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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인간의 미래, 불교의 미래(끝) -연재를 마치며-

불교는 AI시대의 휴머니즘으로 작동할 수 있어

불교는 AI윤리에 통찰 및 실천방안 제공하는 유일한 사유방식
AI가 자비 갖추려면 알고리즘 설계자가 중생 고통을 인식해야
붓다 가르침은 기술의 미래 담보할 인류 희망 메시지 자격 충분

 

 

불교의 지혜와 자비의 윤리는 AI시대에 인간적 불안감을 치유할 유력한 대안이다. [법보신문DB]
불교의 지혜와 자비의 윤리는 AI시대에 인간적 불안감을 치유할 유력한 대안이다. [법보신문DB]

쓰기 전엔 도망가고 싶었지만, 쓰고 나면 행복했던 기억이 새롭다. 꼬박 2년 동안 ‘세상이 묻고, 불교가 말하다’라는 연재를 뒤돌아보면서 느끼는 작은 소회다. 불교를 향한 나름의 문제의식을 다른 사람의 논문을 읽고 요약하는 형식을 빌려 은근슬쩍 드러내고자 했던 시간이었다. 평소 하고 싶었던 말을 마음 놓고 하도록 내버려 둔 법보신문에 무한감사하는 마음이다. 더러 주제넘은 오지랖도 있었겠지만, 독자들의 너그러운 양해를 구한다. 여태껏 다룬 주제들을 보니 코로나바이러스, 전쟁 난민, 인공지능, 성(性), 동물살생, 사형제, 평등과 권리, 육식과 채식, 불교와 윤리, 기후 정의, 환경위기, 참여 불교, 개인주의, 명상수행, 강제이주 등 제법 많은 쟁점을 소개했다. 다만 여기서도 불교가 어떤 직접적인 해결방식을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불교가 세상의 일에 처음부터 무관심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꼭 일깨워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알다시피 작년 이맘때쯤 출시한 오픈 AI사의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는 세상을 향해 과연 인간과 기계의 공존이 가능할까라는 화두를 던지도록 만들었다. 기술의 발달을 낙관하는 ‘부머(boomer)’들과 인류의 종말을 비관하는 ‘두머(doomer)’들 사이의 논쟁도 뜨겁다. 얼마 전 오픈 AI사 샘 올트먼 CEO의 해고와 복귀 과정의 반전 드라마는 이런 가치경쟁의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더 구체적으로는 ‘효율적 이타주의(effective altruism)’의 적용방식을 둘러싸고 벌어진 윤리전쟁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실리콘밸리의 첨단 과학기술자들 사이에선 윤리가 일종의 종교역할을 한다. 그 가운데서도 피터 싱어가 제안한 효율적 이타주의가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자신들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효율적 이타주의자들 때문에 결과적으로 AI(인공지능)의 난개발이 더욱 부추겨지는 측면이 있다.” 이와 동시에 AI 기술이 미친 듯한 속도로 질주하는 마당에 그것의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 지성의 직무 유기나 다름없다는 지적과 비판도 잇따른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지혜와 자비의 가르침인 불교의 역할과 기능을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말하자면 불교는 ‘AI시대의 휴머니즘’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태국의 불교 철학자인 소랏 헝라다롬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 AI기술의 성격을 ‘자비로운 알고리즘(merciful algorithm)’으로 규정한 바 있다. 그것은 이른바 ‘기술적 탁월성(technological excellence)’과 ‘윤리적 탁월성(ethical excellence)’을 두루 갖추고 ‘기계의 깨달음(machine enlightenment)’을 구현하는 AI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그는 불교적 AI기술이 세상의 평등과 정의를 창출하기 위한 공동선의 원천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불교의 ‘연민(悲, karuṇā)’ 개념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우리의 윤리적 행동에 지혜롭게 적용할 것을 주문한다. AI가 자비로운 것이 되려면 알고리즘 설계자가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원력과 실천을 충분히 갖춘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소랏 헝라다롬이 말하는 자비로운 인공지능은 AI기술을 둘러싼 두가지 극단적인 관점인 ‘테크노쇼비니즘(technochauvinism)’과 ‘테크노포비즘(technophobism)’ 사이의 중도를 모색하는 길로 보인다. 

피터 D. 허쇽도 AI 기술이 제기한 시대적 도전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윤리적인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인류는 지구 행성의 다른 뭇 존재들과 함께 공동번영을 지향하는 자비의 윤리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겠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디지털기술이 주도한 AI의 눈부신 발달 속에 숨어 있는, 가치갈등이라는 심각한 사회적 후유증을 인식하고 또 해소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소랏 헝라다롬과 피터 D. 허쇽의 주장은 서구적 의미의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인류사회를 인드라망의 연기 관계로 촘촘하게 엮으려는 불교적 자비 윤리의 또 다른 표현에 다름 아니다. 두 사람이 보기에 지혜와 자비의 붓다 가르침은 지속 가능한 AI 윤리를 추구하는 데 필요한 통찰력과 실천방법을 가장 풍부하게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사유방식이다. 

우리는 불교의 지혜와 자비의 윤리가 AI시대의 인간적 불안감을 치유할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감히 주장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런 불교적 공존의 지혜는 2019년 출범한 ‘스탠포드 인간중심 인공지능 연구소(the Stanford Institute for Human-Centered Artificial Intelligence, HAI)’나 하버드 대학의 ‘임베디드 에틱스 프로그램(Imbeded Ethics Program)’의 설립 취지 및 연구 철학과도 일맥상통하고 있어 불자들인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무섭도록 강력한 AI가 개발자인 인간과 아름다운 공존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하는 두 연구소는 AI의 설계 단계부터 종교와 법학, 윤리학자들을 공학자와 엔지니어들의 작업에 동참시킨다. 컴퓨터 공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종교와 윤리의 시각을 접목한 AI기술을 도모한다는 발상이야말로 인간과 기계의 공존뿐만 아니라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동시 번영을 추구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의 흔적들이다. 그들에게 불교의 영향이 과연 얼마나 미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근본적인 취지에서 지혜와 자비의 윤리는 과학과 종교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유력한 윤리적 대안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본다.

이처럼 불교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그리고 오늘을 지나 내일도 변함없이 인간과 기계와 그외 다른 모든 존재와의 공존, 공영을 뒷받침하는 이념으로 끝까지 살아남을 것으로 확신한다. 불교가 먼 옛날의 전설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곳의 서사이자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도 쉬지 않고 들려져야 할 고상한 음악이 되었으면 좋겠다. 붓다의 가르침은 인간의 미래와 기술의 미래를 동시에 담보할 인류의 희망 메시지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이는 인간의 미래가 불교의 미래와 함께해도 좋을 넉넉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허남결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hnk@dongguk.edu  

[1709호 / 2023년 12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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