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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안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

기자명 혜민 스님

1. 구도의 길

부처님은 깨달음 방편 제시
구도 마지막에는 다 버리고
어떤 것에도 의존 못하게 해
오직 완전한 자유만 남겨져

나는 고등학생 때 명상 서적들을 우연히 읽다가 처음 발심해 구도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시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의 세계라는 것이 있고, 그것을 팔만사천 경전 속에 담아 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진리의 내용을 온전히 깨닫는 날이 올 때까지 나름 부단히 공부하고 정진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땐 깨달음을 얻었다는 큰 어른이 계신다고 하면, 그분이 스님이든 재가 분이든, 우리나라이든 외국이든 가리지 않고 두루 찾아다녔다. 너무나도 간절하게 진리를 깨닫고 싶었고, 왠지 큰 어른을 만나면 그분이 나에게 깨달음을 전수해 주실 것만 같았다.

구도 초창기에 무수한 노력을 통해 그 결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깨달음을 성취한다” 혹은 “깨달음을 얻었다”는 식으로 사람들이 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언가 각고의 노력 끝에 성취할만한 어떤 대상이 있고, 얻을 수 있는 진리가 따로 있는 줄로만 알았다. 왜냐하면 통상적으로 우리가 “무엇이 진리이다”라고 말할 때, 전해줄 진리의 내용이라는 것이 있지 않는가? 전해줄 어떤 법의 내용이 있었으니까. 선불교의 경우, 달마 스님으로부터 혜가 스님에게, 또 혜가 스님에서 다시 승찬 스님으로 법통이 쭉 전해 내려온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삼십 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니 초창기 시절과는 안목이 완전히 달라져 있음을 인지한다. 시간이 갈수록 부처님 법이 진실로 대단하구나 하고 감탄하면서도, 더불어 스승이 제자에게 전수해 줄 만한 진리의 내용이 털끝만큼도 없었구나 하는 안목이 대신 자리 잡았다. 왜 부처님의 법이 진실로 대단한지, 그리고 왜 필자는 진리의 내용이 없다고 이야기하는지 지금부터 자세히 나누어 보려고 한다. 혹시라도 구도의 길을 한참 걷고 계신 후배님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조금이래도 공부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먼저 부처님 가르침이 정말로 대단한 이유는 바로 깨달음으로 가는 방편을 제시해서, 구도자가 먼저 그 방편의 배에 타게 한 후, 깨달음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지금까지 구도자에게 가르쳤던 그 모든 것들을 몽땅 다 없앤 후에 깨달음에 도달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수행법과 같은 방편은 물론이고 구도의 과정에서 애지중지 여기며 배웠던 부처님 법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나라도 붙잡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점이다. 즉, 구도의 마지막 관문에서는 조사도, 부처도 다 쳐 버리게 해서,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못하게 딱 만들어 버린다.

십우도를 예로 보면, 처음 구도자는 진리라고 생각하는 소를 찾으러 집을 나서게 된다. 노력 끝에 소를 찾은 후에는 소 등에 올라타고 소를 자기 마음대로 몰지만, 결국에는 소도 놓아 버리고 나도 잊어버리는 인우구망(人牛俱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진리가 처음에는 소의 모양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것을 구하고 붙잡았는데, 알고 보니 소가 오히려 실상을 가리는 방해물인 것이었다. 소를 놓아 버리고 나도 잊어버리니 원래부터 항상 있었던 일원상의 텅 빔이 드러나게 되면서 드디어 깨닫게 된다.

즉, 수행의 과정은 내가 생각 속에 빠져 그 생각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착각했던 것들이 단지 허망한 생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보면서 일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스승은 어떤 정해진 진리를 제자에게 전해주는 것이 아니고, 제자가 생각으로 붙잡고 있었던 것을 하나씩 깨부수어 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만약 진리라는 것이 간직해야 할 어떤 고정된 내용이 있는 것이라면 마음이 거기에 걸리게 되어 완전한 해탈이라고 할 수 없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기에 어디에 의지할 나도, 의지할 대상도 없다. 신기루처럼 끝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세상 모습, 생각, 감정 등은 실체가 없기에 크게 마음을 두지 않게 된다. 그 어떤 것도 붙잡지 않기에 그저 무한히 자유롭고, 편안할 뿐이다.

많은 종교는 진리라는 가르침의 내용이 있고, 그것을 어떻게 하든 소중히 남기려고 한다. 그런데 부처님 법은 처음에는 진리가 따로 있는 것처럼 가르쳐서 발심을 하게 만든 후, 공부가 깊어지면 기존에 가르쳤던 것들을 싹 다 지워버리면서 그 어떠한 자취도 허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가르침을 자신이 다 없애버리고 완전한 자유만을 남겨 놓는 부처님 법이 그래서 참으로 놀랍고도 위대하다.

혜민 스님 godamtemple@gmail.com

[1711호 / 2024년 1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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