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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사적 면모 근저엔 화쟁·신뢰…대의·명분 잃지 않으려는 수행자 모습도

  • 교계
  • 입력 2023.12.15 18:33
  • 수정 2023.12.23 00:42
  • 호수 1709
  • 댓글 15

[파격의 입적, 자승 대종사와 한국불교] ②자승 스님의 카리스마

통합종단 총무원장 평균 재임 1년10개월…연임은 외압·내분 종식의 전환점
1986년 종무행정 첫발 이후 소통·화합 리더십으로 종회·총무원 상생 구축
원력·화쟁·신뢰의 철학으로 종단 내 갈등 조정하고 결집…대외 위상도 높여
치열한 수행은 지속적 영향력의 원천…불교지도자 덕목 보여준 스님의 유산

1962년 조계종 통합종단이 출범한 이후 2009년 제32대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퇴임 때까지 역대 총무원장의 평균 재임 기간은 1년 10개월에도 미치지 못했다. 43년의 세월 동안 총무원장의 취임과 퇴임이 무려 서른두 번이나 반복된 것이다. 이 가운데에는 취임 1년도 안 돼 총무원장이 물러난 일도 17차례나 있었다. 4년 임기를 채운 총무원장은 의현, 월주, 지관 스님 단 3명뿐이었다.

총무원장의 이같은 잦은 교체는 불교계의 지속적인 갈등과 혼란 양상을 보여준다. 종헌·종법상 임기가 보장돼 있는 총무원장이 그 임기를 다하지 못하는 ‘불가피한 상황’들이 거듭됐다는 의미다. 그 대부분은 불미스러운 일들이었다. 불교계에는 1960년대 정화의 소용돌이, 1970년대 종단 내부 갈등, 1980년대 10·27법난이 벌어지며 안팎의 혼란이 끊이질 않았다. 결국 1994년 종단개혁에 이어 1998년 종단사태라는 무력 충돌로 혼란의 정점을 찍었다. 해방 이후 근대까지 불교계는 사실상 안정을 구축하지 못했던 것이다. 총무원장의 짧은 임기는 이러한 불교계의 아픈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바로미터인 셈이다.

그렇기에 33대와 34대 총무원장을 연임하며 임기를 마친 자승 스님은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 받는다. 1986년 총무원 교무국장으로 종단 중앙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던 자승 스님은 총무원 재무부장, 총무부장을 지내며 종무행정에 대한 이해를 넓혀나갔다. 이어 종단 입법기구인 종회에서도 폭넓은 인간관계와 활발한 종회 활동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14대 중앙종회에서는 전반기 의장을 맡아 중앙종회를 이끌었으며 집행부에 대한 적절한 견제와 지원으로 중앙종회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교계 안팎의 존경이 두터웠던 지관 스님이 총무원장 임기(2005~2009)를 마무리할 즈음 자승 스님은 차기 총무원을 이끌 가장 유력한 인물로 부상해 있었다. 이어 치러진 33대 총무원장 선거 결과, 예상대로 자승 스님이 전체 317표 가운데 290표를 획득, 91.5%라는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역대 어느 총무원장도 이루지 못했던 득표율, 사실상의 추대였다.

2013년 11월8일 조계종 34대 총무원장에 취임하며 총무원장을 연임을 이뤄년 자승 스님은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 받았다. 
2013년 11월8일 조계종 34대 총무원장에 취임하며 총무원장을 연임을 이뤄낸 자승 스님은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 받았다. 

익히 알려졌듯 자승 스님의 세속 학력은 그리 높지 않다. 출가 문중 또한 용성문도회, 금오문도회, 덕숭문중 등과 같이 내로라하는 명성에 앞서지 못했다. 교학 이해에 있어 빼어난 강백의 반열도, 수행에 있어 구참 수좌들의 안거 이력에 비견할 바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자승 스님은 종단 행정의 최고 수반으로 공고히 자리매김했다. 다양한 주장과 이해관계가 얽힌 종단 내부의 복잡한 셈법 속에서 압도적 지도력을 오랫동안 발휘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교계 안팎에선 자승 스님의 카리스마로 △정확한 판세 분석과 승부수 △주고 받음의 정치학 △극한의 인내와 수행력 △대대적인 결집 행사 등을 꼽는다.

◇정확한 판세 분석과 승부수=선거제도를 받아들인 조계종의 권력 구도는 주로 선거를 통해 결정된다. 자승 스님은 중앙종회의원 선거를 비롯해 교구본사주지, 총무원장 선거 등에서 탁월한 역량을 드러냈다. 표 분석에 거의 오차가 없었으며, 패배 사례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첨예한 이해 관계 속에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한 뒤 상대방의 요구를 읽어내고 설득·담판 짓는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안의 흐름을 명확히 파악하고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총무원장 선거에서 자승 스님과 경쟁 관계에 섰던 한 중진 스님은 “승부사”라는 수식어로 자승 스님을 표현했다.

이는 대사회적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15년 한상균 민주노총위원장이 조계사로 몸을 피했을 당시 상황의 긴장과 이완을 이끌며 결정적 순간에 조율 능력을 보여준 총무원장 자승 스님에 대해 모 일간지에서는 ‘신의 한 수’에 빗대 ‘스님의 한 수’라고 제목을 붙일 정도였다. 또 2022년 1월 대선을 앞두고 승려대회를 봉행해 불교계의 영향력을 높인 것도 자승 스님의 승부수에 따른 결과였다는 것이 교계 안팎의 평가다.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삼조 스님은 자승 스님이 다수 종도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로 “원력과 공심”을 들었다. “종단의 중요한 사안을 마주했을 때 자승 스님은 엄청난 집중력과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고 설명한 삼조 스님은 “그 같은 집중력과 열정은 사사로운 이익을 앞세우지 않고 한국불교중흥을 위한 공심과 원력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윤재웅 동국대 총장 또한 “기질적으로 승부욕이 강한 지도자다. 여기에 불교 수행자로서의 지혜와 정진이 일상 삶에 체현되는 복합적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말했다. “오래 성찰하고, 많이 인내하며, 널리 경청하고, 두루 소통한다. 그리고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무서운 추진력으로 실행한다”며 “분열과 갈등과 이합집산이 그치지 않았던 불교계 내부가 단합되고 안정화된 것은 자승 스님의 지도력이 보여준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주고받음과 신뢰의 정치학=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는 “선거 정치는 경쟁의 정치이고 선거 이후의 정치는 주고받는 거래의 정치”라고 말했다. 또 “선거의 정치와 거래의 정치가 모두 사회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민주주의의 핵심적 규칙이자 규범”이라고도 했다. 이러한 정치 이론은 자승 스님이 선거 과정 및 선거 이후에 보여준 행보에서도 드러난다.

일각에서는 ‘주고받음’에 명확했던 자승 스님의 지도력을 ‘화쟁’과 ‘신뢰’로 정의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문중, 교구, 계파가 언제라도 대립할 수 있는 구도에서 선거가 극단으로 치달을 수있음에도 자승 스님은 배분과 타협, 신뢰로 갈등을 최소화 했다는 것이다.

조계종총무원 기획실장 우봉 스님은 “자승 스님은 선거가 갈등과 대립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중재 노력을 많이 했다”며 “특히 선거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경쟁 당사자들도 자승 스님이 중재자로 나선 후 소통이 이뤄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자승 스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혹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진심을 다해 사과하는 것도 꺼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결과 자승 스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이를 통해 종단의 목소리를 더욱 크고 단단하게 결집해 나갈 수 있는 선순환의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 과정에서 종단이나 불교계의 이익에 반한다고 판단되는 세력에 대한 배격에도 단호했다. 이는 자승 스님에 대한 깊은 분노와 원한을 갖거나 끊임없이 비난하는 세력이 형성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2020년 위례신도시 예정지에서 진행된 3개월 간의 천막결사를 마친 직후.
2020년 위례신도시 예정지에서 진행된 3개월 간의 천막결사를 마친 직후.

△극한의 인내와 수행력=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은 “천막결사뿐 아니라 삼보순례, 자비순례, 인도순례를 보면서 나는 절대로 따라 갈 수 없는 수행자의 면모를 보았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두 배, 세 배로 더 엄격해야 한다”고 말한 원명 스님은 “누군가는 보여주기식이었다고 폄하하지만 보여주기라도 그렇게 자신에게 철저할 수 있는 수행자는 극히 드물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처럼 자승 스님의 지도력을 언급하며 가장 대두되는 면모는 ‘남다른 수행력’이다. 총무원장이라는 권한에 뒤따르는 ‘행정승’ ‘사판승’의 이미지 뒤에 가려진 수행자의 면모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많다. 퇴임 후 자승 스님이 보여준 수행자로서의 행보는 성철 스님, 혜암 스님 등의 장좌불와·동구불출 등과도 일맥상통하는 종교적 카리스마였다. 총무원장 재임 시기 구축된 ‘행정승’이라는 세속적 관점에서만 바라보아서는 결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상월선원 천막결사에 동참했던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심우 스님은 “반결제가 지나면서 상월선원을 찾아온 전국 불자들의 응원 목소리가 커져 갈 때였다. 스님은 그 목소리에 부응하려는 듯 더욱 정진에 박차를 가했고 결국 정진 도중 쓰러지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회고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이분의 수행력이 결코 보통사람과 비교할 바가 안된다는 점을 직접 확인했다”고 설명한 심우 스님은 “그동안 안일함에 빠져있던 승가에 경종을 울리고 한국불교가 처한 위기의 심각성을 보여주기 위해 당신 스스로가 극한의 수행을 감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천막결사에 동참했던 수좌 무연 스님이나 성곡 스님도 당시 “참으로 모범적인 수행자였다. 청규도 놀랄 정도로 잘 지켰다” “사회적·정치적인 면모를 떠나 뛰어난 수행자다”라고 찬사를 보낸 것도 이러한 수행자의 면모와 직결된다.

“무문관 수행을 해도 체중이 17kg이나 빠진 경우는 처음 보았다”는 백담사 유나 영진 스님의 증언이나 2021년 18일간 진행한 삼보사찰 순례 때는 두 발의 엄지발톱이 모두 새까맣게 죽어 붕대로 동여맨 채 걷고, 인도순례 때 가장 먼저 일어나 대중들의 텐트를 살피고 출발시간에 가장 먼저 선두에 나와 선 것도 수행자의 면모였다. 자승 스님과 함께했던 사람들이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는 것도, 오랫동안 많은 대중을 이끌었던 것도 ‘수행자로서의 자승 스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대의 앞세운 대규모 결집 행사=이와 함께 간과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대중의 결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대대적인 실천 행사였다. 자승 스님은 홀로가기보다 힘들더라도 함께 가는 길을 선택했다. 천막결사, 자비순례, 삼보사찰순례 그리고 인도순례까지 자승 스님은 종단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고 대중을 모으는 대규모 행사를 꾸준히 진행했다. 특히 이러한 결집 행사들은 불교의 미래와 이익을 위한 대의와 명분을 갖추고 있었다. 이는 퇴임 이후에도 종단 내 영향력이 크게 약화되지 않은 원인으로도 분석된다. 특히 위기에 처한 한국불교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세운 ‘불교중흥’이라는 대의는 불교계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이었다.

이에 대해 윤재웅 총장은 “시대정신을 잘 읽고, 문제의 해법을 단순하게 만드는 지도력이 강했다. 대표적인 대의명분이 ‘사부대중이 함께하는 무차평등’이었다”며 “이런 정신은 종교간의 이해와 화합까지 추구함으로써 다종교사회인 한국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데 선도적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설명했다.

국회정각회장인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은 “자승 스님은 승가의 위의를 잃지 않으면서도 당면한 현실을 벗어난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에 정치권에서도 이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치 현상이나 사회 현장을 직관적으로 보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전한 주 의원은 “일의 순서와 적절한 해법을 찾는 타고난 감각뿐 아니라 오랜 종단 행정 경험 속에서 합리적이고 대의에 맞는 해법을 찾는 능력 또한 탁월했다”고 말했다. 결국 종도들이 ‘거부할 수 없는’ 자승 스님의 제안과 대규모 결집 행사들은 교계 안팎에서 폭넓게 수용됐고 이를 통해 조계종뿐 아니라 다른 종단들까지도 동참할 수 있는 화합의 토대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자승 스님에 대한 평가는 예나 지금이나 엇갈린다. 이는 혼돈과 갈등을 되풀이하던 종단 정치의 칼날 위에 올랐던 숙명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자승 스님의 카리스마가 구축한 종단의 결집력이 종헌종법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영향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통일된 목소리의 반작용으로 건전한 비판 세력의 토대가 약화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자승 스님의 카리스마로 인해 불교계가 결집하고 대사회적인 역량과 위상을 높였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다. 퇴임 후 정치적인 구설수에 휘말릴 때 “나는 불교만 보고 간다”고 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2023년 2월 시작한 인도순례는 '불교중흥'이라는 과제를 선명히 부각시킨 대규모 행사였다. 
2023년 2월 시작한 인도순례는 '불교중흥'이라는 과제를 선명히 부각시킨 대규모 행사였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12월3일 영결사에서 자승 스님의 카리스마가 종단의 미래를 여는 또 하나의 동력이 될 것임을 강조한 것은 의미가 깊다. “차안과 피안의 두 경계를 자유롭게 오고 가면서 주어진 인연에 따라 최선을 다하며 연기의 법칙을 따라 일상사와 종단사에 매진한 생평(生平)이었다”라고 전한 진우 스님은 “대화상의 수행력과 유훈이 하나로 결집된 ‘부처님 법 전합시다’라는 전법포교의 길을 함께 걸어갈 것”임을 명확히 밝혔다.

자승 스님의 리더십은 오늘날 위기에 직면한 한국불교를 이끌어갈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과 경계할 점이 무엇인지를 일러준다. 자승 스님이 보여준 불교지도자로서의 ‘생평’은 한국불교의 흐름을 바꾸었다. 앞으로도 한국불교계가 참구해야 할 화두로 던져졌다.

남수연 편집국장 namsy@beopbo.com

[1709호 / 2023년 1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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