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종교인구 감소의 역설

미국 ‘무종교인’ 5%→30%로 증가
단체·종교인 부정적 행태가 원인
종교 의미·사회적 가치는 높게 평가
‘종교 걱정하는 일’만 없어도 희망

미국은 종교 때문에 탄생한 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의 자유를 갈망했던 영국의 청교도들이 18세기 대서양을 건너와 북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정착하며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역사는 시작된다. 

엄연하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임에도 모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때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하는 것이나, 전 국민(이제는 전 세계인)이 사용하는 화폐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In god we trust)’라고 명시하고도 별다른 문제로 지적되지 않는 것은 이러한 미국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런 미국의 종교적 성향이 최근 크게 변하고 있다. 1월 24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연구기관인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결과 ‘자신이 무교’라고 대답한 미국인이 지난 50년간 5%에서 30%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81%는 종교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지난해 1만1200여 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해당 센터는 이들 중 자신을 무종교인이라고 밝힌 3300여 명에 대해 추가 인터뷰를 진행, 보고서를 작성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비종교인들이 밝힌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다. 비종교인들의 약 47%는 자신이 무교인 이유로 ‘종교단체에 대한 혐오’를 들었다. 그 다음으로는 ‘종교인에 대한 나쁜 경험(30%)’을 언급했다. 또한 이들 중 상당수는 종교가 분열이나 편협함을 만들고 미신과 비논리를 부추긴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비종교인의 58%는 ‘종교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와 목적을 줘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대답해, 종교 자체의 가치와 긍정적 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높게 평가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결국 비종교인, 무종교인이라 해도 종교 자체에 대한 적대감보다는 종교단체나 종교인들이 보여주는 부정적인 행태와 사회적 영향이 종교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이 설문은 보여준다. 

물론 이 조사에서 ‘종교’는 사실상 기독교에 국한돼 있다. 비종교인의 56%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 아닌 ‘그 이상의 더 큰 힘을 믿는다’고 답했고, 67%는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또한 이들 중 대다수는 ‘동물이나 자연 역시 영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고도 답했는데, 이 설문조사의 질문 자체가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들이다. 조사 기관인 퓨리서치센터는 미국의 대표적 기독교계 대학인 프린스턴신학교의 이사를 역임했던 투자가 존 템플턴이 세운 템플턴재단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실상 기독교 전파의 일환으로 세계 종교인구의 변화 추이를 조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미국에서 진행된 이 조사 결과가 다양한 종교 환경 속의 종교인, 비종교인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종교단체가 보여주는 혐오스런 행태, 종교인들에 대한 나쁜 경험이 종교를 거부하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사람들이 모이는 조직인 만큼 비록 종교계라고 해서 사건·사고와 갈등이 없을 수 없다. 그럴 것이라 기대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저 정도의 차이가 있고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느냐, 드러나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점은 더 이상 비밀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다. 
 

남수연 국장 
남수연 국장 

그럼에도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이유는 이 설문에서 드러나듯이 종교가 개인의 삶에 의미와 목적을 줌으로써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역설적으로 종교인구 감소에 대한 가장 확실한 해법은 종교단체가 ‘혐오스런 행태’를 보이지 않고 종교인들로부터 나쁜 경험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은 종교를 가져야 할 이유를 여전히, 그리고 스스로 찾아내고 있음을 이 설문은 보여준다.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지는 못하더라도 세상이 종교를 걱정해야 할 정도의 갈등과 혐오를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사람들은 종교 안에서 스스로 삶의 의미를 발견해 갈 것이다. 종교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오늘날 종교계의 실낱같은 희망이자 쓸쓸한 자화상이다.

namsy@beopbo.com

[1714호 / 2024년 1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