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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재를 시작하며

부처님 가르침 ‘마음’으로 귀결

초기·대승·선 모두 마음 강조
정작 불자들 마음 이해 저조
공·연기와 상반된 견해 많아
마음 구조·본질 밝혀나갈 것

흔히 불교를 마음의 종교라고 말한다. 팔만사천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도 결국은 ‘마음 심(心)’자 하나를 풀이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라도 불교의 수많은 경전을 접하다 보면 부처님의 일체 교설들이 일관되게 중생 마음에 초점을 두고 설해졌음을 알 수 있다. 초기 경전인 ‘법구경’의 ‘심위법본(心爲法本-마음은 모든 법의 근본이다)’에서부터 대승 원교인 ‘화엄경’의 ‘심외무법(心外無法-마음을 떠난 법이 없다)’에 이르기까지, 또한 불립문자를 강조하는 선가의 ‘이심전심(以心傳心-마음으로 마음을 전할 뿐이다)’ 등 불교 안에는 온통 마음 이야기로 꽉 차 있다.

이처럼 불교가 마음을 중심으로 교리가 펼쳐지는 것에 비해 정작 불교인들의 마음에 대한 불교적 이해도는 지극히 낮다. 구도 의지가 빈약한 일반 불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구도의 길을 가는 수행자들 역시 마음만 깨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생각에 머물러 마음과 관련한 교리 탐구를 등한시 한다.

불교의 마음에 관한 몰이해는 불법의 법성(法性)을 약화하거나 법성에 대한 착각을 불러온다. 한 예로 ‘화엄경’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구절을 ‘마음먹기 달렸다’는 식으로 풀이하여 일종의 긍정심리나 성공 심리 차원으로 이해한다든가, 앞서 언급한 선가의 ‘이심전심’을 서로 생각이 통했다는 차원으로 이해하는데 그치는 경우이다.

또 한 가지는 불교의 마음관이 경전에 따라 교리상 차이가 난다는 점이다. 초기 경전이든 대승 경전이든 마음을 중심으로 교리를 전개하고 있으나 양자 사이에는 서로 수용되기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마음의 분류를 초기 경전에서는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의 여섯 종류 식으로 한정한 데 비해 대승 경전에서는 제7식과 8식을 설한다. 제7식과 제8식은 대승교리의 중요한 주제들이다. 이와 같은 교리의 차이는 자연히 불교를 신봉하고 수행하는 이들 사이에 불협화음을 가져오게 한다. 초기불교를 따르는 이들은 대승의 심식관을 비불설로 규정하고 제8 아뢰야식과 관련한 불성론에 대해 적지 않게 반발한다. 이에 비해 대승불교를 받아들이는 이들은 초기불교의 심식관에 한계가 있다고 여긴다. 그러고는 대승의 심식설이야말로 부처님의 진설에 속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문제는 대승의 심식관 속에 제8 아뢰야식과 함께 설해진 불성론(佛性論) 때문에 더욱 커진다.

당연히 제6식 외의 식들을 인정하지 않는 초기불교 신봉자들은 불성을 힌두교의 아트만(atman, 참나)이나 지와(jiva, 영혼) 푸드갈라(pudgala, 개아)와 동일한 개념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를 공격한다. 그런데 초기불교 신봉자들의 이러한 ‘편견’은 일부 잘못된 대승불교 신봉자들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불성에 대한 일부 그들의 오해는 초기불교 신봉자들의 대승불교 비판의 단초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들은 경전의 근거도 없이 불성을 멋대로 해석하여 대승불교 전체를 오염시킨다. 불성을 ‘근본생명’ ‘주인공’ ‘진아’ ‘대아’ ‘나의 뿌리’ ‘우주의 근본’ 등 언어로 대체시켜 그 진의를 왜곡하는가 하면 이를 확산시켜 대중의 안목을 흐리게 만든다. 모름지기 초기불교든 대승불교든 그것이 ‘불성’ ‘진여’ ‘여래장’이라 할지라도 불교의 근간인 ‘연기’ ‘무아’ ‘공성’을 벗어났다면 그것은 한낱 외도의 주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대승의 식심관을 공격하는 초기불교 신봉자이든 잘못된 심식관을 지닌 대승불교 신봉자이든 모두 경전에 충실치 못해서 생기는 소견들이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해심밀경(解深密經)’은 유식학파의 소의경전이다. 유식에서는 중생들의 심식의 발생 원리와 구조 그리고 이들을 어떻게 정화해 성불시킬 것인지 자세히 밝힌다. 바로 이 유식학의 근거가 ‘해심밀경’인 것이다. 유식학은 세상의 어느 심리학보다 깊고 예리하게 중생의 심리를 분석한다. 필자는 이번 연재를 통해 불교의 심식관을 바로잡는 데 일조했으면 한다. 또한 마음의 구조와 본질을 밝히고 대승의 요체에 해당하는 불성의 정체를 바르게 드러내고자 한다. 법보신문 구독자님들의 많은 관심과 질책을 당부한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710호 / 2024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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