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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기(성담·48) 사불수행 - 상

기자명 법보

어릴적 열병 겪고 청각 잃어
말 알아듣지 못해 늘 겉돌아
답답할 때마다 부처님 그려
수어 배우고서야 ‘나’ 표현해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3살 즈음 걸린 심한 열병 때문에 귀가 안 들리게 되었다고. 너무 어렸을 적이라 기억은 나지 않지만 걸을 수 있을 때부터 어머니 손에 이끌려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산과 절에 다니며 108배와 참선을 배웠다. 해인사에서는 성담이란 법명도 받았다. ‘맑고 투명한 물이 가득 찬 연못처럼 청정한 불성을 체득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 때부터 계속 부처님을 믿었다. 어머니는 공양주 일을 하셨기에 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나랑 함께하는 시간보다 훨씬 길었다. 나는 어머니와 소소한 일상을 즐기지 못하는 대신 가까이 살던 친척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렸다. 당시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소통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바쁜 와중에도 내 귀가 들리게 하려고 안 다녀본 곳이 없었다. 한약도 참 많이 먹었다. 그런 약들 덕분에 지금 매우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구화(口話) 유치원을 다녔다. 그런데 입 모양을 보고 말을 추측해서 대화하는 방식이라 너무 힘들었다. 주변에 수어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귀가 들리지 않아 답답한 마음이 쌓이고 쌓이면 운동을 하거나 부처님 그림을 그렸다. 아주 작은 소리라도 들어보고 싶어서 이어폰을 끼고 다니기도 했다. 보청기를 껴도 소리가 있다는 것만 알지 정확한 음을 알지는 못했다. 그래도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는 척하며 무리에 끼고 싶어 노력했고, 이로 인해 발생한 부지기수의 오해도 겪었다.

모두 입으로 대화를 하는 그 속에서 나는 늘 겉돌았다. 부처님은 왜 나를 외롭게 이렇게 소리를 못 듣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었다. 억울함과 외로움에 눈물이 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찬불가를 들어보고 싶었고 범종 소리가 여러 갈래로 퍼지는 그 미세한 차이를 느껴보고 싶었다. 

피아노, 웅변, 태권도, 유도, 해동검도, 합기도, 주산 등 수많은 학원에 다니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수어를 아무도 모르고 우리 어머니조차도 수어를 몰라서 나를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섬이었다. 비장애인들 속에 있으면 언제나 섬.

사람들은 나를 보면 미남이라고 했다. 그러나 미남이어도 언어가 서로 달라서 내 마음에 드는 여자를 사귈 수가 없었다. 점점 성장할수록 내 마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만과 불안, 두려움이 커다란 바위처럼 자리 잡았다.

수어를 배우려고 농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났다. 하지만 어머니는 “농인을 만나지 말고 청인을 만나야 나를 대신해 통역도 해주고 나한테 도움이 된다”며 농인 친구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 결혼도 꼭 청인 여자랑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나는 어머니가 욕심쟁이라고 생각했다. 부처님께 나를 사랑해주는 여자를 만날 수 있을지 몰래 여쭤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작은 소식지를 가져왔다. 흑백의 몇 장 안 되는 소식지 표지에는 ‘원심’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어머니가 여기 가보라고 했다. 조계사 원심회. 수어를 가르친다는 내용에 눈이 번쩍 뜨였고 호기심이 일었다. 당장 원심회 일요법회에 참석했다. 

수어로 진행되는 일요법회에는 청인과 농인들이 함께 있었다. 회원 수도 많았고 수어교실을 통해 청인들이 농인들에게 국어를 쉽게 알려주었다. 항상 배움에 갈증이 심했던지라 염치 불구하고 수어도 국어도 배우기 시작했다. 재미있었다. 법회뿐 아니라 다양한 행사들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었고, 수어를 배우며 ‘나’를 표현할 수 있었다. 원심회를 만나 다시 태어난 셈이다. 이제야 가슴이 시원하게 숨을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청인과 어울리며 청인들의 문화도 배우고, 서툴긴 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2외국어로 영어를 배우는 것처럼 나도 국어를 열심히 배웠다.

초등학교 때는 그래도 공부 대신 노는 게 재미있어서 6년을 버텼는데, 일반 중고등학교를 진학하며 사람들과 깊이 있는 대화가 더욱 어려워져 학교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그래도 내 성격은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라 눈으로 보고 몸으로 따라 하는 것은 제법 잘했다. 운동과 미술, 주산, 컴퓨터 공부에 재능을 보였다.

[1712호 / 2024년 1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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