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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 꿈조차 깨는 새해를 맞이하자

  • 법보시론
  • 입력 2024.01.08 13:06
  • 수정 2024.02.13 11:32
  • 호수 1711
  • 댓글 0

이른 아침 범어사를 지나 금정산 고당봉을 다녀오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부처님께 삼배를 드릴 수 있어 좋고 자연의 변화를 체감하고, 사색의 시간을 갖고, 심신이 건강해지니 더욱 좋다. 평소에는 인적이 드문 호젓한 길인데, 매년 정초가 되면 새벽부터 주차 전쟁이다. 금정산성, 고당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인산인해다. 새해 해맞이하려는 인파로 인해서다. 801m 고당봉에 올라서면 해운대에서 광안리 바다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 영도를 잇는 부산항대교, 대마도까지 전경이 펼쳐진다. 해맞이하기에 장관이다. 이런 현상이 어디 범어사뿐이겠는가. 신년이 되면 전국 어디에서나 펼쳐지는 다반사다. 묵은해와 새해는 다른가.

‘금강경’ 묘행무주분에 ‘부주어상(不住於相)’이라는 대목이 있다. ‘상’의 범어 원문은 ‘니미타-상즌야(nimitta-saṃjñā)’, 번역하면 ‘상상(相想)’이다. ‘니미타에 대한 생각에 머물지 말라’는 의미다. ‘니미타(相)’는 상상되거나 헛되이 구성된 사실에 의해서 특징지어진 어떤 사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니미타-상즌야’ ‘상상(相想)’은 헛되이 구성된 모습에 대한 생각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주어상’은 ‘헛되이 구성된 모습에 대한 생각에 머물지 말라’는 뜻이다.

비유를 들면 밤길을 걷다가 새끼줄을 보고 뱀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때 착각한 뱀의 모습이 ‘니미타’이다. 불을 비춰서 뱀이 아니라 새끼줄인지 확인하면 뱀의 모습이 허상인 줄 알게 되어 사라지지만, 만약 확인하지 못했다면 뱀의 모습인 니미타는 영원히 진짜로 인식되어 남아 있게 된다. 그로 인해 그곳을 지나갈 때면 두려움을 느끼거나 회피하려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일으킨다. 이것이 ‘니미타-상즌야’다. 허상에 새로운 허상이 더해진다. 꿈속의 꿈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감상하려는 마음은 생명을 지닌 인간에게 인지상정일지 모른다. 삶과 죽음이라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회한이 교차하면서 희망을 소원하는 엄숙한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맞이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어 줄 것처럼 지나친 생각을 하거나 그런 착각으로 인한 어떤 행동을 유발한다면 바로 ‘니미타-상즌야’를 일으키는 행위가 되는 셈이다.

비단 해맞이 풍경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그와 같은 모습들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총선이 몇 개월 남지 않았다. 진보·보수의 다툼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사회를 혁신하고 구성원의 욕구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거기에 진영논리가 작동하면 심각해진다. 소위 소통이 멈춰버리고 자칫 괴물화 될 수도 있다.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탈북민, 국제결혼 가정과 자녀수 증가, 외국인 근로자, 유학생 등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매우 다양화되었다. 이민청 신설, 이민자 유치 등 정책도 펼치고 있다. 경제·문화적 격차를 좁히려는 노력과 이해와 포용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만일 차별과 편향의 왜곡된 시각이 작동하게 되면 사회시스템에 커다란 갈등과 혼란이 야기된다. 음모론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을 때 그 배후에 거대한 권력이나 비밀스러운 조직이 있다고 여기며 유포되는 소문을 말한다. 개인화, 고립화, 개인 미디어 시대에 더욱 횡행할 수 있다.

확증편향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을 말한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말과 유사하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런 현상을 목격하거나, 자신의 마음에서 이런 생각이 일어나면 꿈속의 꿈 ‘니미타-상즌야’인 줄 알아차리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분별망집(分別妄執)을 떠난 반야바라밀다의 지속적 실천으로 이를 타개해야 한다. 그럴 때 온전한 즐거움과 평화가 실현되기 때문이다.

이욱태 (사)한국수소에너지기술연구조합 이사장 satdharma@naver.com

[1711호 / 2024년 1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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