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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 톺아보기] 4-2. 가까이서 만나 본 달라이라마

기자명 법보
  • 새해특집
  • 입력 2024.01.02 16:00
  • 수정 2024.01.03 13:59
  • 호수 1710
  • 댓글 0

박은정 (사)나란다불교학술원장 / 동국대 불교학 박사 

“선한 마음 이끄는 특별한 힘 있어”

1999년 미국 칼라챠크라 법회서 달라이라마 법문 듣고 인도행
“체니 배울 한국학생” 소개 듣고 미소…‘공식 통역관’ 인연 맺어
거만·오만하던 사람들 친견 후 동일 인물 의심할 정도로 달라져 

2002~2018년 달라이라마 한국어 공식 통역관으로 활동한 박은정 원장(오른쪽에서 세번째).
2002~2018년 달라이라마 한국어 공식 통역관으로 활동한 박은정 원장(오른쪽에서 세번째).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처음 뵙게 된 것은 1999년 미국 인디애나 주 블루밍턴 시에서 열린 칼라챠크라 법회에서였다. 매우 중요한 대중법회가 열린다는 어느 티벳 스님의 말을 듣고 ‘그렇게 중요한 법회라면 한번 가보자’라는 생각으로 참석한 법회였다. 수만 명이 참석하는 대형 법회의 스케일과 달라이라마의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법회 내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나는 그 법회에 참석한 인연으로 인도 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칼라챠크라 법회에서 만난 많은 티벳 라마들은 모두 티벳 원전으로 불교를 배울 수 있는 인도 유학을 조언하였고 그들의 조언에 깊이 공감하여 이듬해 2000년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달라이라마가 계시는 북인도 다람살라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하였다. 

달라이라마께서 설립하신 승가대학 Institute of Buddhist Dialectics의 분교인 사라(Sarah)학교에서 티벳어를 공부하고 있던 2001년 어느 날, 오랫동안 다람살라에서 기거하시던 청전스님께서 존자님의 친견 자리에 함께 하자는 제의를 하셨다. 인도에 온 지 일 년 만에 존자님을 가까이서 뵙게 된 것이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옆 접견실에서 흘러나오는 존자님의 음성은 방이 울릴 정도였는데, 나는 접견실에 스피커가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접견실에는 어떤 음향시설도 없었다. 처음 들어보는 음성이었다. 인간의 음성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마치 확성기를 달아놓은 것 같았으며 웅장하다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 음성의 특별함은 실제로 듣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다.

원불교 교무님들과 다람살라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로 이루어진 한국인 친견단이 접견실로 들어서자 존자님은 티벳 전통 예복은 입은 나를 가리키며 이 학생이 누군지를 연신 비서관에게 물으셨다. 사라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앞으로 체니(논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경론의 공부)를 배울 한국학생이라는 수석비서관의 답을 듣고 존자님은 매우 기뻐하셨다. 이어 청전스님께서 필자를 존자님의 한국어 통역관으로 천거하였고 티벳 이름을 주실 것을 청하였다. 그전까지 개별 친견에서 청전스님께서 통역을 해오셨지만 실질적인 한국어 공식 통역관은 없었기 때문이다.

존자님은 갑자기 눈을 감고 잠시 명상에 잠기듯 하셨다. 수 초 후 눈을 뜨고 엄지와 중지로 손가락을 튕기며 '텐진 드론메(Tenzin Dronme)'라고 외치셨다. 필자의 티벳 이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티벳어에 그리 능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친견이 끝난 후에 나는 수석비서관을 찾아가 이름의 의미를 물었다. ‘무명을 밝히는 지혜의 등불’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어리둥절했다. 모두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실제 존자님의 공식 통역관으로서 어떤 자격도 갖추지 못했고 다만 처음으로 티베트 전통 학제에서 공부하는 한국인일 뿐이었다. 공식적으로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말씀을 한국어로 통역하는 일은 곧 현실로 닥쳤다.

2002년에 존자님의 왕궁 오피스로부터 2003년 있을 한국인을 위한 법회의 통역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를테면 알파벳을 배우고 겨우 문자를 익힌 지 2년도 채 되지 않는 사람에게 백악관에서 대통령 통역을 하라고 지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 아닌가. 즉각 왕궁 오피스로 달려가 담당자인 영어 통역관 학돌라 스님을 만나 통역은 불가능하다는 뜻을 전했다. 아니 못한다고 떼를 썼다.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을 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학돌라 스님은 남은 1년간 트레이닝의 시간을 가질 것을 권고하셨다. 다급한 마음에 필자를 통역관으로 천거한 청전스님을 찾아가서 다른 사람을 추천하거나 스님께서 직접 하시는 쪽으로 말씀을 드렸지만 스님은 물론이고 그 책임을 선뜻 맡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부터 험난한 길이 시작되었다. 매일 8시간씩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육성이 담긴 녹음테이프를 들었다. 당시 필자의 나이는 만으로 스물다섯이었고 그 무게감과 압박감에 눌려 제대로 먹지고 못했고 잠을 자지도 못했다. 2003년 한국인 법회에서 나는 제대로 통역 완수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존자님으로부터 특훈 지시가 내려졌다. 그렇게 학교생활을 병행하면서 특훈으로 다시 1년을 보내게 되었다. 2004년, 델리로 자리를 옮긴 한국인 법회에서 존자님은 법회 시작 전에 따로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미리 어떤 말씀을 하실지 언질을 주시기 위해서였다. 처음 몇 말씀을 하시다가 “나도 내가 어떤 말을 할지 모르겠다. 혹시 내가 딴 소리를 하면 왜 좀 전과 다른 말을 하냐고 항의해도 된다”하고 껄껄 웃으셨다. 2004년 법회 통역을 완수하며 다행히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법회가 끝날 때 존자님께서는 나에게 티벳말로 특별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까딘체’라는 말을 하시고 합장하며 웃어 보이셨다. 그렇게 다람살라에서 2003년을 시작으로 2014년까지 12년간 한국인을 위한 법회와 개별 친견, 대담 인터뷰 등에서 한국어 공식 통역관으로 달라이라마 존자님의 곁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히말라야 산맥의 끝자락 북인도 다람살라 오지까지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만나기 위해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왔다. 한번은 존자님을 알현하기 위해 한국에서 오신 분들과 함께 대기실에 있었을 때였다. 전용기를 타고 왔다는 백인 부부가 대기실에 미리 와 있었는데, 그들은 모습은 거만했고 오만함이 가득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일정을 확인하려고 대기실과 비서실을 활보하는 자그마한 동양 여자인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눈빛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저런 사람들이 왜 여기에’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을까 그들은 곧 존자님을 만나러 접견실로 이동했고 시간이 지나자 그곳을 다시 빠져나왔다.

그들이 대기실로 다시 돌아오는 순간 나는 그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방금 전에 봤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 맞나 할 정도로 그들은 그야말로 말 그대로 순한 어린양이 되어 나왔다. 무슨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 듯 했다. 거만한 모습과 오만했던 눈빛은 간 데 없고 순하게 변한 눈빛과 태도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필자가 본 가장 드라마틱한 개과천선(?)이었다. ‘저 방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난 것인가, 존자께서 어떤 신통을 부리신 것인가’하는 생각으로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달라이라마 존자는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그들을 선한 쪽으로 변화시키는 강력하고 특별한 힘이 있다는 것을 생생히 목격했던 터라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그밖에 수많은 일화가 있지만 다 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달라이라마를 보고 울음을 터트리는 푸른 눈의 사람들, 어린아이처럼 대성통곡했던 한국의 철학자 등 달라이라마와의 만남을 통해 일어나는 신비로운 일들은 부지기수이다. 존자님을 알현하고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대게 예측되지 않은 것이었고, 달라이라마라는 존재와 만나면서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다. 언어를 초월하여 존재 그 자체를 통해서 느끼고 전달되는 존자님의 진심은 인종과 종교의 벽을 넘어선 것이었다. 관세음보살의 화신이자 천년에 한번 나오기 어려운 성인이라고 했던 리처드 기어의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이를 바탕으로 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 깊은 학식과 뛰어난 지혜, 유머러스함과 위트, 인간적인 솔직함 등 이러한 것이 세계인들이 달라이라마에게 열광하게 만든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2018년 일본법회를 끝으로 해외순방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지만 팔순이 넘어서도 노구를 이끌고 전 세계를 다니며 내면의 평화와 지혜를 일깨우셨으며, 아직도 다람살라에서 자신을 찾는 세계인을 맞이하며 자비의 메시지를 주시는 달라이라마 존자님은 관세음보살과 다름없는 존재이다. 

박은정 (사)나란다불교학술원장 / 동국대 불교학 박사 

[1710호 / 2024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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