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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교경영이란 무엇인가

불교는 왜 물질문화 생산에 적극적이었을까

신도들 시주·보시에 의존한 교단, 효율적 경영은 존립과 직결
부처님 ‘더 지속 가능한 발전의 지혜' 제시에 신흥 상인 매료
승가엔 무소유 강조했지만 대중들 재산 증식 비판한 적 없어

부처님의 첫 제자로 다섯 비구를 꼽지만, 그 전에 막 성도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타뿟사와 발리카라는 상인이 있었다. 페샤와르박물관 소장 고행상 대좌에 새겨진 두 상인의 공양 모습. 
부처님의 첫 제자로 다섯 비구를 꼽지만, 그 전에 막 성도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타뿟사와 발리카라는 상인이 있었다. 페샤와르박물관 소장 고행상 대좌에 새겨진 두 상인의 공양 모습. 

동양의 종교 중에서 미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데 있어서 불교가 단연 선구적이었다. 불교도 처음에는 스투파(불탑) 외에는 별다른 물질문화를 만들지 않았지만, 점차 불상 같은 시각물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물질문화의 생산에는 많은 돈이 들기 마련이니, 자연스레 그 바탕에는 불교 특유의 경영관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참선을 중시하고 무소유를 강조하는 불교가 왜 이렇게 물질문화 생산에 적극적이었을까? 불교경영에 대한 물음은 여기서 시작된다. 

우선 ‘불교경영’이라고 하면 불교로 돈을 버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하기 쉬운데, 경영이 꼭 돈을 버는 기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경영이란 효율적으로 어떤 조직을 운영하는 것을 총괄하는 개념이다. 영어 ‘management’의 어원도 ‘말고삐를 다루는 기술’이라 하고, 한자 ‘경영’의 어원도 ‘구도’, ‘설계’에 가까운 뜻이니, 곧 조직의 나아갈 길을 설계하는 것이 경영인 셈이다.

물론 돈과 밀접한 관계는 있다. 비영리기관이라 할지라도 현상을 유지하는데도, 규모를 늘리는데도 돈이 들어가므로 돈을 마련하고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군대는 세금으로 운영되고 이윤을 남길 필요도 없지만, 경영을 효율적으로 하지 못하면 전투력은 떨어지고, 국민의 세금만 엄청나게 낭비하는 조직으로 전락할 것이다. 불교교단도 마찬가지다. 수행자 자신은 무소유이지만 다른 종교처럼 승려도 더 배출해야 하고, 신도도 더 많이 모아야 한다. 군대와 다른 점은 세금 대신 대중들의 시주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또한 아무리 세상을 초탈한 스님들이라도 먹고사는 문제는 엄연한 경제적 문제이고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다행히 인도라는 나라는 종교수행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공양’을 최고의 공덕으로 생각하는 오랜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수행자들은 최소한 밥을 굶지는 않고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부처님 자신은 일종의 ‘슈퍼스타’로 누구나 공양을 드리고 함께 식사를 하고 싶은 대상이셨겠지만, 부처님은 “어떻게 해야 내 제자들도 원활하게 공양을 받고 수행에 전념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으셨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당시로서는 신흥종교였던 불교 교단을 홍보하고, 사람들이 부처님의 제자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공양해주기를 바라며 마케팅 전략을 세우셨을 것이다. 

나아가 승가(僧伽)라는 공동체는 대중들로부터 시주를 받아 점차 재산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이러한 잉여자산에 대한 처분과 배분도 중요한 교단 경영의 과제로 떠올랐다. 때로는 이러한 잉여자산으로 불교가 고리대금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따로 살펴볼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비영리기관인 불교라고 할지라도 경영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불교경영의 또 다른 주제는 교단 밖의 문제를 다룬다. 많은 사람이 고민을 가지고 부처님께 찾아와 위안과 마음의 평화를 갈구했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지만 많은 문제가 경제적 문제, 즉 돈과 재물에 관한 문제이다. 이 문제를 풀어 주어야 하는 입장에서 부처님은 재물을 어떻게 바라보셨을까? 그저 돈에 관한 문제는 전부 쓸데없는 걱정이고, 돈은 필요 없는 것이니 다 부처님께 버리고 가라고 가르치셨을까? 단지 그 정도 가르침으로 인류의 원천적인 고민인 돈 걱정하는 대중들을 그렇게 매료시킬 수 있었을까? 

혹자는 불교를 상인의 종교라고까지 부른다. 경전에 나오는 대중들의 수많은 질문이나 상황설정 중에는 ‘장자’라는 신분을 지닌 주인공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들은 주로 성직자나 왕족, 귀족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지만 사업이나 무역, 농장의 운영을 통해 부를 축적한, 말하자면 신흥계층에 속한 사람이었다. 이들이 부처님께 매료되었던 것은 부처님이 부나 재물을 죄악시하지 않고, 재산의 축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어떻게 하면 재산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재산을 더 뜻깊게 사용할 수 있는지, 그럼으로써 어떻게 더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는지의 지혜를 주셨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불교는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해지는 종교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그렇게 말씀하셨을지 몰라도, 그러한 제자들조차 잘 먹고 수행하려면 든든한 후원이 있어야 했고, 든든한 후원을 위해서는 대중들이 경제적으로 잘 살아야 했던 만큼, 대중들의 경제활동이나 재산의 증식을 비판하신 적은 없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돈과 그 돈의 씀씀이에 대한 말씀이 현대 경제학자나 경영학자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제시하는 이론들과 묘하게 닮았다.

그래서 이미 불교의 가르침으로 경제관과 경영관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된 바 있다. 대표적인 예로 에른스트 슈마허(E.F.Schumacher)의 1973년 작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불교경제학’이란 단어가 등장하고 있다. 그밖에 ‘상생의 불교경영학’(이노우에 신이치), ‘CEO 부처’(오구리 도에이, 이 분은 스님이다) 등 일본 저자의 책에서부터 대만 불광사 성운스님의 ‘인간불교의 경영과 실천’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이 나와 있다. 다만 이런 책들에서는 구체적으로 경전의 일화가 소개되지는 않아서 이번 연재에서는 경전, 특히 계율을 다룬 율장 등에 등장하는 실제 사례들을 추적해보려고 한다. 

그럼에도 중요한 의문이 남는다. 이러한 불교경영이 실제로 기업 경영에도 도움이 될까? 불교미술사를 통해 불교라는 거대한 종교와 사상에 점차 손을 담그다 보니, 불교의 좋은 점을 나름대로 홍보하고 다니는 편인데, 많은 분들이 이런 질문을 해온다. 즉, 그렇게 좋은 불교인데 왜 불교를 믿는 나라는 가난하고, 기독교를 믿는 나라들은 잘 사는가? 사실 많은 유학자들이 불교를 비판할 때의 이유 하나도 불교를 믿으면 나라가 일찍 망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럴까? 

이에 대한 쉬운 대답도 있기는 하다. 불교가 창시된 인도는 부처님 당시에는 세계에서 손꼽힐만한 부자 나라들이었고, 그 외에도 많은 불교 국가들이 과거에는 잘 사는 나라들이었기 때문에 불교 믿는 나라가 못 사는 것이 아니라는 답이다. 동서문명을 비교한 많은 학자들도 지리상의 발견 이전에는 분명히 동양이 더 잘 살았음을 역설한다. 이후 서양이 동양을 앞지르게 된 것은 자본주의 사상이나 기독교 때문이 아니라 식민지를 확장하고 노예들을 부린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동양은 화약과 나침반을 발명하고, 종이도 먼저 만들어냈으면서 왜 서양이 무력을 앞세워 식민지를 쟁탈하는 동안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한 것일까? 이것은 단순히 무기의 열세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과학의 문제이고, 생각의 문제이며, 세계관의 문제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불교는 정말로 동양의 사회와 문화를 발전적으로 이끌 원동력이 되어주지 못했던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을 이 연재를 통해 찾아가 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생각해보자. 불교를 하나의 기업이라고 본다면, 기원전 5세기 무렵 시작하여 지금까지 무려 2600년 가깝게 이어져 온 기업이다. 이 정도로 장수한 기업이라면 그 자체로서 매우 성공한 기업이라는 것을 입증한 것 아닐까? 그렇게 지속할 수 있었던 교단의 지혜에는 지금의 기업들도 참고할만한 아이디어가 들어있을 것이다. 아무쪼록 독자 제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주수완 우석대 경영학부 교수 indijoo@hanmail.net

[1711호 / 2024년 1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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