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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대 어장 석가모니의 범음성과 범패

기자명 윤소희

석가모니는 음유시인이자 가장 매력적인 싱어

붓다의 음성은 정직·화아·청철·심만·주판원문 갖춘 범음성
범패 원음은 붓다 음성…범패 시작은 붓다의 말씀서 비롯돼
범패 잘하는 여부는 내면의 청정·수행의 정도에 달려 있어

위: 스리랑카의 싱할리 패엽경과 불상. 아래: AD 2~3세기경 조각된 녹야원 초전법륜과 AD 1~3세기경 자작나무 껍질에 간다라어로 새긴 ‘법구경’(프랑스 국립 도서관 소장).
위: 스리랑카의 싱할리 패엽경과 불상. 아래: AD 2~3세기경 조각된 녹야원 초전법륜과 AD 1~3세기경 자작나무 껍질에 간다라어로 새긴 ‘법구경’(프랑스 국립 도서관 소장).

호모사피엔스의 진화 단계 중 고등종교의 출현 시기는 생활양식, 정치와 학문, 문화와 예술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혁명기였다. 서기전 500년 전후 세계 각지에서 발현한 이들 종교의 공통점은 ‘말씀’이라는 도그마가 있어 유교·기독교·불교와 같이 ‘교’자가 붙는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고로스요, 그 존재 형식이 말씀이라 구약 성서에서 “태초에 말씀이 있으셨다”고 하며, 그 말씀의 육화가 예수의 탄생이었다. 

특정 창시자가 없는 힌두교는 브라흐만의 존재 형식이 ‘말씀’이었고, 말씀을 읊는 사제들의 음성을 신성의 실체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복잡한 제사의식을 위해서 고도의 훈련을 쌓았고, 우주의 궁극인 ‘범(브라흐만)’과 자신의 실체 ‘아(아트만)’가 합치되는 범아일여(梵我一如)를 추구하였다. 이를 위해 초자연계의 보이지 않는 힘과 신성에 나아가기 위한 공진훈련이 사브다비드야(Śabda(聲)vidya(明))였다. 이러한 학습으로 음성 에너지의 효력을 알게 된 사제들은 갖가지 진언으로 주술을 부리며 민중을 현혹하고 나아가 신의 대리자로서 절대적 권위를 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코살라 왕국의 석가모니가 나타나서 범(梵)도 아(我)도 없다고 하였으니 그야말로 수천년간 쌓아온 힌두사제들의 절대 아성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핵염기 DNA과학이나 시공간의 양자역학도 없던 그 시절 “모든 존재는 연기(緣起)의 결과일 뿐 아트만이 없으며 시공간 또한 고정된 실체가 아님”을 설하였고, 그 이치를 처음으로 알아차린 다섯 비구가 있었다. 이후 그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브라만이었던 범마유도 그를 찾아갔다. 

나름 대접받는 엘리트였던 범마유가 석가모니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감복하여 그 음성을 일러 ‘범음성’이라 하였다. 붓다의 음성은 말씀의 씨앗이 인체를 통해서 울려 나오는 파동이므로 그 말씀의 궁극은 태초로 거슬러 간다. 그러므로 일본의 진언종에서는 석가모니 붓다를 넘어 우주의 근원인 대일여래를 그들 쇼묘(聲明) 계보의 시조로 삼는다.

한 사람이 자신의 손을 움직일 때 단백질이 일정한 산소를 공급함으로써 움직여지는 과정을 생생히 들여다볼 수 있는 21세기 과학시대에 더욱 빛을 발하는 무상무아의 연기설은 팔정도의 실현으로 생명성을 발휘한다. 이를 설한 붓다의 말씀은 권위 있는 산스크리트가 아닌 보통 사람들의 속어였으므로 기묘한 무엇이 없는데도 그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이러한 데에는 우주의 이치에 부합하는, 요즈음 말로 하자면 과학적인 ‘사실의 힘’이 있었던 것이다.

벌의 날개 진동을 감지한 꽃들이 더 많은 꿀을 뱉어내듯이 생명체는 진동의 울림으로 소통한다. TV와 스마트폰의 수신이 가능하게 하는 특정 주파수가 있듯이 모든 물질의 기능은 파장으로 연결된다. 

흑인 노예의 후손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자 세간에서는 오바마의 매력적인 목소리와 연설이 당선의 일등공신이었다고 하였다. 그러자 오바마 음성의 파동수를 측정해 신뢰와 감동을 주는 묘력의 남성 파동수는 90~100Hz, 여성은 190~200Hz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속인들은 정치나 비즈니스를 위해 음성과 말씨를 조절하기도 하겠지만 붓다는 그냥 그 존재 자체의 울림이었으니 말하자면 무위(無爲)의 공명이었다. ‘장아함경’은 세존의 32상호를 설하며, 그 음성을 정직(正直), 화아(和雅), 청철(清徹), 심만(深滿), 주편원문(周遍遠聞)을 갖춘 범음이라 하였다. 또 다른 경전에서는 여래의 음성을 “메아리 같았으며, 서로 다른 근기에 따라 갖가지 마음과 즐거움을 알고, 묘한 음성으로 그에 맞게 설법하였다”고 하며, ‘법원주림’에서는 붓다의 범음성을 다섯 가지로, ‘범마유경’에서는 여덟 가지 특성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세계 어떤 종교에서도 종조(宗祖)의 음성에 대해 이토록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경우는 없다. 

붓다의 말씀 중 그 율조가 가장 유려한 것은 가타(詩)다. 가타는 “노래하다”라는 산스크리트 어근 가우(gau)의 명사형으로서 법언 자체가 아름다운 음악이었던 데서 비롯된다. 가타를 모아놓은 ‘법구경’은 붓다의 노래 모음집이라 할 만큼 운율이 아름답다. 그러므로 붓다의 말씀을 소리로 기록한 빠알리 경전을 외는 남방스님들의 수행처에는 수시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이러한 점에서 석가모니는 출세간의 음유시인이자 인류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싱어(singer)이며, 범음성의 초대 어장이었다. 

석가모니 붓다의 법언 율조가 중국에 들어와서는 찬탄의 기능이 강조되며 ‘범패’로 불리게 되었다. 범패의 ‘범(梵)은 산스크리트어 브라흐마(brāhma)를 음사한 것으로, 어근 ‘브리’에서 파생되어 모든 존재의 동력이며 원천이자 천상의 ‘브라흐만’과 연결된다. ‘패(唄)’는 산스크리트어 문구·독송·암송을 뜻하는 파타(pāṭha)를 음사한 것으로 송(誦)·송(頌)·창(唱)을 통칭하게 되었고, ‘법구경’을 뜻하는 ‘담마 파다’ 또한 이러한 데서 비롯된 경전 명칭이다. 

따라서 범패의 원음은 붓다의 음성이요, 범패의 시작은 붓다의 말씀에서 비롯되었다. 역사가 흐르면서 범패의 ‘범’은 ‘신성하다’ ‘청정하다’라는 뜻으로도 통용되어 짓소리를 ‘범음’이라 하고, 범패를 ‘범음범패’라고도 하였다. 여기에는 탈세속적, 성스러운, 여법함과 같은 의미들이 중첩되어 있다. 범패의 원음이 붓다의 음성이듯 범패를 잘하는 비결은 내면의 청정과 수행의 내공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범패 가사를 노래하더라도 법언보다 창자(唱者)의 미성이나 기교 혹은 특정 이익이 원동력이라면 그 사람은 세속의 가수이지 출세간의 어장이 아니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동국대 대우교수 ysh3586@hanmail.net

[1711호 / 2024년 1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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