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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조명기 박사 (1905∼1988)

기자명 권오영

근대 한국불교학의 선구자

한국불교연구 틀 마련
역경원 설립-후학 양성
대장경 영인본 발간
88년 5월 25일 입적


효성(曉城) 조명기 박사는 근대 한국불교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한국불교학이 자리 매김 하지 못했던 일제시대 일본에 흩어져 있는 원효 스님의 관련자료를 수집해 한국불교를 연구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는가 하면 동국대에 불교문화연구소와 역경원 등을 설립해 체계적인 연구와 후학을 양성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기 때문이다.

1905년 경남 동래에서 태어난 조명기 박사는 통도사 주지였던 경해 스님으로부터 계를 받는 등 불연(佛緣)을 맺으면서 불교학에 전념하게 된다. 조 박사는 24세 되던 해 동국대의 전신인 불교전수학교에 입학해 만암, 한영, 포광, 능화 스님 등 당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스님들의 지도아래 불교학에 입문하게 된다.

1931년 불교전수학교를 제 1회로 졸업한 조 박사는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동양대 문학부 불교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그는 이 곳에서 대학 도서관을 찾아 한국에서 건너온 원효 스님 관련 자료들을 수집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처럼 원효 스님 연구에 몰두한 것은 일제에 의해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한국불교의 정체성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한국불교에 대한 연구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4년 뒤 조명기 박사는 자신이 수집한 원효 스님관련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원효연구’라는 졸업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동양대 교수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그 해 조선불교 동경유학생회에서 발간한 학술잡지 「금강저(金剛杵)」22호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는 이후 다시 경성제국대 법문학부 종교학연구실 전공과(대학원)에 입학해 원효 스님에 대한 연구를 이어갔다. 이후 중앙불교전문학교에서 후학양성을 병행했던 조 박사는 1940년 총독부의 횡포가 심해지자 돌연 교직생활을 그만두고 다시 종교학연구실에 들어가 신라불교 연구에 전념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다시 혜화전문학교 교수에 취임한 조 박사는 1949년 그 동안 자신이 수집한 원효 관련 자료들을 기초로 『원효전집』 발행에 착수, 이듬해 전 10권의 책을 간행했다. 이 전집은 지금까지 원효학 관련 연구에는 빼 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로 여겨지고 있다.

52년 서울대 강사, 54년 동국대 불교대학장 등 후학양성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조 박사는 진단학회 이사로 취임한 57년 합천 해인사에 소장돼 있는 고려대장경을 영인해 간행본을 발간하기도 했다. 또 62년 일본 동양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조 박사는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소(현 불교문화연구원) 취임과 동시에 제 5대 동국대 총장으로 취임해 동국대가 불교학 연구의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게 했다.
평생 금강경을 수지 독송한 불자로 뛰어난 학식을 바탕으로 불교학 발전과 후학지도를 위해 노력했던 효성 조명기 박사는 1988년 5월 25일 향년 85세로 입적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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