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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각황전 보수

1937년 각황전 보수 동안
대웅전에 임시 봉안한 불상
다시 각황전에 모시는 순간
불자들의 질서·엄숙함 눈길

각황전 법당 안에 계셔야 할 부처님이 마당으로 나오셨다. 혹여 법신에 생채기라도 생길까 정성껏 천으로 감싼 부처님을 이운하는데 한 줌이라도 힘을 보태고자 모여든 사부대중의 질서정연한 모습이 꽤나 엄숙한 분위기임을 말해준다.

사진은 일제강점기 때인 1937년 진행된 구례 화엄사의 각황전 보수공사 시기에 촬영된 것이다. 보수공사로 인해 각황전의 불상을 모두 대웅전으로 이운했는데, 이 사진은 각황전 보수공사를 마친 후 임시로 대웅전에 모셔져 있던 불상을 다시 각황전으로 이운하는 순간의 기록이다. 각황전의 불상은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사보살입상으로 색난(色難, 1640~?) 스님의 만년 작이다.
 

‘사진1’은 대웅전에 임시로 모셨던 불상을 전각 밖으로 이운하는 모습이고, ‘사진2’는 대웅전에서 이운한 불상을 각황전 안으로 모시기 직전에 촬영된 것으로 사진 속 불상은 석가모니불로 추정된다. 화엄사 각황전의 삼존불은 주불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아미타불을 왼쪽에는 다보불을 안치한 특징이 있는데, 아미타불은 오른손을, 다보불은 왼손을 들고 있는 수인(手印)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진 속 불상에는 손을 든 수인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석가모니불을 이운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화엄사는 신라 고승인 연기(煙氣) 조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지금은 조계종 제19교구본사로 국보와 보물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대가람이다. 대웅전은 국가지정 보물로 각황전과 함께 화엄사의 주불전이다. 1630년 벽암 스님이 중건을 시작해 1636년에 완공됐는데, 이후 몇 번의 중수와 보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각황전 또한 국가지정 보물로 본래 통일신라 시대 ‘장육전(丈六殿)’이 있었던 곳이다. 장육은 부처님의 몸이 장육금신(丈六金身), 즉 키가 1장 6척(4m80cm)에 색은 금빛이라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당시 봉안한 불상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것을 숙종 28년(1702)에 완공해서 각황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한편, ‘각황’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몇 가지 설이 있지만, 화엄사에 따르면, “각황은 부처님이 깨달은 왕(성인 중의 성인)이라는 뜻과 숙종 임금에게 불교 사상을 일깨워 주었다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라고 한다.

황정일 동국대 대우교수 9651975@hanmail.net

[1710호 / 2024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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