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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기념일-유정숙에게’-서정춘

기자명 동명 스님

그들 부부가 현자로 살아가는 법

50년 부부로 살아서가 아니라
집착 모두 내려놓았기에 현자
어떻게 마음먹고 사냐에 따라
지금 사는 세상은 이미 불국토

시 공부 10여 년에 쌓인 책 이희승 국어사전 빼고 나머지 한 도라꾸 판 돈으로 한 여자 모셔와 서울 청계천 판자촌에 세 들어 살면서 나는 모과할게 너는 능금해라 언약하며 니뇨 나뇨 살아온 지 오늘로 50년 오매 징한 사랑아!
(서정춘 시집, ‘하류’, 도서출판b, 2020)

2년 전인가? 서정춘 시인이 ‘현구집(玄句集)’이라는 제목의 책 세 권을 보내왔다. ‘현구집’은 태화당(泰華堂) 정원(淨圓, 1950~) 스님이 경론에서 좋은 구절을 뽑아 1994년도에 옛날 책의 장정으로 펴낸 것이다. 당신이 그다지 열심히 보지 않은 책인데, 내게 보내면 유용할 것 같아 보냈단다.

책을 받고 서 시인과 십여년 만에 통화했다. 나는 시인을 자주 만나진 않았지만 늘 편한 이웃집 어른으로 생각해왔다. 실제로 나와 고향이 가깝기도 하다. 시인은 순천 태생으로 마부의 아들로 태어나 5일장날이면 아버지의 마차를 타고 인근 고장으로 가곤 했는데, 그중 나의 고향인 곡성 석곡에도 5일장마다 왔었다고 한다.

1959년 겨울, 서 시인은 도시에서 살기 위해 상경한다. 그때 아버지가 하신 말씀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30년 전―1959년 겨울’에서)가 시가 되었다.

시인이 서울에 정착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10여 년 이상 시를 공부하던 그는 이희승 국어사전만 빼고 나머지 책 한 트럭분을 판 돈으로 청계촌 판자촌에 세들어 살면서 혼인한다. 아내의 이름은 유정숙! 헌책을 판들 그 돈이 얼마나 되었겠는가?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부부가 두 자식 낳고 “니뇨 내뇨” 산 것이 어언 50년, 이 시는 혼인 50주년을 기념하여 창작됐다. 여느 시인 같으면 미사여구도 넣고, 눈물과 콧물도 조금 넣고, 애틋한 아부도 애써 넣으련만, 서정춘 시인은 간단한 은유로 끝낸다. 남편의 은유는 모과이고, 아내의 은유는 능금이다.

남편은 왜 모과일까? 모과는 매끈한 피부도 아닌 데다 보기 좋게 둥글거나 타원형인 것도 아니어서 못생긴 과일로 통하지만, 특별히 향기가 좋은 과일이다. 모과에 상처를 내면 향기가 더 진해진다. 아내는 왜 능금일까? 능금은 사과보다 작고 보잘것없는 과일인데, 왜 아내를 사과가 아닌 능금에 비유했을까? 못생긴 모과 남편에게는 보잘것없는 능금 아내가 적격이라 생각했을까? 이 비유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부부임을 상징한다.

“선생님 목소리 들으니, 10여 년 전보다 더 건강해지신 것 같은데요?”
“암, 더 좋아졌어. 만고에 편안해! 노령연금 나오니 돈 걱정 없겠다. 집은 난방이 잘되어서 편하고, 시가 나오면 한 편씩 쓰고, 특별히 잘할 것도 없고, 아무 걱정이 없네.”
“선생님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현자(賢者)신 것 같습니다.”
“허허, 현자는 무슨. 그냥 이렇게 편안한 게 고마울 뿐이지.”

나는 집착 없이 내려놓을 수 있는 이가 진실로 현자라 생각한다. 서정춘 시인은 유정숙 여사와 “나는 모과할게, 너는 능금해라”하며 여전히 재미있게 살고 있다.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두 분은 이미 현자다. 50년이나 부부로 같이 살아서 현자인 것이 아니라, 집착을 내려놓았기에 현자다. 어떤 조건이 현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이냐에 따라 현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부부 하면 생각나는 시는 함민복의 ‘부부’다. 함민복 시인은 “부부는 기다란 상을 맞들고 가는 것과 같다”고 노래한다. 음식이 가득 놓인 상을 한 사람은 앞에서 한 사람은 뒤에서 들고 오르막을 가거나 내리막을 간다고 해보자. 오르막길을 갈 때면 앞에 간 사람은 최대한 낮춰야 하고, 뒤에 따라가는 사람은 높이 들어야 한다. 상을 내려놓을 때도 동시에 내려놓아야 한다. 박자를 맞출 수 있어야 부부다.

‘부부’라는 음식이 가득 놓인 상을 50년 이상 함께 들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서정춘·유정숙 부부, 그들은 모두 현자다. 그들처럼만 산다면 이 세상은 있는 그대로 불국토이다. 세상의 부부들이 어떻게 마음먹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이 세상이 불국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은 이미 불국토이다.

동명 스님 시인 dongmyong@hanmail.net

[1713호 / 2024년 1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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