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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얀마 불교 명상 이끈 레디 사야도

마음챙김 명상 토대 만든 선구자

영국의 불교말살 정책에 맞서
미얀마 불교중흥 앞장선 인물
불교 대중화 위해 명상 도입
명상, 불교신앙의 중심 만들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이 수행하는 명상은 마음챙김(mindfulness)이다. 마음챙김은 원래 주의 집중이라는 의미를 지닌 불교의 사띠(sati)가 존 카밧진(Jon Kabat-Zinn, 1944~ )의 심리치료적 응용을 거치면서 ‘비판단’과 ‘수용’과 ‘자비’라는 요소가 추가된 것이다. 그의 마음챙김 기반 스트레스 감소(MBSR) 프로그램에서는 참여자 스스로 현재 일어나는 경험에 수용적인 방식으로 주의 집중하는 것을 훈련하여 치료적 효과를 얻도록 한다. 

마음챙김이 대중적인 명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카밧진의 연구 덕분이라고 볼 수는 없다. 카밧진은 명상수행과 일상생활의 융합을 강조했던 냐나포니카 스님(1901~1994)의 영향을 받았다. 사띠가 바로 불교 명상의 핵심이라고 강조하며 ‘순수한 주의(bare attention)’라고 불렀던 독일 태생 냐나포니카 스님의 명상은 우 나라다 스님(또는 밍군 사야도, 1868~1955)이 개발하고 마하시 사야도가 보급한 ‘새 버마 방식’이라는 위빠사나 수련 방식이었다. 우 나라다 스님은 비록 계파는 다르지만, 레디 사야도(Ledi Sayadaw, 1846~1923)의 가르침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전한다. 오늘날 마음챙김이 누구나 할 수 있는 명상이 될 수 있도록 황무지를 개간한 선구자가 바로 레디 사야도이다. 

레디 사야도는 미얀마 불교중흥을 위해 활동했던 스님으로 명상이 불교 신앙과 생활의 중심이 되도록 만들려고 노력했던 인물이다. 그 이전 미얀마 불교에는 명상을 널리 퍼뜨리는 경향이 없었다. 명상이 대중적인 수행 도구가 될 수 있는 된 계기는 1824년 영국군이 불교의 나라인 미얀마를 정복한 시점으로 돌아가서 봐야 한다. 

미얀마를 점령한 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어떤 종교도 식민지의 백성을 간섭할 수 없다는, 보기에는 그럴듯한 통치 정책을 발표한다. 이것은 언뜻 종교의 자유를 선언한 것으로 보이지만, 불교 국가였던 미얀마에서 불교가 모든 국민에게 더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압력이었다. 왕실과 귀족들이 공공연히 승려와 사원에 기부할 수 없게 되었고, 불교적 이상을 지지하는 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된 것이었다. 이것은 식민지 정부의 우대를 받았던 기독교 선교사들이 더욱 활발하게 종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미얀마에서 불교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스님들과 신도들은 많은 청중에게 즉각적으로 깊은 영감을 주는 카리스마 있는 법사들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대중을 가르치는 데 뛰어난 스님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분이 레디 사야도였다. 그는 재가 생활의 개선을 요구했고 특히 명상 수행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가르쳤다. 레디 사야도는 불교 교리에 관해 대중이 접근하기 쉬우면서 정교한 설명으로 유명했는데, 불교의 가르침이 ‘내리는 비처럼’ 세상을 적시기를 원했다. 그는 불교와 명상 수행을 연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이러한 연결을 통해 자유를 얻게 하는 통찰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명상이란 일상적인 세상을 관찰할 수 있도록 하는 기초라고 했다. 땅과 바람과 불과 물의 네 가지 원소의 끊임없는 변화를 관찰하고 그들의 성질을 연구하는 것만으로 큰 영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레디 사야도 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르마에 대한) 지식이 발달한 사람은 자기의 안과 밖, 집의 안과 밖, 마을의 안과 밖 등 눈에 보이는 모든 대상을 볼 때 무상(無常)의 통찰이 솟아오르게 된다.”

그 당시 미얀마 불교도들은 통찰 명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정이라고 불리는 깊은 삼매(집중 상태)에 들어가야 한다고 믿었다. 삼매는 쉽게 얻을 수 있는 명상의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오랫동안 숲속이나 동굴과 같은 적막한 곳에서 집중적인 수행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레디 사야도는 위빠사나 수행(통찰 명상)을 위한 정신적인 안정을 얻기 위해 그러한 삼매에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실제로 명상을 하는 사람이 매 순간 명상의 대상으로 지속해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집중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문진건 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 cherryhill2736@gmail.com

[1713호 / 2024년 1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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