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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동화엄십찰 청담사지

기자명 임석규

의상대사가 화엄사상 전교했던 10대 화엄사찰

2007년 은평타운 예정지 발굴조사 과정서 대형 건물지 확인
‘삼각산청담사삼보초’ 적힌 암키와 발견돼 학계 비상한 관심
북한산 내 화엄종 뿌리내리고 있었음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

 

통일신라시대 최치원이 선정한 10대 화엄사찰의 한 곳으로 추정되는 청담사지.
통일신라시대 최치원이 선정한 10대 화엄사찰의 한 곳으로 추정되는 청담사지.

2007년 서울 은평뉴타운 예정지에 대한 문화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그 유적에서 ‘三角山靑潭寺三宝草’(삼각산청담사삼보초)라 적힌 암키와가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 모았다. 청담사는 통일신라시대 최치원이 선정한 10대 화엄사찰 가운데 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최치원이 만년에 해인사에 은거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895년부터 10여년 이상을 해인사에 은거하면서 많은 화엄관계 기록을 남겼다. 즉 의상 스님에 관한 ‘부석존자전’, 당나라 고승 법장(法藏)의 전기 ‘법장화상전’, 의상스님의 법손으로서 해인사를 창건한 순응·이정 스님에 대한 ‘순응화상찬’과 ‘이정화상찬’ 등이 그것이다. 특히 ‘법장화상전’에는 ‘漢州負兒山靑潭寺(한주부아산청담사)’를 포함하여 북악 부석사, 가야산 해인사와 보광사, 웅주 가야협 보원사, 계룡산 갑사, 삭주 화산사, 양주 금정산 범어사, 비슬산 옥천사, 전주 모악 국신사 등이 의상조사가 신라에서 화엄종을 전교했던 10대 사찰로 언급되었다. 모두 신라의 사상과 예술을 대표하는 사찰임은 말할 것도 없고, 국방을 위해서도 중요한 위치에 건립된 사찰들이다. ‘한주부아산청담사’에서 한주는 서울의 옛 이름이며, ‘부아산’은 북한산의 옛 이름이다. 즉, ‘부아산 청담사’의 존재는 통일신라시대 북한산 내에 화엄종이 뿌리내리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청담사는 이렇듯 신라 불교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장소 중의 하나였지만, 그간 위치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런 중요한 명문 기와가 발견되면서 이곳을 화엄십찰 중 하나인 청담사터로 추정하게 되었다. 

사지가 위치한 지역은 현 구파발 사거리 북서쪽 모서리 지점에 해당하는 곳으로서, 서울 중심부에서 고양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 중 하나인 통일로와 직접 연결된다. ‘구파발’은 17세기 무렵부터 운영되었던 역참으로서 서울에서 의주를 잇는 첫 번째 역참이었다. 

조사 대상지는 종래 탑골(塔谷)이라 불리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발굴조사 전에 이미 자씨각 안의 석조보살입상과 파손된 석조여래좌상편 등이 수습・확인된 바 있었다. 발굴조사는 자씨각 남쪽 부지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그 결과 고려시대 건물지 4동과 조선시대 건물지 2동, 건물지 관련 담장시설, 분묘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이 유적은 고려중기에 운영됐던 건물지이며, 출토유물 성격 등으로 미루어 사찰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명문 와편에 언급된 ‘靑覃寺’가 화엄십찰 중 하나인 ‘부아산 청담사’로 추정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건물지 내에서 11세기 이전으로 올라가는 유물이 전혀 출토되지 않아 이에 대한 이견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한편 사지 내 석조유물 등을 근거로 이 사찰이 12세기 이전부터 운영되어 왔고, 그 창건 시기는 통일신라~고려전기로 판단하는 의견 또한 존재한다. 당시 발굴조사가 사역 전체가 아닌 일부 영역에 국한되었기 때문에 창건시기와 관련해 정확한 결론을 도출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유적 안에는 진관동 석 보살입상을 봉안한 자씨각이 있고, 그 앞에 석탑재와 석조여래좌상편 등이 쌓여 있다. 현대식 건물인 자씨각 안에 있는 석조보살입상은 한국전쟁 이전부터 이곳에 있었다고 전하며, 석조여래좌상편 등은 인근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조사 당시까지 인근 마을에선 자씨각과 석탑재 주변에서 탑돌이 등을 하며 집안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이곳 자씨각 안에 모셔진 석조보살입상(왼쪽)과 발굴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명문 와편. ‘靑潭寺’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오른쪽). 사진제공=불교문화재연구소 
이곳 자씨각 안에 모셔진 석조보살입상(왼쪽)과 발굴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명문 와편. ‘靑潭寺’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오른쪽). 사진제공=불교문화재연구소 

석조보살입상의 현재 높이는 156㎝이고,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이다. 발목 아래는 시멘트 바닥에 매몰돼 있다. 목 부분에는 접합 흔적이 있으며, 상호 부분이 마모돼 손상이 심하다. 이마 중앙에 있는 백호는 후대에 삽입한 것이다.

보살상의 첫 번째 특징은 걸쳐입은 옷이 보살의 옷이 아니라 부처님의 대의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착의형식은 신라 말기부터 보이기 시작하며 고려시대에 유행한다. 그리고 보살상의 머리 중앙장식도 표현이 독특하다. 보관을 쓰고 있는데 정면, 양 측면에 각각 하나씩 화문 장식을 배치하였다. 특히 정면 입식은 화문을 둘러싼 화려한 장식이 부가되어 있다. 머리카락은 마치 투구를 쓴 것과 같이 풍성하게 부풀어 있다. 

이 유적에서 자씨각 내부에 모셔져 있는 보살입상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자씨각 앞에 놓여있는 석불좌상이다. 현재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이며 지정 명칭은 ‘진관동 석 아미타불좌상’이다. 이 상은 상반신과 오른쪽 무릎 부분이 파손된 채 하반신과 손, 상반신 일부만 남아 있다. 수인은 아미타부처님만이 지을 수 있는 아미타정인(阿彌陀定印)을 짓고 있어 존명(尊名)이 아미타불임을 알 수 있다. 아미타정인은 금강정경계(金剛頂經系) 의궤(儀軌)에 나오는 밀교계 도상(圖像)이다. 신라 하대에 전래되었으며 현전하는 예로는 경상북도 풍기 비로사(毘盧寺) 석조아미타불좌상과 경주 분황사(芬皇寺) 석조아미타불좌상 등 극소수만 존재한다. 

진관동 석 아미타불좌상은 아미타정인을 한 불상이 극히 희소한 상황에서 현재까지 서울·경기 지역에서 발견된 유일한 아미타정인 불상이고, 아미타정인 불상들 가운데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점 등에서 미술사적 가치는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북한산 청담사에 이렇게 귀한 아미타불상이 모셔진 것일까? 이 의문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아미타부처님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풀린다. 우리나라 화엄종의 효시인 의상조사가 부석사를 창건하던 676년 무렵 아직 화엄종의 주존불은 비로자나불이 아니었다. 당시 화엄종 사찰에서는 주로 아미타불을 모셨는데 부석사 또한 그러했으며 지금도 무량수전에는 아미타부처님이 앉아 계신다. 이후 화엄종 사찰에서 비로자나불과 함께 아미타불을 모시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면에서 보면 화엄십찰 청담사에서 아미타불상을 모신 것 또한 어색하지 않다. 경북 풍기 비로사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석조아미타불좌상과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아직도 사이좋게 앉아 계신다. 

청담사지는 출토된 명문기와 조각으로 인해 통일신라후기 ‘화엄십찰’ 중 한 곳으로 인정받고 있는 곳이다. 지금은 비록 사역이 훼손되어 원래의 자취는 찾을 수 없으나 아직도 상당히 넓은 범위에서 유물을 발견할 수 있다. 향후 보다 정밀한 조사가 필요한 이유이다. 

임석규 불교문화재연구소 수석연구관

[1710호 / 2024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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