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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전계대화상 무관 대종사

욕심을 원력으로 바꾸도록 하는 게 불교입니다

미워했던 사람도 말 들어주고 공감하면 지인이 되는 것처럼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 바꾸면 일상에서도 행복 찾을 수 있어
본래 마음 찾는 게 수행…힘들더라도 진리 찾겠다 발심해야

무관 스님은 “관점을 바꿔 욕심을 원력으로 승화시키고, 일상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발심해서 수행해 나간다면 올바른 부처님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관 스님은 “관점을 바꿔 욕심을 원력으로 승화시키고, 일상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발심해서 수행해 나간다면 올바른 부처님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출가했다고 하는데, 깨달음이라는 것은 요즘 말로 하면 행복 그 자체입니다. 깨달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행복하면 깨달은 것이라 볼 수 있어요. 그런데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바라는 게 많으면 행복해질 수 없겠지요. 그래서 욕심을 버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관점을 달리해서 인생의 참 목적으로 바꾸면 욕심이 아니라 불교에서 말하는 원력이 됩니다.

욕심을 원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불교입니다. 미운 친구라도 그 친구 말을 잘 들어주고, 도와주고 공감하다 보면 머지않아 지인이 되는 것처럼 관점을 바꾸면 삶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관점을 바꿔나가는 것을 불교에서는 수행이라고 표현합니다. 

수행은 우리의 본래 근원 자성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행복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그 근원은 안정되고 평화로운 상태입니다. 그래서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래 우리 마음은 참다운 것인데, 참답다고 하는 것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공간적으로 변하지 않고, 시간적으로도 변하지 않으면서 합당하고 틀리지 않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맞았는데 지금 시대에 맞지 않으면 진리라고 할 수 없고, 과거와 지금은 맞는데 미래에 맞지 않다면 그것도 진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과거‧현재‧미래에 모두 맞는 것, 그것이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그것만이 진리일까요? 과거‧현재‧미래에는 틀리지 않더라도 미국에서는 맞고, 영국에서 틀리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미국, 영국, 한국, 일본, 중국 등 어디에서든 모두 맞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진여라고 했습니다. 우리 본래 마음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여가 바로 자성입니다.

불교는 수학적인 개념에서도 많이 활용됩니다. 숫자 ‘0’이라는 개념도 불교의 공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공’이라고 하면 그냥 텅 빈 것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허공 가운데는 공기도 있고, 그 공간에서 비도 오고 자연현상이 일어납니다. 허공 안에 지구도 있고 달도, 별도 있고, 얼마나 들어 있는 게 많습니까. 흙과 물과 불과 바람 등 없는 게 없습니다. 그게 허공입니다. 허공은 그냥 빈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가운데는 삼라만상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깨달음을 얻게 되면 ‘부제망상불구진(不除妄想不求眞)’이라, 망상을 없애지도 진리를 구하지도 않게 된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초월하니까, 번뇌를 다 가지고도 청정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번뇌 망상과 청정심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번뇌 망상을 많이 쓰고 청정심을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다 보면 번뇌 망상을 거스르게 되면서 괴로움이 발생합니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욕망과 같은 것을 다 놓는 과정에서 괴로움이 찾아옵니다. 그동안의 습관을 한순간에 내려놓기가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수행의 과정이 고행인 이유입니다. 그렇지만 괴로운 것 없이 수행이 될 수 없습니다. 괴로운 걸 참고 견디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러려면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번뇌 망상 때문에 즐거운 줄 알았지만 그것 자체가 윤회의 기본이 되는 것이기에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낮추고 욕심을 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모든 관계를 바꿔서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지만 친해지려면 나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 사람 말을 잘 들어주고 그 사람이 하자는 대로 해주면 지인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하기까지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불교공부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불교는 계정혜 삼학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계율은 오계, 팔계, 십계가 있고, 구족계 등이 있습니다. 

계를 네 가지로 구분하는데 계체, 계법, 계상, 계행이 있습니다. 계율은 간단한 게 아닙니다. 오계라고 할 때 ‘살생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음행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 먹지 말라’라고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다섯 가지 계율에는 본래 가지고 있는 몸이 있습니다. 이것을 계체(戒體)라고 합니다. 그릇된 일을 막고 나쁜 짓을 제지하는 힘을 가진 계의 본체를 말합니다. 계체는 청정한 것입니다. 재가자들이 오계를 받거나 스님들이 구족계를 받거나 계체는 모두 똑같습니다. 

계법(戒法)은 말 그대로 계를 잘 지키면 옳은 길로 가는 것이고, 잘못 지키면 그른 길로 간다는 것을 가리는 법입니다. 법(法)이라는 한자는 삼수변에 갈 ‘거’ 자가 합해진 글자입니다. 즉 물이 흘러가듯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법 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진리라는 의미가 있고, 두 번째는 현상 세계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법이라는 말 속에 있는, 물이 흘러가듯 한다는 것은 현상 세계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또 세 번째는 질서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헌법 그러면 그건 질서입니다. 형사소송법이 됐거나 민법이 됐거나, 다른 무슨 법이 됐든 그것은 질서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법이라는 글자 속에는 진리, 현상 세계, 질서라는 의미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항상 그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법이라는 건 진리라는 의미로 쓰일 때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현상 세계를 법이라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장을 잘 봐야지 문장을 잘못 보면 현상 세계의 의미로 쓰인 법을 진리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고, 질서를 얘기하는데 현상 세계로 잘못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의미를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금강경’은 조계종의 소의경전입니다. 저도 아침마다 ‘금강경’을 읽는데 ‘금강경’의 핵심은 ‘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금강경’ 어디에도 ‘공’이라는 글자가 나오지 않습니다. 

‘금강경’의 다섯 번째 품인 여래실견분(如理實見分)에는 “일체 모든 것은 다 허상이기 때문에 상에 집착하지 않으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상이라는 것은 사상(四相)으로,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想), 수자상(壽者相)을 말합니다. 모두 나를 드러냄으로써 나타나는 상입니다. 나를 내세우다 보니 남이라는 상대가 생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라는 상을 모두 여읠 때 비로소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금강경’의 32품에서는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라 “일체유위법은 꿈·환영·물거품·그림자와 같고, 이슬 같고, 또한 번개 같으니 마땅히 이같이 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같은 ‘금강경’의 의미를 제대로 안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져야 합니다. 일상에서 관점을 바꾸고 참다운 진리에 도달하겠다는 발심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보리심을 내는 것입니다. 그런 보리심을 얻기 위해 수행하고 정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을 얻는 것을 불교에서는 지혜라고도 합니다. 지혜는 지식과 다릅니다. 지혜라고 할 때 ‘지’자는 알 지(知)자 밑에 날일(日)자가 더 들어 있습니다. 지혜는 관심을 가지고 집중으로 해서 이해하고 기억하면서 비교 분석하고 종합해서 판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지혜는 7개 과정을 거쳐 얻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은 순간적으로 일어납니다. 우리의 생각은 1초 동안 96번의 변화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96번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순간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불교의 유식에서는 제6식을 판단식이라 하고, 제7식을 사량분별식이라 하고 모든 것을 저장하고 있다고 해서 제8식을 함장식이라고 했습니다. 아뢰야식이라고 하는 제8식은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다 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눈으로 어떤 것을 딱 보는 그 순간 지금까지의 경험을 쭉 다 분석해서, 6식에 전달해서 판단하게 하는데, 그것을 우리 머리는 96분의 1초 만에 판단한다고 합니다. 눈 깜짝하는 사이인 96분의 1초 사이에 아는 것입니다. 그게 지혜입니다. 

어려운 유식 이야기를 했지만, 제가 오늘 여러분에 들려드리고 싶은 말을 정리하자면 관점을 바꿔 욕심을 원력으로 승화시키고, 일상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발심해서 늘 수행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일상에서 관점을 바꿔나간다면 누구나 올바른 부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조금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부제망상불구진(不除妄想不求眞)’이라, 망상도 없애지 않고 진리도 구하지 않는 그런 청정한 마음을 갖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행복하십시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1월9일 부산 법계정사에서 봉행된 ‘부산광역시불교신도회 로터스불교대학 총동문회 주최 – 조계종 전계대화상 무관 대종사 초청 2024 신년법회’에서 무관 대종사가 ‘무명장야(無明長夜), 잠 못 이루는 사람에게 밤은 길어라. 어리석은 사람에게 생사의 길은 멀고도 멀어라’를 주제로 설한 법문을 요약한 내용입니다.

[1714호 / 2024년 1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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