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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게임도 좋지만 부처님 만나면 더 즐거워요”

  • 무진등
  • 입력 2024.01.30 14:05
  • 수정 2024.01.30 14:07
  • 호수 1714
  • 댓글 1

자발적 자비나눔 기획·실천해
친구에게 불교 알리는 데 진력

공부에 뜻 같음 알아차리고
의미 있는 시간 보내기로 결심

여러 경전의 교훈…삶 일부 돼
수험생활에도 신행 활동할 것

세찬 눈바람이 종일 문을 두드리던 지난해 12월. 점심을 앞두고 난로 곁에서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던 어르신들이 벌떡 일어났다. 아무런 예고 없이 여고생 4인조가 등장한 것이다. 한껏 엉클어진 머리카락을 넘기며 쇼핑백을 주섬주섬 내려놓는 앳된 모습은 이목을 집중시키기 충분했다. 

“어르신들, 여기 학생들이 깜짝 선물을 가져왔어요. 세상에나 놀라지 마셔요. 직접 합장주를 엮어왔답니다. 자그마치 1000개에요. 몇 달 전부터 어르신들 건강 생각하면서 준비했다고 합니다. 따뜻하게 맞아주세요.”

사회복지사의 소개에 열렬한 박수가 쏟아졌다. 평균 80·90대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학생들은 공양을 마친 어르신들에게 일일이 합장주를 건네며 추운 겨울 건강히 보내시라 인사했다. 손주를 보는 모습이었을까. 어르신들은 쉽게 돌아서지 못하고 두 손 꼭 잡으며 학생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흐뭇한 미소가 깃든 입가에는 검었던 주름이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직도 이날 여운이 있어요. 어르신들이 그렇게 좋아하실 줄 몰랐거든요. 평소 봉사를 즐겨 하는 편인데, 친구들과 함께해서 그런지 더 기억에 남아요. 부처님이 인도해 주신다고 생각해요. 불교를 깊이 있게 공부해 불교계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고 싶어요.”(최서은)

지역 노인복지관에 직접 만든 합장주 1000개를 전달했다. 

동국대사범대학부속여자고등학교 파라미타 불교학생회장 최서은 학생과 육나연, 박채윤, 정다인 학생은 지난해 자양종합사회복지관, 광진노인종합복지관에 직접 엮은 합장주 1000개를 전달하며 세간에 화제가 됐다. 선생님이나 학부모의 도움 없이 자발적으로 자비나눔을 실천한 것이다. 이들의 주체적 자세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에는 퀴즈를 맞춘 친구들에게 무료 아이스티를 제공하는 ‘모여라 불교 퀴즈’를 기획하고 학교의 지원을 요청했다. 교법사들이 컵과 빨대를 지원해 개최된 행사는 이틀간 300여 명이 참여하며 성황을 이뤘다.

이외에도 지역 복지시설에 기부금과 쌀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남몰래 불교 문구가 적힌 꾸러미를 만들어 수능을 앞둔 선배들에게 선물해 호응을 얻었다. 학교 축제에서 ‘보리수나무 소원지 달기’ 부스를 열고, 동국대 나란다 축제에 참여하며 ‘불교 머그컵 만들기’ 체험 부스를 운영하는 등 적극적으로 불교를 알려왔다.

이학주 동대부여고 교법사는 “수많은 학생을 가르쳐 왔지만, 선생님들이 지도하기 전에 학생이 먼저 불교 활동을 제안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했다. 파라미타 활동 2년간 변함없는 자세로 인해 선생님과 학부모들에겐 이미 유명인사다. SNS나 연예인, 게임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그 나이대 학생들과 달리 일찍이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고등학교 3학년. 미래에 대한 걱정이 가득할 시기임에도 최서은, 박채윤, 육나연, 정다인 학생의 불교 사랑은 여전히 뜨거웠다. 겨울방학을 맞아 1월 16일 동대부여고 법당에서 만난 학생들은 가방에 두꺼운 문제집과 교과서를 한가득 챙긴, 언제든 공부할 자세를 갖춘 여느 수험생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법당에 들어서자마자 합장 반배, 삼배를 올린 뒤 발끝으로 걷는 모습에서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이들의 속내가 드러났다.

“저는 오랜 불자인 할머니 손에서 자랐어요.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불교 행사는 빠짐없이 경험해 봤어요. 제 이름도 스님이 지어주셨어요. 학문을 가까이하며 밝게 성장하라는 뜻이래요.”(최서은) “유치원 때 할머니를 따라 일산 여래사를 자주 찾은 기억이 생생해요. 스님들은 가끔 슬쩍 용돈을 챙겨주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저를 붙잡고 놀아주기도 했어요. 지금도 절에 가면 동네 놀이터처럼 편안해요.”(박채윤)

최서은, 박채윤 학생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불교가 친숙했다. 성장 과정에서 잠시 멀어질 때도 있었지만, 부처님오신날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을 찾아 신심을 다졌다. 그 기억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박채윤 학생은 “중학생 때는 불교를 공부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며 “마침 불교 종립 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동아리 중 불교학생회가 있어 곧바로 가입했다”고 밝혔다. 

육나연 학생은 어머니의 권유로, 정다인 학생은 친구들의 적극적인 활동에 흥미를 느껴 동참했다. 4인조를 결성한 건 1학년 2학기. 서로 알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불교를 공부하려는 마음이 일치했다. 이 인연을 놓치지 않고 고등학생 시기를 의미 있게 보내기로 결심했다.

매일 오전 7시에 등교해 예불을 모시고, 법회를 준비했다. 분기별로 친구들과 템플스테이, 문화유산 답사를 다니며 불교는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그렇기에 전법 활동을 기획·진행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학생들은 “파라미타 활동에 앞서 스스로 불교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끼리 여러 경전을 펼쳐봤다”며 “마음을 절로 편안하게 해주는 부처님 가르침은 욕심과 미움 등으로 번잡한 마음을 풀어주는 안식처와 같다”고 입을 모았다.

나란다 축제에서 ‘불교 머그잔 만들기’ 부스.

가장 기억에 남는 부처님 가르침을 묻자 학생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정다인 학생은 ‘아함경’의 ‘못된 집착에서 벗어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모든 두려움은 사라지고 자유인이 된다’는 구절을 가슴에 품었다. 장차 사회학자가 꿈이라고 밝힌 정다인 학생은 “그동안 너무 닫힌 자세로 세상을 바라봤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남을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잘못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어떤 일이든 서로를 배려하는 자세를 기본으로 갖춰야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육나연 학생은 올해 ‘삼법인’을 기치로 욕망을 내려놓고 불교학과나 한국전통문화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에 집중할 계획이다. “단아하면서도 화려한 한국의 문화재를 연구하고 싶다”며 “아르바이트로 부모님 손을 덜어드리고, 친구들과 여행도 생각나는 등 원하는 게 너무 많지만, 지금은 꿈을 위해 정진해야 할 때임을 잘 안다”고 했다. 

박채윤 학생은 사경 수행자인 어머니가 알려준 ‘백유경’의 ‘어리석은 자’ 비유를 소개했다. 옛날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소의 젖을 모아 장차 손님을 대접할 뜻을 세웠다. 그는 날마다 소젖을 미리 짜두면 둘 곳이 없게 될 것을 우려해 손님이 있을 때 한꺼번에 짜내야겠다고 판단했다. 한 달 뒤 잔치를 열고 소젖을 짜려 했으나 이미 우유는 말라 없어지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박채윤 학생은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한테 많은 사랑과 배움을 받았는데, 보통 친구들은 성인이 되고 취직한 뒤에야 은혜를 갚겠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이 이야기처럼 감사한 마음을 묵혀두지 않으려 한다.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마음을 표현하고 베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서은 학생은 ‘유마경’을 읽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자세를 갖출 수 있었다. “‘무릇 보살이라면 생명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좋은 일은 함께 기뻐하고 어떠한 잘못도 용서해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이 가득한 세상을 추구해야 한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며 “파라미타 학생회와 봉사를 통해 리더십을 기르며 보살이 추구하는 이상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게 됐다. 전법 활동 기획에 동의하고 함께 준비해 준 친구들과 지원을 아끼지 않은 교장선생님, 교법사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들 4인조는 올해 2월을 끝으로 불교학생회 활동을 마무리 짓는다. 교실을 수험생 별관으로 옮기기에 법당과도 거리가 멀어진다. 그러나 매주 한 번은 아침예불에 참석하는 등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을 생각이다. “가끔 소소한 선물 이벤트를 마련해 후배들의 앞날을 응원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다 하나둘 책가방을 챙겼다. 어느새 학원 갈 시간이다. 방학이지만 수능을 앞둔 이들에게 주어진 여유는 많지 않다. 학교 정문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가지런히 두 손을 모아 반배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더없이 수승하다.

고민규 기자 mingg@beopbo.com

[1714호 / 2024년 1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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