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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철마산 산문 열고 2600년 법등 다시 켜다

  • 특별기획
  • 입력 2024.01.24 10:11
  • 수정 2024.01.24 10:56
  • 호수 1713
  • 댓글 2

폐사 다름없던 용암사 … 정기법회·기도 봉행하며 ‘용틀임’
주지 무근 스님 ‘사띠 수행’ 전파 … 선원 중창 불사가 ‘희망’

금산 철마산 용암사는 무근(武勤) 스님이 주지로 주석하며 활기를 띠고 있다. 
금산 철마산 용암사는 무근(武勤) 스님이 주지로 주석하며 활기를 띠고 있다. 

“법문(法門)의 흥함과 기울어짐은 스님들에게 달려 있다.”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 사부대중으로 구성된 교단에서 스님의 역할이 얼마나 지중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언이다. 대중의 마음이 편안하도록 이끄는 안심법문(安心法門)을 설하는 선지식이자, 가람을 세우고 지키는 주체 또한 스님이니 종색(宗賾·∼1092·중국) 선사의 저 일언은 이 시대에도 유효하다. 

폐사나 다름없던 충남 금산(錦山)의 철마산(鐵馬山) 용암사(龍巖寺)도 주지 무근(武勤) 스님이 주석하며 도량이 일신되어 250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법등을 다시 밝혔다. ‘행복한 마음 수행 도량’을 지향하는 무근 스님은 대중들에게 ‘사띠(SATI·알아차림) 수행’을 지도하며 정진하고 있다. 
 

2023년 12월 ‘용암사 재 개산 고불식’이 봉행됐다. 
2023년 12월 ‘용암사 재 개산 고불식’이 봉행됐다. 

근본불교의 수행법이 궁금했던 무근 스님이 인도 보드가야로 떠난 건 2009년이다. 붓다빨라(현 ‘보드가야 국제수행학교’ 교장) 스님이 세운 사띠 아라마(SATI Ārāma)에서 2년 동안 정진한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2011) 

“사띠 아라마에서 배운 수행법은 군더더기 없이 명쾌했습니다. 불과 며칠 만에 수승한 수행법임을 직감했습니다. 사띠 수행은 채우는 게 아니라 비우는 과정이었습니다.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압축하고 간소하게 하는 과정이었으며, 복잡하게 하는 게 아니라 단순하게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사띠 수행이 깊어질수록 내 삶이 여유롭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저 역시도 그곳에서 정진하는 내내 참 행복했습니다. ‘출가하기를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습니다.”

귀국 직후 전주 참좋은우리절에서 어린이·청소년 지도법사를 맡았다. 사띠 수행에 대한 대중의 호응이 너무 좋아 얼마 후에는 유치원생과 청년들도 지도했다.

“회주로 주석하고 계시는 회일 스님께서 정성으로 도와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참좋은우리절 불교대학의 교육과정으로도 개설해 주어 다양한 연령층을 지도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수행법이라도 유치원생과 청년에게 다른 방법(기술)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그에 따른 나름의 연구가 필요합니다. 적용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건 필연입니다. 참좋은우리절에서 5년 동안 지도하며 귀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때 새삼 깨달은 게 있습니다. 역시 수행은 쉽고 즐거워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4세 아이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세심하면서도 부드럽게 이끌면 아주 잘 따라옵니다. 입시경쟁으로 큰 스트레스를 받는 중·고등학생이나 사회진출을 놓고 여러 걱정에 휩싸인 청년도 호흡을 따라 평안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명상심리상담의 대가로 손꼽히는 인경 스님(한국명상심리상담학회 이사장)의 고언과 지도를 받아 ‘사띠 아라마’의 수행법을 약간 틀어 무근 스님만의 독특한 사띠 수행법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약간의 변형이라고 하는 게 적확한 표현입니다. 본질적으로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사띠 아라마’의 수행법은 출·재가자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아라한과(깨달음)’를 이루겠다는 원력을 굳게 다진 출가 수행자에 초점이 좀 더 맞춰져 있습니다. 수행에만 전념하기 어려운 재가분들이 좀 더 단순하게 다가갈 수 있으면서도 효과는 비등하게 나오는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예불부터 취침에 이르기 전까지 ‘일상이 곧 수행’이 될 수 있는 대중적 프로그램을 마련했습니다.”

무근 스님이 진행한 청소년 여름캠프는 큰 호응을 얻었다.
무근 스님이 진행한 청소년 여름캠프는 큰 호응을 얻었다.

공주 여명사 주지(2016)를 맡으며 펼친 ‘청소년 여름캠프’도 큰 인기를 끌었는데 오감명상, 자연치유명상, 영상관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대전 여명실버케어센터 내 명상센터와 유성 골든데일리(주간보호센터)에서도 ‘사띠 수행’을 전했다. 공주 마곡사 시민선방의 대중에게 명상 지도를 한 장본인도 무근 스님이다. 시민들이 명상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 기술이 첨단으로 발달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왜 ‘치유’를 말하는 것일까요. 세상은 급속도로 변해가는데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그에 상응하는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불안, 공포, 우울, 강박, 자괴감 등이 일어납니다. 방치하거나 극복하지 못하면 자존감마저 잃어 희망도 품지 못한 채 피폐해집니다. 행복을 갈구하지만 정작 행복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황으로 치닫습니다. 심신 치료를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려 수행도량을 찾는 것이라 봅니다. ‘사띠 수행’을 통해 마음 거울에 비춰진 질투, 편견, 오만, 분노, 적의, 원망, 이기심 등의 오염원(번뇌)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사띠 수행’은 행복의 길로 안내합니다.”

무근 스님이 용암사의 존재를 알게 된 건(2021) 한 지인의 전언을 통해서다. 산문을 닫은 사연은 몰랐지만 ‘정말 폐사되어서는 안 될 일’이라 생각하고 일단 금산으로 향했다. 

처음 마주한 용암사는 어땠을까?

“잡풀은 무성했고 쓰레기가 사방에 쌓여 있었습니다. 요사채 곳곳에서 나오는 동물의 분뇨 냄새가 코를 찔렀고 삼성각은 이미 개들이 점거하고 있었습니다. 대웅전의 문 주위를 살펴보니 신발을 신고 드나든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신발을 신지 않고는 들어갈 수도 없는 지경까지 이른 겁니다. 삼배를 올리려 불전을 보니 먼지가 하얗게 앉아 있었습니다. ‘폐사란 이런 것이구나!’ 절을 올리기도 전에 하염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용왕샘의 물은 한겨울에도 시리지 않다.
용왕샘의 물은 한겨울에도 시리지 않다.

용암사 역사는 150년 정도로 보고 있다. 작은 암자 하나 덩그러니 있던 절을 비구니 법찬 스님이 인수해 중창불사를 일으켜 지금의 전각과 요사채를 지었다. ‘용왕 기도’로 정평 났던 용암사는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이 매년 소풍을 오는 곳이었고 신도들의 발길도 줄지 않았다고 한다. 대웅전 앞 바위 아래의 용왕샘에서 솟는 물은 한겨울에도 시리지 않아 ‘영험한 물’로 소문났다. 아쉽게도 법찬 스님이 수년 전에 입적하며 사세가 급격히 기울었고 급기야 방치됐다. 

“빗자루와 삽을 들고 도량 청소부터 시작했습니다. 깨진 콘크리트 파편을 철거하고는 마사토를 얻어와 깔고 그 위에 잔디를 심었습니다. 절 주변 나무들의 가지도 하나둘씩 정리했습니다. 걸레를 들고 법당 청소하는 건 지금도 하루의 일과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홀로 도량석을 돌며 공간을 청정케 했다. 조석예불을 올리며 절에 성스러움을 더해갔다. 그렇게 1년을 가꾸니 제법 도량의 원형이 드러났다.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떠났던 신도들도 하나둘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무근 스님은 2023년 12월 27일 대중들과 함께 ‘금산 철마산 용암사 재 개산 고불식’을 봉행했다. 정기법회는 물론 ‘사띠 수행’ 프로그램을 가동했는데 새벽 5시에도 동참하는 불자들이 있다. 언뜻 보아도 아직은 여기저기 손 볼 게 많다. 가장 시급한 불사는 무엇일까.

무근 스님이 조성하려는 선원의 터.
무근 스님이 조성하려는 선원의 터.

“마곡사 시민선방에서 대중과 정진하며 공간의 중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웬만한 전각이나 요사채에 비해 대중들의 집중도가 무척 높았습니다. 그날 수행의 절반에 이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선원에서 사띠 수행을 전하고 싶습니다. 인도 ‘사띠 아라마’에서 정진할 때 느낀 것 중의 하나가 지친 현대인들에게 활력을 주고 혼란한 마음을 정돈케 하는 데 이만한 수행법이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전할 겁니다. 저의 원력이자 부처님 은혜를 갚는 일입니다.”

용암사에는 무근 스님 혼자 머물고 있다. 공양주 보살도 없다. 그러나 정기법회가 열리거나 초파일이 다가오면 누군가 나서 공양주 보살을 자처한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신도 스스로 밥을 짓고 채소를 다듬고 그릇을 나른다. 용암사의 사격은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것임을 방증하는 풍경이다. 선원이 하루빨리 조성돼 부처님의 법이 더 넓게 퍼져가기를 기대한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철마산 용암사는 어디에

용암사가 자리하고 있는 철마산(鐵馬山·342m)은 추부면에 서 있다. 산 전체가 암반으로 이뤄진 돌산이다. 옛날 어느 도사가 산 정상에 철마를 놓고 기도했다고 해서 철마산이라 붙여졌다고 한다. 군북면의 철마산과는 완전히 다른 산이다. 주소는 ‘금산군 추부면 용암길 22’이고 지번으로는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馬廛里) 502-4’이다. ‘말 마(馬)’자에 ‘가게 전(廛)’자를 쓴 마전(馬廛)은 말을 팔고 사는 장터를 의미한다. ‘성재’로 가는 둘레길이 절 옆으로 나 있고, 인근(2.2km)에 이성계의 태가 묻혀있는 ‘태조대왕 태실’이 있다.
 


 “호흡으로 돌아와
마음의 무게를 보라!”

무근 스님에게 듣는 사띠 수행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에고가 창조하는 허망한 세계이다.

눈이라는 센서, 귀라는 센서, 코라는 센서, 혀라는 센서 등 온몸에 퍼져있는 감각 센서들의 정보들이 제6식(뇌)으로 보내져 전기적 화학적 신호에 의해 마음 공간에 펼쳐진다. ‘에고’라는 감독의 지시에 펼쳐지는 영화와 같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관객이 없는 영화는 존재할 수 없듯 우리도 그 세계를 경험하는 자(제7식·마나식)가 있다는 걸 발견하신 분이 고타마 싯다르타이다. 마나식의 특징은 제6식이 만들어내는 영화의 자극에 쉽게 현혹되어 구속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구속되지 아니하고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기능 또한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세계에 빠져서 고통받거나 집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기술을 발견하신 분이 또한 고타마 싯다르타이다 

그 핵심이 ‘사띠’ 알아차림 기술이다. 알아차림 기술은 내가 경험하는 세계를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무상함과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알아 지혜로 나아가는 수행법이다. 그 수행의 핵심은 감각에 머물며 지켜보는 것이다. 가장 쉽게 어디서나 머물 수 있는 감각이 바로 호흡이다.

지금 이 순간 호흡에 머물며 아무런 판단 없이 내 마음의 무게(까르마·업)를 관찰해보자. 숨을 들이쉬며 공기가 코로 들어올 때 분명하게 그 감각을 알아차리고 ‘고요하게’라고 이름 붙여보자. 숨을 내쉴 때, 공기가 나갈 때, 그 감각에 초점을 두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며 ‘편안하게’라고 이름 붙인다. 날숨 뒤에 충분히 머물고 다시 들숨을 알아차리고 고요하게 편안하게 머물면서 마음의 무게를 관찰하다 보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던 묵직한 덩어리(업장)가 서서히 가벼워지면서 내 몸 또한 사라짐을 경험한다.

‘호흡-알아차림’을 반복하며 지속으로 습관화시켜 수행하다 보면 어느덧 내 마음의 공간이 오염된 불투명한 상태에서 점점 맑고 투명하게 변화하여 그 어떠한 경계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맛(경지)을 보게 될 것이다.

습관처럼 의식의 초점을 호흡(감각)에 두어라!

관념에 속지 말고 호흡(감각)으로 돌아와 대자유와 지혜를 발견하기를 서원한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1713호 / 2024년 1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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