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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눈물이 핑 도는 매콤함, 고려사찰의 산갓김치

사대부가 사랑한 ‘산갓김치’ 원조는 고려 사찰

눈물 핑 돌게 매우면서도 달짝지근한 산갓김치에 사대부도 매료 
최초 언급은 고려시대 이색 시문집…조선 사대부 신경준도 극찬
조선 사찰 부족한 식량 보완하기 위해 산갓과 곡식 교환하기도   

조선시대 산갓김치는 인기가 치솟으며 뇌물음식으로도 활용됐다. [유튜브 청산별곡TV 캡처]
조선시대 산갓김치는 인기가 치솟으며 뇌물음식으로도 활용됐다. [유튜브 청산별곡TV 캡처]

“한 번 맛보니 미간을 찡그리게 되고(一嘗已攅眉)/ 두 번 씹자 눈에 눈물이 가득(再嚼淚盈眶)/ 매우면서 달콤한 그 맛은(旣辛復能甘)/ 계피와 생강을 하찮게 보니(俯視桂與薑)/ 산짐승 고기와 비린 해산물(山膏及海腥)/ 그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네(百味不敢當).”

‘속동문선(續東文選)’에 나오는 조선 초 문신이었던 유순(柳洵, 1441~1517)이 ‘부산개침채기이수(賦山芥沈菜寄耳叟)’라는 시에서 산갓김치를 맛본 감흥을 읊었다. 산갓김치는 특유의 강렬한 매운맛으로 먹는 이의 눈에 눈물이 핑 돌게 만든다. 그러나 단지 매운맛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콤하면서 달콤한 맛까지 가지고 있어 먹는 이를 그 매력에 빠지게 한다.

“산갓김치를 볼 때마다 미친 듯 좋아하니(每遇喜欲狂)/ 어머니께서 그런 것을 아시고(慈母知其然)/ 은근히 한 광주리를 보내셨네(殷勤寄一筐).”

유순은 산갓김치를 ‘미친 듯이 좋아한다’고 자신의 산갓김치 선호를 여과없이 드러낸다. 음식에 대한 묘사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대부의 시치고는 강렬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유순의 어머니도 아들이 산갓김치를 좋아하는 것을 아시는지라 아들에게 특별히 산갓김치를 따로 보내고 있다. 산갓김치에 대한 선호는 유순에게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조선 시대 많은 사대부들이 좋아한 음식으로 여러 사대부의 시에 등장하고 있다.

조선 중기 이안눌(李安訥, 1571~1637)은 그의 문집인 ‘동악집(東岳集)’의 시, ‘사인원두타궤산개침채(謝仁圓頭陀餽山芥沈菜)’에서 산갓김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밥상에 비린내 가득해 생선을 싫어했는데(滿案膻葷厭海魚)/ 숲속에 이제 참된 맛이 있으니(林下如今眞有味)/ 한 항아리 봄빛 같은 노승의 김치로다(一缸春色老僧菹).”

이안눌은 개인적으로 어육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히려 산갓김치같은 담백한 소채 음식을 선호한 것으로 보인다.

산갓김치에 대한 언급이 최초로 등장하는 문헌은 고려 시대 목은 이색(李穡, 1328~1396)의 시문집 ‘목은시고(牧隱詩藁)’이다. 이색은 ‘득곡주산개염채치사(得谷州山芥鹽菜致謝)’에서 산갓김치를 비루한 육식과 대비시켜 언급하고 있다.

“육식은 원래 비루한 것이고(肉食由來鄙)/ 살찐 목숙이 아주 맛있는데(深甘苜蓿肥)/ 게다가 매운 맛까지 더했으니(更添辛辣味)/ 구복을 채우는 데 이보다 나은 것이 있겠는가(口腹養何違).”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산갓김치를 선호하는 사대부들은 주로 비린내 나는 어육류와 대비되는 담백한 음식으로 산갓김치를 선호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로 산갓김치는 오히려 육류음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으로 극찬받는다.

조선 시대 산갓김치 극찬의 끝판왕은 18세기 조선 사대부 신경준의 언급일 듯하다.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은 그의 문집인 ‘여암유고(旅菴遺稿)’에서 산갓 김치의 맛을 “주나라 문왕의 창포저보다도 뛰어나다”고 하고 있다. 공자를 숭상하는 유가 사대부가 공자가 숭상하여 따라 드셨다는 창포저보다도 더 뛰어나다는 서술은 산갓김치를 조선 사대부들이 얼마나 열광적으로 선호하였는지 그 일단을 볼 수 있는 듯하다.

산갓은 겨울을 막 지난 이른 봄에 아직 눈이 녹지 않은 산속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워낙 그 크기가 작아 찾기도 어렵다고 유순은 언급하고 있다. 산갓은 채집에 어려움은 많고 그 채집량이 적은 귀한 식재료이다.

산갓김치가 조선 사회에서 대중화되기 이전에 조선 사대부들은 산갓김치를 주로 안면있는 주변 사찰의 승려로부터 얻거나 승려들이 시장에 내다 파는 산갓을 사 와서 김치를 담궈 먹는 형태를 보인다. 산갓김치 레시피도 승려들로부터 얻고 있음을 조선 사대부들의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김치 담그는 법을 물으니(問沉葅之法)/ 물을 끓여 조심스럽게 손으로(作沸湯廑不爛手)/ 산갓을 유기그릇에 넣고 뜨거운 물로 채운다(納山芥於鍮器中 浸以湯)/ 소금이나 장류는 넣지 않고(勿和塩豉)/ 그 입구를 밀봉하여 향이 새지 않게 한다(封閉其口 以防泄氣)/ 따뜻한 방에 두고(置諸溫房)/ 손님이 오면 담근 것을 밥상에 올린다(見客而淹之 可及進飯)/ 먹을 때 청장을 섞으면 매운맛이 더 강렬해진다(臨食和淸醬則味益辛烈云).”

이세구(李世龜, 1646~1700)는 자신의 문집인 ‘양와집(養窩集)’에서 산갓김치를 가져다 준 근처 사찰의 승려를 통해 상세한 산갓김치 레시피를 얻어 시에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조선 중기를 기점으로 그 이전의 사대부들이 산갓김치의 매운맛을 선호하는 모습을 주로 보이는 반면 조선 후기 음식서에서는 매운맛을 다소 완화시킨 맛이 선호되었던 듯하다. 조선 후기 농업서이자 음식서인 ‘산림경제(山林經濟)’는 산갓김치 레시피에서 “무를 얇게 자른 편·무싹·총백(蔥白)과 함께 담그면 매운 맛이 다소 줄어들어 먹기에 더욱 좋다”라고 적고 있다.

산갓김치는 조선 시대에 들어와 사대부 가로 전파되면서 초기의 채소 음식의 담백함에 대한 선호에서 점차 육식에 빠질 수 없는, 육식과 가장 어울리는 음식으로 각광받는다. 조선 사대부들의 일상이랄 수 있는 시회(詩會)의 술상 메뉴에서 어육류 음식과 함께 산갓김치는 빠질 수 없는 메뉴가 되어갔다.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은 그의 문집,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용문사채 (龍門四菜)’에서 산갓김치를 선품(仙品)이라 극찬하며 산갓김치의 진가를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다.

“그러나 육식을 물리게 먹은 후에 산갓김치를 먹어야 산갓김치의 맛을 제대로 알 수 있으니 채식만 해서는(산갓김치의 맛을) 제대로 알 수 없으니 귀한 사람에게나 어울리지 산속(승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조선 사회에서 산갓김치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산갓김치는 단순한 술자리의 귀한 음식에서 왕의 총애나 관직을 얻는 ‘뇌물음식’으로도 이용되었다. 조선 중기 신흠(申欽, 1566~1628)의 ‘상촌록(象村錄)’에는 “침채 정승(沈菜政丞)”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산갓김치가 왕의 총애를 얻기 위한 뇌물음식으로 이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려 말 불교사찰에서 시작된 산갓김치는 조선 시대에 들어와 조선 사대부들의 음식문화 속에 전파되어 대중화됐고 각광받게 됐으며 그 인기는 사회적 부작용까지 낳을 정도였다. 

산갓김치와 산갓은 어려운 형편의 조선 사찰이 부족한 식량을 보완하기 위해 시장에 내다 팔거나 안면있는 사대부가에 산갓김치를 주고 곡식을 얻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고려 시대의 많은 불교사찰의 음식들이 조선 사회에 계승되었고 다사다난한 과정을 통해 대중화되었다. 이 연재의 목적도 우리 역사 속의 이러한 한국 음식문화의 역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에 가장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공만식 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 kms3127@hanmail.net

[1714호 / 2024년 1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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