의 모양과 연결강도를 변화시키고, 이는 뇌신경세포들 사이 상호연결의 해부학적[형태적] 패턴을 변경시킨다.

에릭 칸델 강연의 핵심 교의(敎義)는 우리가 흔히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뇌가 행하는 일련의 기능이라는 것이다. 제1원칙에서 ‘모든 심리적 현상, 심지어 가장 복잡한 심리현상도 뇌의 작용에서 유래한다’고 강조하지 않았는가. 제4·5원칙은 학습이나 상담은 뇌신경회로를 변화시켜 마음을 변화시킨다는 것이고, 제2·3원칙은 뇌신경회로를 만드는 요소가 유전자와 그 단백질 산물들이지만(제2원칙), 이들이 일부 잘못되더라도 반드시 손상된 마음이 되지는 않는다라는 것이다. 마음은 뇌신경회로의 활성에서 창발되는데 유전자가 뇌신경회로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는 유전자 → 단백질 → 신경세포 → 연접 → 신경회로라는 여러 단계를 거치기 때문이다. 축구경기에서 한 번의 실수가 반드시 ‘골’로 연결되지는 않는 것과 같다. 

흔히 마음은 심장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 심(心)이라 쓴다. 마음은 볼 수 없고, 더구나 어디에서 일어나는지는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잠잠할 때는 몰랐지만 다급한 마음에는 심장이 뛴다. 그래서 마음은 심장에서 나오는 줄 알았다. 뇌는 보이기는커녕 미동도 하지 않기에 마음을 뇌에 연결할 단서가 없었다. 하지만 손상된 마음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독일의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마음’이 ‘뇌’라는 물질에서 창발 됨을 알았다. 뇌는 신경세포가 이루는 신경회로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은 삶의 과정에서 경험과 학습이 물질화(체화)된 것이라고 현대 뇌과학은 설명하고 있다.

지난 2년간의 ‘문일수의 붓다와 뇌과학’ 연재를 이번 원고로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연재할 수 있도록 허가한 법보신문에 감사드리고, 교학적 내용을 점검하고 초고를 부드럽게 윤문해 준 김해시 싸띠아라마의 스님과 도반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문일수 동국대 의대 해부학 교수 moonis@dongguk.ac.kr

[1708호 / 2023년 12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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