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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시대[唐代]와 문화[祖師禪]의 만남

기자명 정운 스님

조사선 등장으로 일상 선 발달

여러 법난 등을 거치면서
일상서의 불법 구현 자각
‘평상심시도’ 강조 조사선
새로운 사상으로 자리매김

‘금강경’에 “일체법이 모두 불법[一切法 皆是佛法]”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불법이요, 수행의 길 아님이 없다는 뜻이다. 또한 ‘법화경’에서도 “일체 생산 업무가 모두 실상과 위배되지 않는다[一切治生産業 皆與實相不相違背]”고 하였다. 이 말 또한 ‘금강경’ 사상처럼, 살아가는 삶의 원리 자체가 불도의 길임을 시사한다. 그래서 조사선의 개조(開祖) 마조(馬祖, 709∼788)를 비롯해 모든 선사들이 ‘멀리서 찾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늘 우리 자신이 참된 본성을 구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곳곳 요소요소가 지혜의 발현이요, 진리를 배울 수 있다. 

불법을 배우는 것과 인생을 따로 분리해서 볼 필요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기야 석가모니 부처님도 형이상학적 철학을 중시하지 않고, 사성제 원리에 입각해 고(苦)를 해결할 것을 강조하셨다[離苦得樂]. 원고와 빗나가는 점이 없지 않지만, 부처님 사상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숭산 스님도 미국에서 선으로 법을 전할 때, 제자들에게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양치질할 때는 모든 번뇌를 떨쳐 없앤다는 생각을 하고, 세탁기에서 옷 세탁을 하면서는 마음을 청정케 한다는 생각을 하라. 혹 비행기 트랙을 오를 때는 깨달음에 높이 오른다는 생각을 하라.” 숭산 스님은 늘 생활 속에서 본성 자각을 통해 불법 구현할 것을 제자들에게 각인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일상에서의 삶이 곧 선’이라는 것을 발전시킨 분이 마조 선사이다. 이런 일상성의 선은 조사선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일상에서 선수행’으로 발전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했지만, 간단히 서술하면 세 가지이다. 

첫째는 당나라 중기 무렵, 불경의 한역(漢譯)이 거의 완성되면서 교학도 최고조로 발달했다. 중국에서 고도로 발전했던 당대의 교학이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새로운 불교사상의 지평이 요구되었다고 본다. 

둘째는 중국 역사에서 당나라 문화가 최고조로 번성했는데, 바로 이때 민중들은 안록산의 난[755년]을 겪으면서 귀족 문화보다 서민 문화를 추구했다고 본다. 당연히 불교도 이런 변화에 영향을 받았다. 조사선이 시발 되고 발전했던 지역도 수도가 아닌 시골의 변방이다.

셋째는 845~847년 대규모의 회창파불 법난을 겪으면서 중국불교는 교학보다는 일상에서 직접 실천하는 행적(行的)인 측면이 강조되었다. 실천적인 측면이란 바로 선과 정토염불이다.

앞의 세 가지는 시대적인 요청에 의해 선사상이 발달하고 선종이 번성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사료된다. 이런 시대[唐代]와 불교문화[祖師禪]의 만남이 일상화된 선의 전개이다. 이 일상성의 선을 발전시킨 선사들은 마조계 선사들과 석두계[조동종]이다. 

일상성의 선이란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그대로가 본래심의 작용이라고 본다. 바로 본래성불과 본각에 입각한 일상성의 종교로 저변화되었다. 현실과 괴리되는 불교를 거부하면서 일상적인 삶에서 불법을 구현코자 하였다. 이런 여러 정황에서 자연스럽게 선문답이 발달했고, 노동=선을 동일시하면서 청규가 제정된 것이다.

이 조사선의 중심 사상[마조의 선]이 ‘평상심시도’와 ‘즉심시불’이다. 그러면 일상과 밀접한 ‘평상심’에 대해 살펴보자. 평상심이란 일상의 생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 간에 본심을 잃지 않은 자각적인 삶이다. ‘평상심’이라고 하는 마음은 보통 인간의 마음이다. 그런데 그 마음이란 번뇌심이 아니라 청정한 자성·본성이 본래 구족돼 있는 마음이다. 한 마디로 대승불교 경전이나 선에서는 중생심이 아닌 불심의 마음이라고 이해하면 쉬울 듯하다. 

본래 청정한 본성을 구유(具有)한 평상심이기 때문에 그대로 부처[➙卽心是佛]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굳이 수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道不用修]고 한다. 마조의 손자뻘 제자인 황벽 희운(?~850)도 ‘전심법요’에서 “현재 자신의 마음이 본불(本佛)이라는 것을 몰록 깨달으면[頓悟], 한 법도 얻을 것이 없다. 그러니 굳이 닦을 것이 없다”고 하였다.

정운 스님 대승불전연구소장 saribull@hanmail.net

[1712호 / 2024년 1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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