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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야 할 당사자는 윤 대통령

  • 사설
  • 입력 2023.12.18 14:55
  • 호수 1709
  • 댓글 0

이관섭 불자회장 내정…‘윤 심’ 역력
대립각 세운 교계에 ‘화해 제스처’
뉴라이트 언행 벗어나야 신뢰 가능 

용산 대통령실 불자회장에 이관섭 신임 정책실장이 내정됐다고 한다. 최근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을 예방해 “할머니·할아버지부터 어머니·아버지까지 절에 다닌 불교 집안”이라고 소개까지 한 것을 보면 이 실장의 불자회장 취임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듯싶다. 비서·국가안보 실장과 함께 대통령실의 3대 축의 하나인 정책실장이 맡았으니 기존 정무수석의 불자회장에 비하면 무게감이 있어 보인다. 물론 불자회장의 고위직 여하에 따라 이 단체의 위상이 좌지우지되는 건 아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실렸음을 고려하면 무게감은 더하다.

‘용산 대통령실 불자회’는 ‘청와대 불자회’의 후신이다. 현재 대통령실 비서실과 경호실 직원 등 4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청불회가 창립된 건 1996년 10월이며 초대 회장은 당시 박세일 사회복지수석이 맡았다. 조계종 총무원 예방 자리에서 이관섭 정책실장이 “1996년 박세일 사회복지수석을 보좌할 당시 청와대불자회가 만들어졌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정책실장은 이어서 “저도 화계사에서 계와 법명을 받았다”며 “(청불회)뒤를 잇게 돼 영광”이라고 했다. 

청불회 창립 법회 때 박세일 회장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일류국가는 도덕적, 정신 문화적으로의 세계 모범국가”라며 “정신 문화 대국을 건설하기 위해 생명의 존엄성과 동체대비심의 보살도를 일깨워주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청불회 창립은 교계의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일종의 ‘안도감’도 주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후보 당시 “집권하면 청와대에 찬송가가 울려 퍼지게 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실제로 청와대에 들어간 직후 자신이 다니던 충현교회를 비롯한 개신교 목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가족 예배를 올렸다. 또한 국방부 내 중앙교회에서 김광일 비서실장, 이양호 국방장관, 권영해 안기부장 등 고위 공직자들을 대동해 공개적으로 예배를 보았다.(1996.1) 그로부터 석 달 후 서울 수유동 삼성암-본원정사에 화재가 발생했다.(1996.4) 기독교인의 방화로 추측돼 원성이 높았는데 ‘화계사 방화’ 사건이 또 발생했다.(1996.4·5월 세 차례) 

김 대통령과 화재 사건의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었다. 그러나 교계 내에는 “장로 대통령의 특정종교편향 기세와 무관하지 않다”라는 우려와 비판이 팽배했다. 따라서 교계는 ‘청와대 불자회’ 창립을 기점으로 김 대통령의 종교편향적 언행·정책이 줄어들기를 기대하며 안도감을 가졌다. 

물론 그 기대감은 산산이 조각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종교편향 행보에서도 경험했듯이 대통령이 변하지 않으면 종교적 차별·혐오는 해결되지 않는다. 

주지하다시피 윤석열 대통령은 올 한 해 동안에만도 ‘뉴라이트’ 사관에 함몰된 듯한 행보와 정책·인사를 보였다. 교회를 찾아가 “우리의 헌법정신과 우리 사회의 제도, 질서가 다 성경에서 나왔다”라고 하는가 하면, 뉴라이트계에서 목소리를 높여 온 ‘건국절 지정’ ‘홍범도 장군 동상 철거’ ‘상해 임시정부 정통성 부정’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등을 추진하고 장관 등의 정부 인사도 친기독교 인물로 채웠다. 조계종 중앙종회·중앙신도회와 태고종이 “종교편향 정책이 계속된다면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을 정도다.

윤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불자회장’에 나름 공을 들인 건 분명해 보인다. 대통령이 직접 불자회를 챙기며 불교계가 불이익을 받는 건 없는지 살피고, 각 부처의 공무원 불자 현황에 대한 조사도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교계의 지적과 비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답신’으로 읽을 수 있겠다. 그러나 안도하기엔 이르다. 뉴라이트에 치우친 행보를 거두어야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여라도 교계 표심을 위한 ‘총선용 꼼수’라고 한다면 정부를 향한 비판은 더 거세질 것이다. 

정부 또는 국가의 역할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문화 고양에도 역점을 두어 ‘문화 선진국’ 반열에도 올라 있어야 한다. 창립 법회 때 전한 박세일 회장이 다짐한 “정신 문화 대국 건설”을 위한 고언과 충언을 이관섭 정책실장이 윤 대통령에게 할 수 있을지도 지켜볼 일이다.

[1709호 / 2023년 1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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